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발발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동막골의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추어진 세계처럼 보인다. 사차원 세계에서 만나게 되는 신비로운 일상처럼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조금은 생경하면서도 익살맞게 진행된다. 그 가운데 서로 총을 겨누는 두 무리와 참으로 어정쩡한 미군까지 가세하면서 마을에 전운이 감돈다. 전쟁이라는 무겁고 심각한 소재를 웃음 터져나오는 생뚱맞은 대사와 귀에 익지 않은 사투리로 새털같이 가벼운 일상으로 돌려 놓는다. 긴장이 고조될만하면 그 긴장을 확 풀어놓는 기가 막히는 행동들. 가파른 암벽을 통과하다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는 장면에서조차도 바로 전에 뱉은 한 마디 때문에 반자동으로 웃어버리게 만드는 것은 탐탁치 않게 보이기도 한다. 관객이 이 영화를 심각하게 보기를 원치 않는다는 싸인으로 보인다. 요소 요소에서 심각하고 눈물 흐를만한 장면 가운데 빠뜨리는가 싶으면 이내 곧 배를 잡고 웃게 만들어버리는 코미디적인 모습이 뒤따라 나오고 만다.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면 진지해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 표소위가 부락의 촌장에게 고함 한번 지르지 않고 부락민을 통솔하는 리더쉽의 비결을 물을 때 촌장은 담배만 뻐끔거리며 "먹을 걸 많이 맥역야지"한다. 뭔가 그럴싸한 답을 기대했다가 맥이 탁 풀리며 웃어버리게 된다. 기가 막힌다. 그런데 곰곰히 뒤돌아 생각해보면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다른 아무 조치도 허공을 떠도는 말이 되고 만다는 경고의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역설의 역설을 뒤엉클 수 있는 여분을 곳곳에 남겨두고 설렁설렁 영화가 흘러간다.
남북이 동족이라는 의식은 전시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일인데, 어찌보면 소외된 층이라고 볼 수 있는 동막골에 찾아든 군인들에겐 소박한 촌부의 마음으로 되돌려져서일까 서서히 그들은 형제애를 느끼게 되는듯 하다. 그러나 어쩌면 양쪽 캐릭터 모두 전쟁에 임하는 군인이라는 설정에 환영받지 못할 것같은 새삼스런 인간애를 가진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재밌는 건 시종일관 인민군은 결단력 있고 강직한 리더쉽을 보이나 국군은 유약하기 이를 데 없다. 인간적이기도 하지만 유약한 모습. 그런 모습들에 균형을 맞추고 싶어서였을까 마지막엔 국군 소위에게 조금 무게를 실어주는 모양새를 갖춘다. 그러나 형님의 응원과 지지를 받아 다시 일어서는 아우의 모습을 씻을 수 없다. 여하간 마지막은 국군인 표소위가 지휘관이 된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아무리 멋진 흑인이 나오더라도 그는 그냥 임품 좋은 아량베풀 줄 아는 뒷선이고 결국 백인이 그의 중심에 서게 되는 걸 연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