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은 정말 예쁜 영화입니다.. 수채화같이 깔끔한 산과 정원의 풍경, 풍경속에선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놀고, 추억의 노래가 그치지 않는 까페, 영원히 열여덟 살일 것만같은 귀엽고 예쁜 주인공들. 이들이 간직해온 예쁜 사진들... 영화는 이렇게 젊은날의 변치 말아야할 것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봅니다.
젊은 날의 상처는 정말로 치유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아물기는 하지만, 언제가는, 꼭 한번은 또 다시 터져버리고야 마는 그런 상처입니다. 그렇기에 상처가 큰사람은 그 상처 때문에 영원히 열여덟살이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그 상처가..비록 참을 수 없이 아프기는 하지만, 정작 본인은 계속 아프기만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아파고 아파도 계속 아프고 싶기 때문입니다. 또한 몇 년이 지나,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지나 다시 허물어진 상처는, 어쩌면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세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상처... 지환의 입장으로 본다면, 수인과 경희는 결국 하나와도 같은 친구이자 애인입니다. 수인을 사랑한 것은 결국 경희를 사랑한 것이고, 경희를 사랑한 것은 결국 수인을 사랑한 것이었지요. 영화는 줄곧 그의 시선을 따라갑니다. 그가 보는 사진기의 눈으로 수인과 경희를 보고 그가 찍은 사진을 따라 추억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추억은 정말로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셋이 함께한 여행지에서의 밤, 반딧불이를 찾아 기도를 하면 불씨가 반딧불이가 되어버리는 밤. 어둠이 짖게 깔린 서울의 술냄세 가득한 밤의 풍경 마저도, 그의 머리 속 사진들은 너무나도 밝고 예쁩니다. 왜냐구요? 그건 현실이 아니니까요.. 우리는, 수인이, 아니 경희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껏 영화속의 시간을, 아니 어쩌면 우리 자신의 시간을, 시계를 부수고라도 돌려놓고 싶기 때문이니까요.
지환이 사랑하는 두명의 친구. 그들과의 시작은 우정입니다. 첫눈에 반하고 첫 번에 퇴짜를 맞지만, 영화는 시계로 머리를 감추고 시간을 되돌려 사과한다는 재미있고 가벼운 우정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결국 우정이 사랑으로 바뀌고 사랑이 죽음으로 바뀌면서, 그들을 묵어주었던 장난감 같던 시간의 시계는, 어느덧, 경희의 죽음을 되돌리고픈 수인의 처절한 원망이 서린 부숴진 시계로 변하고 맙니다. 어쩌면, 영화는. 젊은 날의 사랑이 결국은 죽을 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 싶었나 봅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지환과 수인. 그들은 경희가 죽은 후에 진짜 사랑을 할 듯도 하지만, 결국 이들이 원했던 사랑은 다시 한번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맙니다. 아니, 어쩌면, 경희가 죽고 그들이 다시 만난 것은 못다한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라기 보단, 그들의 젊은 날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상처를, 친구를 죽음으로 이끈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어떻게 해서든 서로 확인하고 감싸주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너도 나도, 한때는 사랑을 했다는.. 죽고 싶을 정도로 사랑을 했다는.. 정말로 예쁜 사랑을 했다는... 그 말 한마디를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과연,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아니, 정말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사랑을, 죽기전에 한번이라도 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채워지지 않는 우물을 비가 와서 채워지길 바라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 아닐런지... 어쩌면 영화는 진정 사랑하기에 죽을 수 밖에 없다고 참혹하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이 있던 시간을 돌려 놓고 싶지만 결국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경희는 죽고, 수인은 죽고, 지환은 멍하게 사진 몇장을 쳐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가 살면서 할 수 있는 사랑이란 것은 시간을 되돌려서 살릴 수 있는 것도, 누군가 하나가 죽어서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기도하는 수인과 경희를 위해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를 들어 반딧불이를 만드는 지환의 마음.. 그것이 전부가 아닐런지... 아마도.. 사랑은, 그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