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연못'이라는 영화
"한국전쟁 당시, 소풍처럼 떠난 피난길에서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 서게 된 대문 바위골 주민들의 생존드라마"라고 영화소개는 말하고 있었다. 아... 생각만 해도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마음에 심장에 단단히 다짐을 하고 가야 할 거 같다. 노근리 사건은 1950년 7월. 6.25 전쟁 중에 남하하던 피난민에 대한 미군의 무차별 폭격 사건으로 500명의 민간인 중 25명만의 생존자를 남긴 사건이다. 1999년 AP통신의 기자들에 의해 최초 보도가 이루어져 2000년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영국 BBC 다큐멘터리로 제작되며 본격적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 가해자들의 은폐로 오랫동안 덮여 있었지만, 1994년에 살아남은 주민이 저서를 출판한 것이 이 사건이 세상 속에 드러난 시작이었다. 해 10월 29일 주한미군이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2004년에는 사건의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이 사건은 반미 감정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사건이 일어났던 경부선 노근리 쌍굴다리는 2003년 6월 30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었다. 그렇게 세상에 알려지고 너무도 늦게 세상에 인정을 받은 그들의 이야기가 드디어 영화로 만들어졌다니, 그 50여년의 시간만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듯 하였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한국사람들은 영화로 안만드냐는 영국기자의 질문에 부끄러움을 느낀 영화인들의 노력으로 최소의 제작비로 고생끝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은 굳이 설명을 안들어도 알듯하였다. 문성근, 강신일, 이대연, 고 박광정, 김뢰하, 전혜진, 송강호, 문소리 등 연기라면 누구에게라도 지지 않을 배우들이 대거 노개런티로 참여했다고 한다. 배우 뿐만 아니라 스태프 및 후반자업 업체와 장비관련 업체들도 자발적인 노무투자와 현물투자 방식으로 작품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는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이 영화에 대해 신뢰가 생겼다. 영화에 출연하는 그들의 진지한 열정과 진심이 묻어나는 연기와 장면에서 느껴졌다면 나의 착각일까? 영화는 담담히 아무 것도 ! 모르는 순수한 민간인들이 철저히 그들의 헛되고 순진한 바램이 철저히 전쟁으로 인해 짓밟히는 과정을 다뤘다. 순수한 민간인!이라고 하는 개념이 전쟁이라는 그 시간과 현장에선 무의미하다. 전쟁에 동원된 군인들은 순수하지 않은가? 그들은 스스로 전쟁을 선택한 것인가? 어쨌든 농사를 짓고 소박하게 살던 이들의 헛된 바램이 가슴 아팠고 더욱이나 처절하게 죽어가는 아이와 여성들의 죽음에 분노를 느끼며 영화를 보았다. 물론 그들 모두의 죽음이 가슴 아팠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일상과 터전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주인으로 이 땅에 살던 그들이 강대국의 군홧발 아래 아무렇게나 뿌리뽑히는 모습은 죽음보다도 더 비참했다. 하지만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왜 전쟁을 통해 제일 먼저 버려지고 제일 먼저 죽어가는 여성들과 아이들은 전쟁이 끝나고 나면 일상과 평화, 생명으로 다시 조명되는지 울분이 울컥 솟아올랐다. '집안'을 지켜야 되는 것도, '핏줄'을 지키는 것도 남자였다. 그래서 그나마의 생존 기회도 주어진 것은 남자였다. 그런데 다시 살아남아 희망을 전하는 것은 여성이었다. 버려진 아이들이었다. 참 슬프고도 이중적 메세지이다.
또한 '전쟁에 대해서 누구도 원망하지 않은 결말' (그래서 언론에서는 그 점이 훌륭한 점이라고 하더라..) 은 과연 누구에게 유익한 것일까? 책임질 사람들은 아직 책임지지 않았고 댓가를 치를 사람들은 댓가를 인정하지도 않는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죽어간 사람들이, 짓밟힌 사람들이 원망하지 않고 심지어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모르겠다. 내가 덕이 덜 쌓이고 인간이 덜 성숙하거나 내면의 무슨 심리적인 무언가가 있어 그런 것인지도. 하지만 용서받을 사람이 용서를 비는 세상이, 사회가 아니라면 용서는 진정한 용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 분들이 용서했을까? 다만 당신들이 살아가기 위해 그분들이 스스로를 다둑거리고 상처를 이겨나기기 위해 살아낸 시간들은 용서가 아니라 생존 아니었을까?
영화는 훌륭했다. 머리가 멍해지도록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시사회장을 민망하게 나왔고 후배와 찻집에 가서도 한참을 그 감정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더 많이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이야기 하고 싶었다. 전쟁의 부당함이 아니라 평화를 지키는 주권과 진정한 용서를 할 수 있는 우리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수많은 역사에서 제일 먼저 죽어가고 사라진 여성들의 역사도 더불어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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