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와는 정반대의 화법과 분위기인 걸작 <노인을 위한 나라
는 없다>처럼) 이 영화에는 배경 음악을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
다. 이 영화에서의 배경음은 자연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강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풀잎
이 흔들리는 소리 - 과 아이들의 소리 등 전부 다 현실 속에서 들
을 수 있는 소리들이다. 이 순수한 소리들. 이러한 소리들을 통해
영화의 여운을 더 깊게 해 준다. 난 이 중에서 특히 물이 흐르는
소리가 너무 좋다. 특히 처음과 끝에서 들려오는 강물 흐르는 소
리. 그리고 강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미자가 힘을 다해 쓴 시 ‘아
네스의 기도’가 낭송되는, 그러면서 그녀가 있었던 곳 - 아파트,
마을, 강 - 을 천천히 비추는 엔딩 장면은 엄청난 여운이 남는 말
로도 다 할 수 없는 것으로 단연컨대 올 해 최고의 라스트 장면이
될 것이다.
영상 역시다. 사실주의 감독답게 적재적소하게 롱테이크를 사용하여 주인공의 시각에서, 아니면 그 장면에 있는 인물의 시각으로 실제로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또 중간 중간에 보여주는 배경 역시 너무나도 좋았다. 자연 경관과 여러 가지 자연물 - 꽃, 풀잎, 나무, 강 등등 - 을 정말 아름답게 보여준다.
4. 중간에 정말 좋았던 장면이 있다. 시 강좌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에 대해 발표하는 장면이다. 누구는 작은 임대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 누구는 지금은 죽었지만 살아 계셨을 때에 할머니 앞에서 노래 부르고 가르쳐주었던 일을, 누구는 아이를 낳았을 때, 누구는 사랑을 하다가 배신당했을 때... 각자마다 대답이 다 다르다. 그런데 각자가 말하는 그 순간들이라는 게, 뭐 로또 당첨과 같은 거창한 순간들이 아닌, 고통 속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그런 소박한 순간들이다. 미자가 중간에 시상을 어디 가서 찾는지 물었을 때 김용탁 시인이 직접 자신이 찾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지금 현재에서 괴롭게 하고 온갖 고통을 주는 상황 속에서 새롭게 시상을 찾아서 품을 때,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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