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성 감독은 <선생 김봉두>에서 교육계의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울고 웃기는 코미디를 만들었다. 그가 여전히 동일한 소재로 비슷한 주제를 끄집어낸다고 하지만 <여선생vs여제자>는 전작과는 다른 감정 선상에서 감동과 웃음을 주는 코미디 영화이다.
촌지와 같은 민감한 문제에서 출발한 <선생 김봉두>는 우리 현실의 우스꽝스러운 복사본이었다. 그러나 <여선생vs여제자>는 전체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교실 내에서 일어난 연애史를 빗대어 현실을 카피한다. ‘선생/교육자’라는 자신의 위치를 기만해 위풍당당 아이들 앞에서 군림하려는 여미옥(염정아)은 아이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우리들 유년의 어느 선생님과 같은 모습이다. 그녀에게 가르치는 일이란, ‘직업’일 뿐 주고받는 물물교환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녀의 제자 고미남(이세영)은 고작 이런 선생이 가르치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유년 모습일 것이다.
왕따 당한 미남의 시선이 친구들이 아닌 황급히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는 미옥에게 머무는 이유를 관객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꽃미남 미술선생(이지훈)이 학교에 부임하자 여선생과 여제자의 가시화 된 갈등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러브쟁탈전이 펼쳐진다. 각자의 신분 위치를 활용해 미술선생을 자신만의 늑대 목도리로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두 ‘여자’, 이 둘은 운명적 사랑만큼이나 라이벌이 누구인지도 빠르게 간파한다.
선생의 치부를 들춰내는 당돌한 여제자 앞에서 점점 위선으로 치장한 지성미와 우아함을 잃어가는 여선생. 그녀가 제자에게 밀리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주인공이 잘못을 뉘우친다는 착한 이야기 진행을 위해서 필요한 장면들이다. 그러나 여선생이 어린 제자에게 휘둘리는 이유가 사랑 때문이 아닌 빠르게 변해 가는 시대만큼이나 앞서나가는 아이들의 놀이문화, 정서를 간과한데서 온 문제라면 영화의 주제는 이 지점에서부터 달라진다.
영악한 아이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선생님들의 애환이 느껴지는 몇몇 장면 속에서 <선생 김봉두>와는 다른 좀더 세분화된 교육현실 문제를 끄집어낸다. 그 갈등이 증폭되고 해결되는 과정 속에서 당연히 뭉클한 ‘감동’이 느껴진다. 그리고 女선생과 女제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형성되는 ‘동지의식’은 여성관객과 공감대를 이룰 것이다. 한편, 남성관객이라면 <여선생vs여제자>에서 후궁들의 암투와 음모를 다룬 ‘궁중사극’을 보는 것과 유사한 재미를 얻을 것이다. 숫컷 한 마리를 차지하기 위해 비열(?)한 술수도 마다 않는 암컷들의 싸움은 상태 좋은 남성에게로 향한 은근한 시기심 혹은 대리만족을 자극한다. 결국, <여선생vs여제자>가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가지 흥행코드를 갖추었지만 <선생 김봉두>에서 빌려온 비판적인 시각은 단지 ‘장신구’로 이용될 뿐이다.
사실, 이 영화의 재미는 교실이라는 축소판을 이용해 여자들의 경쟁세계를 오밀조밀 펼쳐 보이는 데서 나온다. 이것은 머리채 휘어잡고 싸우는 여자들의 혈투를 구경하는 재미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싸움의 이유가 당신 자신이라면 어찌 즐겁지 아니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