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동명 웹툰의 영화화라는 점에서 우려가 높다. 가장 잘 알려진 강풀 웹툰의 줄줄이 영화화가 화제가 되었지만, 말 그대로 화제에 그친 수준이었다. 하지만 강우석의 [이끼]가 우려해야 할 점은 꼭 웹툰이라는 점보다는 원작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게 작용했어야 했다. 몇몇 압도적으로 거론되는 영화를 제외하면 원작 영화화를 통해 훨씬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특히 원작을 영화화 할 정도라면 그 원작이 웬만한 원작이겠는가. 그렇다면 그 원작이라는 아성의 공포는 눈덩이처럼 굴러 내려올 것이다. 이를 버텨내고 굳이 영화화 시킨 이유를 보는 이로 하여금 납득시켜야만 성공의 가도를 달릴 수 있다. 하물며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 아직도 식지 않은 [해리포터...]시리즈 조차 원작 팬들은 영화를 꺼리고 힐난을 쏟아내고 있다. 그만큼 잘 되더라도 원작 팬들의 눈초리는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영화계의 대들보격인 강우석 감독조차 그 눈초리 앞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물론 원작에 대한 인지 차이에 의해 관점과 만족도가 달라질 수 있다. 원작을 보고 영화를 보는 것과 영화를 보고 원작을 보는 것은 서로 상대적으로 작용함에 있어서 결론적 정리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간혹 이런 경우가 있다. 원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오래됐거나 인지도가 약해서 영화 자체만 부각되어 원작을 무시한 채 영화만을 칭송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원작의 힘을 많이 빌렸음에도 마치 자신의 공 인냥 순수 창작물 인냥 하게 되면 원작으로서는 억울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끼]가 과연 그러하겠냔 말이다. 아무리 호화캐스팅에 강우석 감독의 야심찬 차기작으로 대규모 배급사와 제작사가 물량을 쏟아 부은들 이는 관객수면에서 결과가 달라질 뿐이지 작품 자체의 평가는 원작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소리다. 지금 이 순간도 한 포털사이트에 접속해서 무료로 몇 시간이면 윤태호의 “이끼”를 섭렵할 수 있다. 이미 4천만에 가까운 클릭수를 자랑하고 있지만 이렇듯 쉬운 원작에 대한 접근성은 영화 개봉을 전후해서 더 많은 원작 섭렵자가 나오리라 본다. 이런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서스펜스 장르를 무난하게 연출한 강우석 감독이 [이끼]를 통해 영화인생 최대의 분수령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 영화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고 말할 만큼 전작들에 비해 희세의 역작으로 남기엔 버거워 보인다.
강우석 감독이 매료되었듯 윤태호의 “이끼”는 서스펜스를 통해 흡인력을 최고조로 끌어 올린다. 개인적으로 강경옥 원작 만화 “두사람이다”에서 느낀 서스펜스의 공포를 오랜만에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다소 평면적인 판타지 공포에 적당한 사회현실과 인간의 어두운 단면을 그린 “두사람이다”에 비해선 “이끼”의 세계관이 훨씬 크고 미쟝센도 훨씬 강렬하다. 무엇보다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개성 있다. 바로 캐릭터! 이 캐릭터가 살아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강우석의 영화 [이끼]를 봐야하는 이유가 하나 생겼을지도 모른다. 영화화 결정 전에 연재되는 웹툰을 보며 열이면 열 유해국에 박해일을 겹쳐 놓았을 것이고, 저마다 다른 마을 인물들도 하나하나 껴 맞춰가며 봤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화 결정 전부터 예상 캐스팅은 이미 거론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정재영의 이장 캐스팅이 논란을 빚었고, 현재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는 큰 무리가 없었다고 보여 진다. 특히 젊은 시절의 천용덕은 오히려 괜찮은 싱크로율을 자랑했을 정도다. 원작에서 추악하고 퇴폐적인 이장의 모습과 달리 정재영의 이장 이미지는 자못 평범하다. 소견일 수도 있으나 만화로 표현되는 이질적인 느낌을 살짝 지우고 우리가 사는 이 사회 속의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한 강우석 감독의 견지는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분명 원작의 우수성으로 인한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지만, [이끼]라는 영화를 보는 재미는 캐릭터와 그 연기라고 하겠다.
