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죽어가고 있다'
왜 죽어가는가? 그것은 세상이 그많큼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생각하는것 조차
사치로 평가 절하 하기 떄문이다. 그렇기에 아름다움을 노래한 詩조차 수능위주에 의해
'빼앗긴 들'은 민주주의를 빼앗긴 사회로, '성북동 비둘기'는 수동적인 시민으로만 달달 외워지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영화 주인공 미자는 이혼한 딸의 아들 (외손주)를 돌보고, 간병인으로서 수입을 얻는 인물이다.
평생 소녀처럼 순수한 영혼이자 항상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는 그녀는 우연히 문화교실 광고를 보고
詩교육을 받는다. 그 詩교육을 통해서 그녀는 자신이 지나쳤던 세상을 진실로 보고 대화한다.
그러면서 그 동안 느끼지못했던 편안함과 동시에 현실로서 일탈감을 얻는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세상은 그녀를 옥죈다. 자신이 간병을 하는 남자는 그녀에게 성관계를 요구하고,
철석같이 믿었던 외손주는 성폭행범이었으며, 공범인 친구들의 아버지는 피해자한테 진실한 용서를
구하는것이아닌 자신 아들들의 미래를 핑계삼아 적당한 선에서 조용히 합의를 볼려고한다.
이런 현실은 그녀가 아름다움을 보는것을 막음과 동시에 시상을 차단한다.
오히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알츠하이머의 초기증상인 건망증이 그녀의 현실 도피를 도와주는 꼴이 되고만다.
이세상은 어디서 부터 잘못된것일까? 그리고 이범죄들을 어떻게 용서를 구하고 그들을 구원할수 있을까?
이질문에 그녀는 시상을 얻어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 보는것이 아닌 세상이 아름다워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詩를 쓴다. 시의 제목은 "아네스의 노래"
(*아네스는 로마시대때 사람으로 상당한 미녀였으나 하느님을 믿은 죄로 매음굴로 팔려갔으나 신이 구원하시었고 계속 선교활동을 하다가 결국 참수형을 당한 성인이다.)
이 노래로 모든것을 용서하고 구원하고 축복해주길 간절히 기도하고 바란다
이 간절한 詩가 무엇보다 가슴에 와닿았던 이유는 예술성이 짙은 영화를 만들었던 영화 감독이자 전직 소설가 였던 이창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이창동이 대중적이라 생각한다.)
그의 영화는 사회성이 짙게 묻어나는데 거기에 대한 태도들은 전작들에서는 함축적이면서 공격적인 장면들이
많았지만 이번영화는 사뭇 다르다. 너무나 방어적이며 섬세하다 못해 만지는순간 터질듯한 장면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윤정희가 있는데 10년이란 공백이 무색할 만큼 이창동이 원하는바를 충실하게 이루어낸
그녀를 보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영화 마지막 장면.
남한강의 물줄기 처럼 묵묵히 영화는 흐른다. 아니 알수없는 먹먹함이 나에게 흘러왔다.
그먹먹함은 창작의 고통을 이겨낸 양미자의 시였음과 동시에 더러운 이세상에 적응이 되서 숭고한
아름다움도 느끼지못하는 나자신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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