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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감상입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grovenor 2002-09-15 오후 9:42:49 1629   [11]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stage 1

장선우를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는 정치, 성, 불교이다. 여기에 한가지만 더 추가하자. 아니, 이 한가지가 정치, 성, 불교라는, 도전적이라는 점 이외에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 이해하기 힘든 세가지 키워드를 하나로 묶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키워드는, 바로 '고삐리 정신'이다.


'고삐리 정서'라는 단어를 해설해본다면 대충 이렇다 - 사춘기 소녀 수준의 감성, 사춘기 소년 수준의 난폭함, 사춘기 아이 수준의 도덕 가치관. 마치 세상에 불만은 많지만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몰라 오락실에서 슈팅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주'처럼, 첫사랑 아이돌 스타를 잊지 못해 눈물 흘리는 '성소'처럼, 장선우의 감성과 가치관은 '고삐리'에 머물러 있다. 기관총으로 아무나 죽이고, 좋아하는 여자한테 말을 못 걸어서 쭈빗거리고, 싸움 잘하는 여자가 멋있어서 따라가고…… 그건 사춘기 소녀/소년의 감성과 가치관이 아니면 이해할 수도 생각해낼 수도 없는 일들이다. 이건 험담이 아니라 칭찬이다. 도입부에서 소녀 두 명의 잡담이나, 짜장면 안 시켰다고 우기는 여사원에게 욕지거리를 해대는 주의 리얼한 묘사가 가능한 것도 (그 때문에 재밌는 것도) 장선우가 청소년과 성인의 중간쯤에 있는 세대들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재미있다. 장선우는 도대체 늙지 않는다. 그는 늘 고삐리 정서로 세상 문제를 파고들고, 그래서 어른들을 화나게 한다. 재미있는 일이다.






stage 2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가상현실에 관한 영화인가…… 일단 소재는 게임의 가상현실이다. 하지만 영화의 불충분한 완성도 때문에 장선우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차피 영화 속의 가상현실과 현실은 잘 구분되지 않고 있으며, 그런 이분법의 장르 관습을 따라가지도 않는다.



묘하게도 영화 속의 가상현실은 우리의 현실과 많은 부분이 겹친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임은경의 신비로운 얼굴을 담은 CF와 포스터를 보고, 오락실의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에 노출되고, 물건을 팔아달라는 앵벌이를 피해 다니고, 짜증나는 사람들을 총으로 쏘는 상상을 하곤 한다. 게임 속 현실에는 우리시대 젊은이들의 욕망과 사회 모순과 자본주의의 법칙이 그대로 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가상현실은 가상현실인척 하는 현실이다. 장선우의 의도인지 그의 무신경한 장르 해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영화 속에 가상현실과 현실을 만들고 그 차이점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가상현실로 만들어버리는 영화가 되었다. 영화에서 가상현실이라고 펼쳐진 세상은 우리의 현실이다…… 장선우의 상상력이 약간 덧붙여졌을 뿐.



그 덧붙여진 상상력이라는 것도, 그의 고삐리 정신이 만들어낸 온갖 땡깡이다. 성냥팔이 소녀가 무차별로 총을 휘두르는 stage 2는 그중 압권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분노는 직접적으로 장선우의 분노를 상징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장선우의 영화 중 <화엄경>이후 근 십년 만에 나온, 검열로 인한 삭제가 없는 영화라는 점이다. 그의 분노는 거침이 없다. 한 프레임 안에 성냥팔이 소녀의 기관총과 천사의 집 원장의 작은 총을 대비시키는 땡깡, 라이타를 사지 않는 행인들에게 무차별로 총을 휘두르는 아이돌 스타, 아베 마리아…… stage 2는 30억을 들여 만든 단편영화다. 장선우의 뻔뻔함과 분노가 뒤섞인 무자비한 실험영화다. 게다가 장선우가 가상현실의 폭력을 텔레비전에서 매일 보는 임은경의 얼굴에, 인터넷과 게임의 가상현실에 엮어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현실의 폭력으로 받아들이며 이해하고 소화해야 한다. 이 말도 안 될만큼 황당한 영화는 극장 밖을 나와서도 여전히 펼쳐져 있다. 말도 안되는 영화 한편을 봤다고 비웃어버리고 싶지만 임은경은 여전히 멍한 얼굴로 브라운관에 등장하고, 인터넷과 게임의 가상현실은 컴퓨터에 존재한다. 말도 안되는 이 영화가 현실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장선우의 화법이 성공적이었는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훌륭한 영화인가…… 그렇진 않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분명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영화다. 하지만 나는 장선우의 의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마흔이 넘도록 땡깡을 잃지 않는 정신력에, 30억짜리 단편 영화를 만든 독단에, 전세계 어디서도 나온적 없는 영화를 만든 창의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stage 3

영화에 논쟁이 붙을 때가 있다. 마돈나가 에바 페론 역을 맡는 것이 옳은 일이냐 하는 논란이 있었듯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도 논쟁이 붙었다. 감독의 독단으로 백억 넘는 돈을 써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옳은 일이냐, 그 영화가 재미없다면 누가 보상을 해야 할 것이냐, 감독은 도대체 무슨 정신이냐, 이런 논란 말이다.



이상하게 논쟁이 붙은 영화에는 평소에 영화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도 벌떼처럼 모여든다. 그리고 영화를 살려야할지 죽여야할지를 심판한다. 영화가 다수에게 ok 싸인이 떨어질만큼의 재미나 퀄리티가 나온다면, 사람들은 다수결의 법칙에 의해 영화를 살린다. 그러므로 다수가 감동할만큼 좋은 영화거나, 아니면 다수를 만족시키기 위해 아부를 떠는 영화라면 논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논쟁을 만드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 롤랑 조페가 자주 그러듯이.



물론 원치 않는데 논쟁에 휘말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기덕 감독이 그렇고, 장선우 감독이 그렇다. 게다가 이렇게 원치 않는 논쟁에 휘말리는 영화의 대부분은 불행히도 다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투표의 결과를 기다리던 다수는, 다수결의 법칙에 의해 '영화가 좋지 않다'로 판결이 나면 안심하면서 영화를 사형에 처한다. 영화는 다수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그러므로 논쟁은 다수가 승리했으며, 영화는 논쟁에서 졌으므로 사형 받아 마땅하다는 논리를 들어서 말이다. 그렇게 다수는 영화를 사형시키고 잊어버릴 수 있는 면죄부를 받은 것에 안심하고, 영화는 영화를 잊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알 수 없는 침묵 속에 묻혀 결국은 잊혀진다. 영화의 논쟁은 끝이 났고, 그렇게 영화의 수명도 끝났다고 우기며 영화의 재평가하려는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한다.



성냥팔이 소녀는 재림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사형시키고 잊어버리려 하고 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무시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면죄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다수들은 기쁠테지만 그 기쁨도 잠시일 것이다. 성냥팔이 소녀는 재림할테니까. 영화가 논쟁을 일으킨 것이 죄이고, 그 논쟁에서 졌다면 사형을 당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논쟁을 하지 말고, 영화를 보라. 논쟁에서 이기려 하지 말고, 영화의 장단점을 가려내려고 노력해라. 논쟁에서 이겨서, 잊어버려야 할 영화를 잊어버려서 행복하다고 자위하지 말고.










end










(총 0명 참여)
아 속시원한 글입니다 ^^   
2002-09-16 23:38
논리적인 님의 글 저랑 생각하는 부분이 비슷하신거 같습니다... 소수의 즐거움을 위한 영화도 반드시 필요하져.. 성소가 그런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2002-09-1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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