영화도 소설에 비해서는 함축적이지만 만화는 그 보다 더 많은 상상력을 담아낼 수 있는 메타포가 있다. 특히 윤태호의 “이끼”는 더더욱 그랬다. 강우석 감독의 고민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2시간 40분 가량의 분량을 만들어 놓고도 2편으로 나누어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볼멘소리가 십분 이해되었다. 강우석 감독은 원작의 시간을 재배열했다. 아무래도 전체적인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웹툰은 80화 짜리 에피소드를 각각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구성을 따라가게 되면 영화가 끊기는 느낌이 다분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강우석 감독이 고민한 흔적이고 그의 역량이다. 그리고 강우석 감독은 원작의 무거운 분위기 속 가벼운 황당함을 재치 있게 유머로 다듬어냈다. 그 주요 인물이 유해진이다. 원작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딱 하나의 인물로 기억 될 것 같다. 또한 그의 절정 연기는 스크린을 통해서 신들릴 것이니 기대해도 좋다. 또한 강우석 감독은 ‘유일한 여자’ 이영지를 원작과 살짝 다르게 묘사하면서 결말의 반전으로 끌고 가는 작위성을 만들어 냈다. 원작에서처럼 유해국 사연이 상당 부분 생략되어, 부자의 오해가 풀리면서 유목형을 통해 감정선을 자극했던 화룡점정의 결말은 살짝 비껴갔다. 하지만 그녀만의 싸움을 집어넣으면서 오히려 원작에서 영지에 대한 설득력이 약했던 부분을 말끔히 풀어낸 듯하여 나쁘지 않은 작위였다고 본다. 영화를 전방위적으로 봤을 때 강우석 감독이 해낸 부분도 이처럼 또 보이지 않게 많다. 하지만 윤태호의 “이끼” 속 마을은 더 음산하고 꺼려졌어야 하고 이장은 더 추잡하고 사악했어야 했다. 영화를 보면서도 자꾸 아쉬운 마음에 웹툰을 볼 때의 스크롤을 내리는 검지 혹은 중지에 전해졌던 그 짜릿함이 자꾸 생각났다. 웹툰은 웹툰, 영화는 영화로 생각하려해도 도저히 떨어뜨려 놓을 수 없을 만큼 원작의 카리스마가 강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안고 가야할 숙제였지만 완벽히 풀지 못했기에 짊어지고 가야할 핸디캡인 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우석의 힘보다 윤태호의 공이 더 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를 산업적인 스코어로 봤을 때는 강우석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하겠지만 [이끼]라는 영화를 작품적으로 세공해 내는 것에 있어서는 윤태호의 공이 훨씬 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일각에서는 강우석 같은 충무로 대표 거장이 웹툰에 꽂혀 오롯이 옮기는 데에만 그쳤다는 혹평이 나올 수도 있음이다.
마지막으로 불만을 더 토로해 보자면 대사에 있다. 소설이 아닌 만화이기에 대사를 바꾼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다. 원작을 본 사람이라면 장면마다 인물이 대사를 치기 전에 입에서 읊조리게 될 정도로 대부분 만화의 대사를 그대로 가져왔다. 만화였기에 가능한 대사나 연결고리들이 실사 영화로 구현되니까 너무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상당했다. 그나마 명배우들이 열연을 해주었기에 덜 어색할 정도였지 연기마저 발 연기였다면 오그라들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 이장의 양아들이 슈퍼에 불을 내고 함께 타고 있을 때 너털웃음을 웃는 천용덕에게 내뿜는 유해국의 대사는 너무나도 튀었다. “아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지금 생각해도 어색했다. 이처럼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향유될 수 있는 부분을 무분별하게 고스란히 수용한 점은 분명 결점이다. 그 밖에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이 생략된 것도 있지만 원작과 달리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나레이션을 통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불친절한 부분일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웹툰 보고 보는거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해 안 되면 웹툰 봐~” 하는 것도 같았다.
