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끔찍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이 '조용한' 영화 하얀 리본
ki2611 2010-08-18 오전 10:28:36 439   [0]


 사건의 시작은 의사의 낙마사고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왕진을 마친 뒤 말을 타고 귀가하던 의사가 누군가가 설치한 줄에 걸려 말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의사는 쇄골이 부러지고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사소한 사고사로 시작한 사건들이 점점 불안을 키우는 것처럼 수위가 높아집니다. 평화롭기만 보이는 이 시골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우선 1913년이라는 시대를 주목해 봐야겠습니다. 이 미묘한 시점은 근대와 현대의 과도기적인 시점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비극과 전체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 막 터지기 직전의 시점이기도 하지요. 이런 즉물적인 상징적 장치가 아니더라도 영화 내의 숨 막힐 정도로 순수와 복종, 종교적 엄격함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영 마음에 걸립니다. 복종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쉽게 폭력을 행사하는 어른들. 질식할 것 같은 순수의 규율과 종교적 도덕성으로 자식들을 억압하는 목사 아버지. 그런데 또한 이런 어른들은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방 남작의 권한 아래 놓여 있습니다. 남작의 권력적인 억압이 어른들에게 행사되어지고, 어른들은 당연한 풍습처럼 자신의 아이들에게 순종을 요구합니다. 이런 복종과 억압의 악순환이 이 영화의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군요.


 아이들에게 순수와 종교적 청결함을 요구하며 폭력을 당연하게 행사하는 어른들의 세상은 추악하군요. 마을에서 덕망을 얻고 있는 의사의 사생활은 추잡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영적 지도자로서 소임을 다해야 한다며 신의 말씀을 따른다는 목사의 아이들에 대한 관대함은 끔찍할 정도로 숨 막히는 제재와 억압입니다. 마을의 존경받는 남작 내외의 이중적인 사생활도 위태롭고 위선적이네요. 이 모든 거짓과 추악함을 모른 척 생활하는 이 마을의 질서와 모든 것들은 엄정하고 청교도적입니다. 검소와 신실함이 형식적으로 지배하고 있군요.


 누군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방화와 남작 아이의 실종사건과 구타, 그리고 정신지체아인 칼의 눈을 도려낸 소름끼치는 사건이 절정에 이르면 이 일을 저지른 이가 과연 누구일지 궁금할 것입니다.


 이 영화는 끔찍한 폭력의 순환에 대한 우화일지도 모르겠군요. 유일하게 이 사건의 숨은 비밀을 눈치 챈 주인공인 교사가 진실을 밝히려 하지만 사건은 미완인 채로 마무리됩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중대한 사건이 터진 것이지요. 사라예보에서 황태자 부부가 총격 암살되어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입니다. 이제는 이 작은 마을에서 가장 우위에 있었던 남작 또한 전쟁이라고 하는 또 다른 폭력의 상징 아래에 놓여 버렸군요. 마을 사람들을 지배하던 남작, 아이들을 억압과 순종으로 길들였던 마을의 어른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약자인 어린이들에게도 말이지요.


흑백의 영화적인 시선은 고요하고 정밀하면서도 질서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견고한 질서 이면에 감추어진 인간 내면의 추악한 본성을 어린아이들을 통해 표출되는 것을 보는 일은 여전히 괴롭습니다. 그들이 피해자이면서도 잠재된 가해자로 폭력의 순환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섬뜩한 추측도 이 영화는 숨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당장 전쟁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로 화할 그들이 안쓰럽군요.


 처음부터 갇힌 새는 자유를 모른단다.


다친 새를 돌보겠다고 말한 어린 아들에게 목사는 그렇게 말합니다. 순수와 복종을 의미하는 하얀 리본. 마르틴과 클라라가 묶은 하얀 리본은 순식간에 그 의미를 달리합니다. 억압과 폭력, 추악함과 더러움. 처음 클라라를 중심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여자 아이들의 뒷모습은 영 아이답지 않더군요. 그 안에 숨겨진 섬뜩함이 흑백의 영상에서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끝내 불온한 상징으로 바뀌는 하얀 리본. 이 영화는 마을의 분위기처럼 엄격하고 청빈할 정도입니다. 자제된 스타일과 검박한 흑백의 색채, 침묵하는 음악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하지만 치밀하게 직조된 인간 본연의 폭력성과 끔찍하지만 그 순환에 어린 아이들까지도 소모될 수밖에 냉정하고도 비관적인 영화적 내용만은 지독하게 붉군요. 그것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않아도 충분히 끔찍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이 '조용한' 영화가 끝내 두려워집니다.



