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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꼴찌 투수의 찬란한 나날 슈퍼스타 감사용
sunjjangill 2010-08-27 오전 7:21:38 1265   [0]
프로야구 원년 MBC 청룡 어린이 회원이었던 나는 삼미 슈퍼스타즈를, 그들과 청룡이 맞붙는 날이면 한시름 놓았던 팀으로 기억한다. 나와 친구들은 웬만하면 지는 그 팀을 ‘삼미 슬퍼스타즈’라고 불렀던 것도 같다. 물론 페이소스 따위를 스포츠에서 구하기에 우리는 너무 어렸다. “약체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팬이라 좋은 것은 패배를 의연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라고 자랑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쿨한 수필을 읽은 것도 훨씬 나중 일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열등생과 아웃사이더는 영화의 오랜 스타다. 그들의 성취담은 영화가 스토리라는 것을 갖게 된 이래 환영받는 소재였다. 이 테마에 대한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꾸준한 매혹은 약자의 반격을 그린 내러티브에 내장된 파괴력을 증명한다. 엄밀히 말해 <슈퍼스타 감사용>의 주인공 감사용은, 복원해야 할 실존 인물이라기보다 고전적 약자 히어로의 속성을 뭉뚱그린 일종의 기호다. 과연 <슈퍼스타 감사용>은 예고편부터 셌다. 넥타이를 날리며 자전거에서 내린 후줄근한 철공소 주임이 코치에게 “제가, 감사용입니다”라고 외치는 광경만으로, 투구에 몰두한 이범수의 옆얼굴만으로 코끝이 저리기에 충분했다.

 

학창 시절 야구선수였으나 실업팀에 뽑히지 못하고 삼미특수강에 입사한 감사용(이범수)은 직장 야구로 꿈을 달래던 어느 날 좌완투수 없는 프로팀 삼미 슈퍼스타즈 공모에 합격한다. 그러나 건어물 가게를 하며 삼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김수미)에게 “직장을 때려친 게 아니라 옮긴 것”이라는 아들의 주장은 믿기지 않는다. 선수가 됐으나 마운드에 설 기회는 오지 않고, 마운드에 서긴 했으나 선발 출장 명령은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벤치의 감사용은 출전한 선수들에게 항상 “자신있게! 괜찮아, 괜찮아!” 외치는데, 그것은 스스로 듣고 싶은 말처럼 들린다. 구장 매표소 직원 은아(윤진서)와 사랑이 더디게 싹틀 무렵, 기회는 벽력처럼 찾아온다. 20연승 세계 기록에 도전하는 박철순 선발 경기의 상대를 다른 투수들이 기피하는 것. “선수 같지도 않은”이라는 비웃음에 답하기 위해 감사용이 나설 때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실화가 아닌 대목에서는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영화적 클리셰를 적극 동원한다.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법 교과서에 예제로 실릴 법한 상황이 즐비하다. 달리던 감사용이 시위대열에 휘말렸다가 정신을 차리면 슈퍼스타즈의 거대한 마스코트 앞이다. 그의 발탁은 회사 구내방송으로 쩌렁쩌렁 공표되고 직장 동료였던 배우지망생은 스타가 되어 하필 감사용 선발경기 시구를 던진다. 군중에 떠밀려 억지로 스타 선수의 사인을 받는 상황도 빚어진다. 그러나 이들이 배치된 리듬은 그만큼 영악하지 않다. 직장생활의 답답함, 출전의 기다림, 선발 출전을 꿈꾸는 시간의 구획이 야무지지 못해 긴장의 상승세가 불분명하고, 여러 차례 등장하는 몽타주 시퀀스의 요점도 더 명확할 필요가 있다. 동화 같은 로맨스도 실화의 힘을 갉아먹는다. 윤진서는 좋은 피사체지만 CF 이미지 그대로 해맑기만 해서 사람이라기보다 희망의 요정 같다.

 

김종현 감독의 제구력은 이야기를 전진시킬 때보다 멈추어 사용의 가족과 야구팀을 ‘묘사’할 때 쾌조를 보인다. 서로의 이야기를 안 듣는 척하면서 듣고, 상대가 들은 걸 알고도 내색하지 않는 식으로 소통한다는 점에서 매우 한국적인, 사용의 집안 풍경은 김수미의 곰삭은 호연에 힘입어 관객을 설득한다. 한편 패배에 중독돼 “이기면 불안하고 역전당하면 안심이 되는” 슈퍼스타즈 선수들이 뒤엉켜 있는 더그아웃과 로커룸을 묘사할 때, 대사와 카메라 움직임에는 성실한 고심의 흔적이 역력하다. 영화의 긴 클라이맥스인 OB베어스 대전의 역동적 촬영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심호흡처럼 흩어지는 투수의 송진 가루와 홈베이스에 누워 하늘을 보는 주자의 미소를 잡아내는 애정어린 눈이다.

아마 <슈퍼스타 감사용>에는 두개의 길이 있었을 것이다. 삶의 양식으로서 패배를 천착하거나 아니면 이기고 싶다는 패자의 열망을 기념하거나. 후자를 택한 이 영화는 지는 데 익숙해지지 말라고, “나도 이길 수 있었다" 고 당당히 울먹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삼미 슈퍼스타즈와 감사용의 싸움은 철저한 패배의 맥락 위에 있었다. 중요한 것은 스타의 기록 갱신이지 삼미의 1승 추가가 아니었다. 승리하고 싶다는 삼미와 감사용의 열망은 사람들이 건성으로 끄덕이면서도, 내심 귀찮아 뭉개버리고 싶어하는 종류의 진실이다. 그래서 그들의 1승은 오직 그들에게만 중요하고, 승부를 넘어선 실존적 의미를 얻는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존경할 만한 적수의 존중 속에서 100% 진력해 승부를 겨룰 수 있는, 생의 충만한 순간에 관한 영화다. 그날 감사용은 다 이루었다. 그래서, “삼미는 1983년 전기리그 2위를 했다”는 위로 투의 에필로그 자막은, 다른 노래에서 떼어온 후렴처럼 거추장스럽다.


(총 1명 참여)
kkmkyr
볼만하겟어요   
2010-09-07 18:58
hadang419
잘 읽었어요~~   
2010-09-02 23:41
boksh3
감사   
2010-08-27 16:07
qhrtnddk93
리뷰 좋네요   
2010-08-27 15:4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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