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밀양이 처음이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으로 봤고, 또 그 영화를 계기로 송강호라는 배우에 반하기도 해서 내겐 나름 의미있는 영화 중 하나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한편으론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이번 영화 개봉 소식을 듣고도 고민했다. 결국 호기심이 더 커서 보게 됐지만.
밀양이 첫 영화여서 그랬는지 밀양에 비해 임펙트는 덜했다. 좋지 않은 습관이지만 아무래도 최근작은 성공한 전작과 비교하게 되고, 또 무엇보다도 두 영화를 통틀어서 그 감독이 관심을 가지는 소재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비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밀양에서도 그랬지만 시에서도 참 고통이라는 소재에 집착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보면서 괴로웠다.
하지만 밀양에 비해 여주인공의 선택이 굉장히 확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장면들이 절제되어 있어서, 더욱 더 여주인공이 묵묵하게 고통을 겪어내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삶에서 겪는 이런 고통을 크게 두 가지와 대비시키고 있다.
그 첫번째는 주인공이 일상적인 삶과 나란히 병행하고 있는 시짓기, 즉 아름다움 찾기이다. 처음에는 이 두 가지의 대비를 보면서, 이 감독님이 예술(시로 대표되는)을 비웃나; 싶었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리고 마침내 주인공이 시 한 편을 남기는 결말에 가서야 그게 아니구나 싶었다. (또 하나로 시짓기 교실에 모여서 '내 생애 아름다운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비춰주는데, 그들의 이야기에서도 역시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주제는 다른 데에서도 워낙 많이 다뤄왔기 때문에 진부하다 싶기도 하지만, 결국 주인공이 일상에서 겪는 고통, 추함이라는 것이 시(예술), 아름다움과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고, 더욱이 이 영화는 고통을 겪는 과정에서 진짜 시, 진짜 아름다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중심을 두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세계관(?)에 대해서는 맞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동감하는 편이다. 영화에서처럼 비록 저렇게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살면서 소소하게 느끼는 바이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사치스러운 얘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극단적인 고통을 겪는 사람을 보면서 예술과 아름다움을 논하고, 느끼는 것에 관해 말이다. 물론 이 영화의 주인공은 그런 힘든 삶 속에서도 계속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사실 현실적으로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한 가지 더 강하게 와닿는 것은 주인공의 그런 미, 아름다움의 추구가 순수한 예술적 가치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속죄, 인간다움의 경지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에서 말하는 미, 아름다움이란 것은 단순히 예술 상의 보기 좋은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복합적인 것으로써, 삶과도 맞닿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경지와도 맞닿아 있다.
또 하나는 주인공의 고통과 대비되는 손자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겪는 고통의 원인은 결국 손자가 저지른 잘못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것 때문에 고통을 겪는데도, 손자는 계속 무감각하다. 주인공은 손자의 이 무감각을 주시하며, 계속 고통을 상기시키려고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런 손자를 보면서 난 참 섬뜩했다. 그리고 이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다고 생각되는 주인공과 대비되는 다른 아버지들의 태도도. 부끄러움, 남의 고통에 대한 공감, 죄의식을 가르치지 않는 부모, 그리고 그것을 배우지 못하는 세대.
이 영화는 주인공의 개인적인 경험, 깨달음이 가장 큰 줄거리이기에, 이런 부분들이 그에 비하면 크게 부각되지는 않고, 이에 대해서 주인공 나름대로 결말을 짓는다.
하지만, 그것은 주인공 자신만의 결말이지, 개인대개인으로써는 손자에게까지 넓게는 손자의 친구들, 사회에까지는 나아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부분은 참 섬뜩하고, 무거웠다.
밀양을 보고 나서도 그랬지만, 시 역시 보고 나서 떠올려 보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물론 그런 생각들이 즐겁지만은 않고, 영화를 보면서 또 고통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이런 점이 매력적이어서 이렇게 두번째로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찾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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