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m 웹툰에서 연재된 '이끼'를 강우석 감독이 영화에 옮긴 <이끼>. 한 페이지를 보고 느낀 강렬한 인상으로 다음 페이지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그 느낌을 과연 영화에선 어떻게 담아냈을까?
"윤태호 원작의 이끼"
음산하고 기분 나쁘며 소름이 돋는다. 좀 더 제대로 즐기려면 불을 끄고 본다면 좋을 것 같다. 실제 이끼를 만질 때의 야릇한 느낌을 제대로 표현한 원작은 웃음이라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건조하고 메마르다 못해 차갑기까지하다.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듣고 마을에 찾아가면서 시작되는 미스테리한 이야기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끝까지 알 수 없게 만들며 몰입하게 한다. 마치 내가 그 마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기에 그가 당하는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솜털이 서는 긴장의 순간엔 나도 화면의 스크롤을 늦추고 숨을 고른다. 탄탄하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조금씩 풀어가며 관객들의 기대감과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전개 과정은 화면의 로딩 시간 마저 무척이나 길게 느껴져 애꿎은 PC와 인터넷을 원망하기까지 한다. 과연 이런 느낌을 영화 <이끼>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기대하고 영화를 본다.
"강우석 감독의 이끼"
영화로 옮긴 이끼가 시작되자 관람 전 내가 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데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강우석 감독은 원작의 큰 뼈대만을 이용할 뿐 조금 과장한다면 원작과 또 다른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음산하고 어두운 영화의 분위기는 잃지 않으면서 감독 특유의 위트와 유머가 적절히 녹아들어 원작과는 달리 간간히 폭소를 터뜨리며 긴장감을 조절하고 있다. 이런 특징은 그의 전작 <공공의 적>에서처럼 강우석 감독이 보여 준 특징이며 강철중 형사로 표현되는 인물의 재미처럼 김덕천 (유해진)과 이장 천용덕 (정진영)에 의해 만들어진다. 김덕천의 분위기 파악 못하고 던지는 멘트의 재미와 허점하나 없을 것 같은 이장을 연기하는 정재영이 만들어가는 의외적 상황과 촌철살인 대사가 웃음을 던지고 있다.
이야기 진행 흐름도 원작에 얽매이지 않고 감독이 표현하려는 스토리에 맞게 재구성을 했다. 아버지 사망 소식을 듣고 마을에 도착하며 시작하는 원작과 달리 영화는 삼덕 기도원이라는 배경과 젊은 천용덕 형사의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것은 원작이 등장 인물간의 대결 구도로 시작하여 마을의 비밀을 밝히는 방대한 스케일을 상영시간과 영화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몇가지 비밀을 미리 관객에게 알려주며 비밀의 핵심만을 끌고가는 방식으로 대변된다. 가령, 마을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미리 말해주며 아무나 살 수 없는 곳임을 강조하고, 류해국이 알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도 영화는 미리 답을 알려준다. 게다가 비밀스러운 핵심인물 '영지'를 초반부터 비중있게 비추며 원작과 같은 듯 다른 느낌의 결말을 예고하고 있다.
" 달라지거나 사라진"
영화 <이끼>는 분명 원작을 따르지만 다른 길을 간다. 음울한 분위기는 위트와 유머가 추가되고 스토리도 이장과 류해국간의 대결 구도보다 영지의 비중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원작과 영화의 다른 흐름을 비교하다 혼란스러운 면도 접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작과의 비교보다 그냥 이 작품의 초반부터 전개되는 상황에 집중하며 결말을 예측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분명 많은 부분을 원작과 맞추고 그대로 옮겨 놓기도 했지만 영화만의 결말을 위해 추가하고 다르게 해석한 부분 때문이다.
류해국이라는 인물은 깐깐하고 의심이 많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그는 검사를 지방으로 쫒아내게 만든 집념의 남자이다. 사사로운 시비가 큰 사건으로 변해 가정과 직장을 잃으면서도 끝장을 본 남자라는 설명이 다소 부족하여 아버지 사인을 물고 늘어지고 주민들을 의심하여 끝까지 집착하는 인물에 대한 이해는 다소 부족하다.