이 영화와 원작을 통해 생각하게끔 만드는 캐릭터는 무엇보다 유해국이다. 원작에서는 어떤 메타포나 메시지를 끌어낼 수 있는 대사들이 유독 많았고, 이를 통한 상념의 잔재들도 꽤 풍성했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유해국과 박민욱 검사의 사연이 많이 줄어들면서 그 부분이 거의 부재하다시피 되었다. 하여 어디까지나 원작에 비추어 유해국 캐릭터를 상기해보고 싶다. 그는 이 작품의 화자 역할을 하며 극을 이끈다. 그를 따라가다 보면 들불처럼 번져오는 수많은 생각과 의심을 잠재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스리기 힘든 감정폭풍에 휩싸여 냉철함을 잃을 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죽음과 마을의 비밀에 대한 의심스러운 느낌으로 그는 마을 전체의 역사와 부딪쳤다. 사소한 시비부터 잦은 싸움, 큰 갈등과 사건까지 가리지 않고 전력을 다해 그 상황에 임하는 성격이었다. 유해국은 마땅한 것을 요구하고 당연한 것을 이야기 하다가 속세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정의를 위해 몸을 불살랐지만 그 재는 결국 부정을 띠고 있는 꼴이다.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유해국이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극중 유해국도 갈등하고 보는 이도 역시 혼란스러워진다. 유해국과 함께 천용덕 또한 캐릭터의 깊이가 못지않다. 워낙 악역이었기 때문에 현실성을 고려하기 모호하지만 이장 천용덕은 서툰 듯하지만 정교하고 모자른 듯하지만 교활했다. 굳이 천용덕 캐릭터에 변명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같은 듯 살짝 다른 뉘앙스의 부자 유해국과 유목형, 그리고 구원과 복수로 점철되는 유목형과 천용덕, 이들 관계 역시 한 번쯤 상고해봐야 할 인물비교군일 것이다.
이끼를 접하면서 공지영 작가 “도가니”의 무진시가 떠올랐다. 토착민을 이길 수 있는 공권력 따위는 없다? 이런 세태가 치가 떨린다. 웹툰을 압도하려면 영화는 더 치가 떨렸어야 했다. 숨기려는 걸 들추려 하고, 피하려는 걸 맞대려 하고, 넘기려는 걸 따지려 하는 사람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 이기는 싸움, 지는 싸움이란 건 없다고 싸움을 한 이상 모두 패자라고 유목형은 말했지만, 싸워보지도 않고선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쩔 수 없어’ , ‘넌 얼마나 깨끗한데?’ , ‘다 똑같아’라고 말하는 인간군상들,,, 이끼처럼 딱 들러붙어 조용히 살라고 조장하지만 방관자가 방조자보다 더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때가 많다. 이끼라는 제목의 상징성이 앞에 말한 우리들의 처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스산하고 칙칙한 곳에서 소리 없이 피어나는 이끼처럼, 이기적인 인간들의 추악함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끓을 때 이를 없애야 하는 대상이 제목 이끼인 것이라고 매듭짓고 싶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비록 모가 나고 깨지더라도 돌이라면 굴러봐야 하지 않을까?
※ 蛇足
그래도 [이끼]는 평점 9점을 주고 싶다. 물론 영화는 강우석 감독이 만들었지만 윤태호 작가의 공에 평점을 후하게 주고 싶다. 6대3? 5대4? 여하튼 [이끼] DVD 보다는 “이끼” 단행본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더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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