(총 0명 참여)
owonh1
역사영화는 항상   
2010-08-25 01:36
qhrtnddk93
그래요   
2010-08-19 16:07
hooper
감사   
2010-08-18 16:29
k87kmkyr
좋은정보입니다   
2010-08-18 15:40
l303704
구체적인 리뷰 잘 보았습니다.   
2010-08-18 11:32
leeym9186
그렇군요~   
2010-08-18 10:42
1


공지 티켓나눔터 이용 중지 예정 안내! movist 14.06.05
공지 [중요] 모든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 관련 안내 movist 07.08.03
공지 영화예매권을 향한 무한 도전! 응모방식 및 당첨자 확인 movist 11.08.17
86178 [이끼] 3시간의 즐거움 (2) sich00 10.08.18 734 0
86177 [인셉션] 상상이라는 놀라운 힘 (2) sich00 10.08.18 771 0
86176 [포화속으로] 포화속으로 (4) sich00 10.08.18 715 0
86175 [아저씨] 강렬한인상 (4) sich00 10.08.18 318 0
86174 [스텝업 3D] 아직도 흥겨움이 가시지 않는다. (2) sich00 10.08.18 393 0
86173 [솔트] 졸리의 Action (4) sich00 10.08.18 492 0
86172 [익스펜더블] 나름괜츈? (6) kinkaru 10.08.18 673 0
86171 [유령작가] 품격이 다른 스릴러 영화~~~~~^^ (3) ttkyung 10.08.18 510 0
86170 [골든 슬럼버] 스토리가 참신한 (4) jaeeunchoi 10.08.18 516 0
86169 [카이지] 나태하게 살지말라는 카이지의 교훈!! (5) kaminari2002 10.08.18 441 0
86168 [엑스페리먼트] 루시퍼 이펙트 (4) woomai 10.08.18 456 0
86167 [악마를 보..] 좋다...........하지만........... (7) junheuk 10.08.18 521 0
86166 [내니 맥피..] 1편만큼 감동이다 (6) littlesinji 10.08.18 533 0
86165 [아저씨] 아저씨라 쓰고 원빈이라 부른다 (7) littlesinji 10.08.18 440 0
86164 [악마를 보..] 내생의 최악의영화 (6) littlesinji 10.08.18 814 0
86163 [토이 스토..] 토이스토리의 세상 (7) littlesinji 10.08.18 627 0
86162 [포화속으로] 캐스팅은 굿이나.. (4) smartshw 10.08.18 628 0
86161 [이클립스] 후속작.. (5) smartshw 10.08.18 775 0
86160 [솔트] 졸리의 액션 (6) smartshw 10.08.18 575 0
86159 [골든 슬럼버] 현실과 맞닿아있는 영화... (8) blueprint119 10.08.18 466 0
86158 [에브리바디..] 뜨거운 세 남녀 사이의 섹시 코믹 스캔들을 그린 '에브리바디 올라잇'이 (3) hanhi777 10.08.18 483 0
86157 [에브리바디..] 유쾌하고 뜨거운 두 여자와 쿨한 바람둥이 사이에 일어나는 섹시 코믹 스캔들 ‘에브리바디 (3) jeh6112 10.08.18 530 0
86156 [악마를 보..] 악마성 표현의 복수극 재발견에 대한 충격 (6) aa1122123 10.08.18 654 2
86155 [엑스페리먼트] 벌거벗은 상태에서의 폭력성을 그린 작품 (3) hrqueen1 10.08.18 475 0
86154 [악마를 보..] 소문난 잔치에 먹을것 없다?! (7) nayonggirl 10.08.18 466 0
86153 [폐가] 밋밋한 느낌 (7) ki2611 10.08.18 499 0
86152 [위대한 침묵] 우리네 삶의 느린 리듬에 관해 이야기 (6) ki2611 10.08.18 353 0
현재 [하얀 리본] 끔찍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이 '조용한' 영화 (6) ki2611 10.08.18 439 0
86150 [잊혀진 가방] 뚜렷한 캐릭터들은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 (4) ki2611 10.08.18 318 0
86149 [미녀들의 ..] <미녀들의 전쟁 (4) ki2611 10.08.18 361 0
86148 [레퓨지] 가족주의자들에게 무척 불순한 코드 (5) ki2611 10.08.18 407 1
86147 [마법사의 ..] 기존의 영화들이 획득하지 못한 부분 (3) ki2611 10.08.18 988 0

이전으로이전으로286 | 287 | 288 | 289 | 290 | 291 | 292 | 293 | 294 | 295 | 296 | 297 | 298 | 299 | 300다음으로 다음으로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