류해국으로 인해 성공에서 나락으로 빠진 박검사와 류해국의 관계는 조금 상황이 누그러져 약간 친구처럼 느껴진다. 한때 자신의 찬란한 집안 식구들이 하나 둘 암울한 결말을 맞고 본인마저 지방으로 발령이나 비참한 자신의 상황을 오로지 류해국때문으로 복수심에 넘친 그의 과거가 없어 그 둘간의 적대성은 약하고 박검사가 조금씩 그에게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해 출산을 앞둔 여자에게 낙태를 강요하고 그러다 죽게되자 산파 노인마저 총으로 죽인 잔인한 전석만 (김성호)의 과거는 빚을 갚지 않고 도앙간 남자를 죽인 것으로 변해 싸이코같은 인물 느낌을 완화시켰다. 그때문에 류해국이 자신의 집에서 연결된 집으로 의심해 그의 집을 뒤지고 그런 상황을 본능적으로 직감해 가계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와 그를 죽이려는 상황에서 느껴지던 소름은 부족하다.
또 김덕천(유해진)이 마을에 들어오게 된 배경, 즉 죽은 할머니와의 과거로 인해 약물에 의존했던 과거가 없고 그가 죽은 할머니 혼령에 시달리다 최후를 맞는 과정은 하성규(김준배)가 맞는 결말이 원작과 다른 것 처럼 새롭게 해석되어 이장에 의해 고통받은 지난 과거로 고뇌하다 죽어가는 비참한 인물로 변했다. 그러나 원작의 인물 이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류해진의 연기는 박해일이 보여주는 싱크로율 보다 너 높은 비율을 보이며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어쩌면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인물인 이장 천용덕을 연기하는 정재영은 분장만 3시간이 걸리는 힘든 변신을 통해 새로운 이장의 느낌을 보여준다. 사악하고 악마적인 인물 성격이 누그러져 때론 인간적인 모습도 보이지만 역시나 원작처럼 강렬한 눈빛으로 마을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잃지않고 있다.
이처럼 영화 <이끼>는 굳이 원작의 등장 인물의 성격이나 과거에 집착하기 보다는 영화에서 표현하려는 상황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여 결말로 이끌고 있고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과감히 드러내거나 짧게 처리하여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에서는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마치 류해국이 PC방에서 인터넷을 보면서 이 만화가 연재된 '다음'을 잊지 않고 화면에 넣어주신 센스처럼...
"다른 듯 같은 느낌"
방대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을 영화에 옮긴 강우석 감독의 고충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때문에 강우석 감독은 원작을 현실에 맞는 재해석을 목표한 듯 하다. 혼령의 등장과 '화룡점정'식 결말은 과감히 배제하고 사실적인 눈높이에 맞춰간다. 그리고 많은 배우들이 노력한 흔적으 곳곳에서 느껴진다. 특히 유해진이 보여주는 광기어린 신들린 연기는 단연 압권이고 지하 토굴에서 느껴지는 소름과 공포와 맞먹는다.
구원을 위해 종교적 생활로 새로운 삶을 살려는 마을. 거기서 악마적인 모습으로 모두를 조종하며 사리사욕을 채운 이장의 정체와 그 비밀을 풀려는 류해국의 대결은 자못 흥미롭다. 그 비밀을 풀고 정의를 보여주려는 류목형(허준호)의 바램대로 류해국(박해일)이 미스테리한 진실을 향해 가는 과정은 이번 작품의 진정한 힘이다.
원작의 참 맛을 살리지 못하고 지나치게 코믹스럽고 가볍게 풀어간다는 의견도 예상해 본다. 그러나 원작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 그 맛을 똑같이 내야 한다고 보진 않는다. 그런 면에선 영화 <이끼>는 원작과 다른 방향에서 원작의 맛을 보여주며 자신만의 독특한 향을 풍기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원작을 잊어라! 그럼 그만큼 이 작품의 맛을 음미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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