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꿈꾸며 기다린 뒤 절망이 남기는 황폐함을 충격적으로 담은 영화 배우들의 연기로 감동은 가슴에 무겁게 자리한다.
"살인, 그러나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무도를 배경으로 그 안에서 발생한 끔찍한 살인사건의 전말을 들려주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충격적인 내용과 잔혹한 영상임에도 최고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영화다. '법이란 사람이 사는 환경에 따라 달라져'라는 대사에서 의미하듯 무도에는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만의 또 다른 법이 존재한다.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자행되지만 보려하지 않고 봐도 모른체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비단 무도만의 일은 아님을 영화 첫 장면에서 보여준다. '나만 아니면 돼'라며 내가 희생자가 아니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추악한 마음을 투영하는 이번 작품은 관람하는 동안 무거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무도에서 끔찍한 삶을 살며 유일한 탈출구이자 구원이 될 해원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김복남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모른체하고 피했거나 알면서도 주저했던 나약하고 비겁한 순간의 우리 모습의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복남은 살인을 통해 그녀가 참았던 울분을 폭발하는 모습을 담아내는 영상은 <악마를 보았다>에 견줄만큼 잔인하다. 그러나 그 잔혹함에는 우리가 그녀를 위해 함께 흘리는 눈물이 어려있다. 그리고 영화도 그녀의 살인이 정당하다고 암묵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용사받을 수 없는 '살인'이란 죄를 지었음에도 누구도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유혈이 낭자한 영상 속에 감춰진 영화가 갖는 참된 메세지일 것이다.
"불친절한 세상을 피해 달아난 곳이지만 더 불친절한 무도"
폭행 당하는 여자의 도와달라는 절규에도 무심히 자동차 유리문을 닫는 해원은 점점 더 개인화되어가는 사회의 우리들의 단면이다. 내가 당한 일이 아님을 감사해하면서 보복이 두렵고 내 생활에 피해가 간다는 이유로 누굴 도와주려 하지 않는 사회의 현실. 그런 자기중심적인 생활방식으로 인한 불편한 대인관계와 목격자임이 노출된 상황으로 잠시 휴식을 취해 다시 희망찬 내일을 갖기 위한 해원은 무도로 향한다. 겉으로 보기엔 걱정없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서울보다 더 불친절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줄 알리없는 해원은 그렇게 자신만을 위한 공간으로 무도로 간다.
하지만 그토록 해원이 와주길 바라는 복남에게 무도는 한마디로 지옥같은 공간이다. 해원이 떠난 뒤 그곳에서 계속 살던 복남은 그곳 남자들에게 겁탈당해 누가 아빠인지 모를 딸을 키우며 남편과 시동생 그리고 무섭도록 냉정한 시어머니와 살고 있다. 단지 애 딸린 여자를 받아 주며 산다는 이유로 복남의 하루하루는 죽지못해 사는 나날이 계속된다. 남편은 걸핏하면 폭력이고 창녀를 집으로 불러들이며 자신의 동생이 아내를 겁탈하는 줄 알면서도 아내만 때려댄다. 심지어 친자식이 아니란 이유로 자신이 키우는 딸과도 잠자리를 하는 금수만도 못한 놈이다.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같은 여자이지만 시어머니는 오로지 복남만을 볶아대며 모른채한다. 거기에 동네 주민들도 모두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무도에 유일한 일꾼의 편에서서 진실을 외곡한다. '여긴 알아도 모르는 거야'라는 의미심장한 말이 딱 맞는 공간... 무도이다.
"절망과 희망의 핏빛 합주"
유일한 삶의 이유인 딸 연희의 죽음을 계기로 복남은 변한다. 참고 억눌렀던 자신을 폭팔시키며 진실을 못본채하고 거짓말을 한 위선자나 방관자들을 향해 낫을 든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날, 딸 연희가 죽고 여느때와 똑같이 밭일을 미친듯이 하는 복남과 그런 그녀를 도와주지 않고 자신들만 흥겹게 노래하던 주민들의 묘한 대비가 정점에 이르던 순간, 태양이 '참으면 병생긴다'는 말을 듣고 모두에게 핏빛 단죄를 한다. 어릴적 함께 피리를 불던 그녀를 유일한 희망으로 생각했지만 더 큰 절망을 안겨 준 해원도 예외는 아니다. 모두들 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 해원이지만 복남은 시동생의 겁탈을 막아준다. 왜 복남은 해원을 도와줬을까? 그러면서도 왜 끝까지 해원을 죽이려 쫒아간걸까...어린 시절 장난스럽게 입맞춤을 기억하며 사랑을 느꼈을지 모르고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도 그녀와 함께 불던 피리를 보관하며 희망을 꿈꿨으리라. 그것이 비록 진실을 말하지 않은 해원이지만 차마 그녀에게만은 단죄를 할 수 없었던 이유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복남과 해원이 마지막 피리로 합주하는 모습은 사뭇치는 슬픔으로 남겨진다.
"배우들의 안정감 넘치는 연기가 돋보인 작품"
<김복남...>에서 단연 돋보이는 연기자는 서영희다. <추격자>에서 잔혹한 살인마에게 살해 당한 그녀가 이번엔 살인자가 되어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순수함과 잔혹함 그리고 분노와 슬픔을 모두 소화해 낸 그녀의 연기는 어떤 찬사로도 부족해 보인다. 그녀를 그토록 변하게 만든 상황이 아니더라도 착하고 순수한 그녀가 변하는 과정에서의 연기 변화는 진정한 이번 영화의 히로인이 서영희임을 의심하지 못하게 만든다.
거기에 서울 깍쟁이를 완벽하게 연기해 치떨리도록 미웠던 지성원의 연기도 훌륭했다. <하모니>에서 기억에 남지 않은 그녀였지만 이번 작품으로 확실한 각인을 주었다. 또 저런 남편이 사람인가 싶게 분노하게 만든 박정학은 다년간의 연극배우의 내공을 유감없이 쏟아 내 주셨고 최근 왕성환 활동으로 <아저씨> 이후로 확실한 악역을 소화해 주시는 백수련의 연기 내공도 서영희의 연기를 잘 끌어주어 환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들 배우의 연기만으로도 이번 작품은 꼭 봐야할 영화란 생각이 든다.
"에필로그"
길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세상이 급속하게 차가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에서 가방을 받아 주거나 자리를 양보했던 기억이나 비오는 날 다른 사람과 우산을 함께 썼던 정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대중들에게 도와달라 소리치기보다는 특정 누군가를 향해 도와달라고 해야 그나마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세상으로 변했다. 목격자를 찾는다고 걸린 플랭카드의 애절함에도 경찰서에 가면 귀찮아진다며 애써 외면하는 모습도 이제는 익숙한 광경이다.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이 살것 같은 외딴 섬을 배경으로 했지만 실제 무도나 서울이나 불친절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은 다르지 않게 보인다.
문제는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앞으로 다가 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순간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사는 분들로 인해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들 한다. 다만 그 누군가가 내가 되기 전엔 세상은 다시 따듯해 질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알아야 한다. <김복남....>을 통해 봐야할 것은 배우의 연기도 잔혹한 살인 광경일 수 있지만 이렇게 살다간 복남의 낫이나 망치로 죽어갔던 사람들이 멀지 않은 우리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정말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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