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랑프리>는 2006년작 <각설탕>을 만든 이정학 프로듀서가 기획하고 제작한
'말(馬)영화'인데다가, 김태희라는 미모의 여배우의 주연작이라는 점은,
임수정을 연상시키는 캐스팅이라는 점에서 또 한번의 흥행을 노릴만 했습니다.
하지만, 추석 연휴에 한국영화 5파전에서 개봉하는 <그랑프리>는 보고나니
자칫 '그랑프리'는 커녕 5위권 입상도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바람의 파이터> <아이리스>를 감독한 양윤호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조금 튀는 구석이 많은 영화였습니다.
특히나 초중반 부분이 좀 그런 구석이 많죠.
원래 캐스팅인 이준기가 군입대를 하게되면서, <바람의 파이터>에 이어
농담삼아 대타전문배우로 이름을 날리게 된 양동근이 남주인공을 맡게되었는데,
그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맡습니다. 물론, 좋은 쪽으로요.
하지만, 정극을 연기하는 김태희와 코믹스러운 분위기를 담당하는 양동근이
조화를 이루어가는 초중반 부분은 보는 그림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썩히
잘 어울리지는 않았습니다. 열심히 '구리구리'를 재현하는 양동근의 노력은 1인 개콘을
보는 듯 했고 (물론 재밌긴 했어도 조금 안쓰러워 보이더군요.), 김태희의 연기는 혼자
극을 이끌어가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혼자 진지하게만 연기를 하더군요.
그러던 중, 영화는 후반부부터 이제서야 힘을 내기 시작합니다.
뒷심을 발휘하는 경주마처럼 말이죠. 영화는 고두심과 박근형 중년 캐릭터들의 갈등과
사연이 펼쳐지면서, 사뭇 진정성을 갖게되고 그 아래서 연애질을 하면서 서로 가까워지던
양동근과 김태희 커플은 슬슬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고두심과 박근형 커플의 이야기는 <그랑프리>에서 없었으면,
자칫 두 남녀의 유치한 연애담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야기가 좀 튀는 감은 있어도, 그분들의 연기가 없었다면 영화는 한없이 가벼워졌을 듯.
젊은 배우들도 그제서야 힘을 갖추고 경주마처럼 스크린과 경마장 위를 뛰기 시작합니다.
<그랑프리>는 이 네 캐릭터에 대한 결국 '치유'와 '다시 일어서기'에 관한 영화입니다.
서로 각자 힘든 일이 있었고, 제주도로 내려와 그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가기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쉽사리 치유되지 않던 상처들은, 결국 '사람'과 '말(馬)'에 의해서 생명을
갖춰가기 시작하죠. 내용은 초반부보다 후반부에 와닿으며,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조금
아쉬워보입니다.
김태희는 이전보다 확실히 나아진 듯 하나, 역시 극을 혼자 이끌어가기에는 역부족이며
군제대 후 복귀한 양동근은 확실히 이전보다는 가벼워진 듯 합니다. 밝아진 모습이죠.
일종의 악역에 해당하는 고두심씨의 연기는 이 영화의 유일한 카리스마입니다.
박근형씨는 그 대척점에 서있습니다.
말들의 연기는 그 '깊은 눈'만으로도 모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러진 날개로 얼마나 날 수 있는지 보자"는 고두심의 말은,
결국 모두가 부러진 날개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희망'이라는 목표를 향해
날 수 있었는지를 주희(김태희)를 통해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그렇게 확신이 없던 삶에서 악랄하게 버텨온 것일지도.
<그랑프리>는 확실히 옅은 색의 힘을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아름다운 제주도를 풍경으로 하는 멋진 그림은 그야말로 절경(絶景)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배우들의 초반연기는 아웅다웅 소꿉놀이 같으며,
영화는 울퉁불퉁합니다. 후반에 들어서야 '진정성'이 느껴지지만, 초반회복은 힘듭니다.
동화같은 느낌에, 관객이 감정이입할만한 캐릭터는 적습니다.
그냥 행복한 치유동화를 보는 느낌.
그렇기에, 그냥 말'을 다룬 예쁜 영화 한편 보고왔단 느낌이 큽니다.
<각설탕>은 그런 면에서, 아픔과 진정성을 잘 드러냈다는 생각이 드네요.
배우의 힘이었을까요, 감독의 힘이었을까요, 아님 둘 다?
<그랑프리>는 여러 모로 아쉬운 작품으로 남겠네요. 배우 김태희에게도 말이죠.
추석이 아니었다면 조금은 더 빛을 봤을까요?하는 생각도 드네요.
* 아역배우의 대사는 아무리 제주사투리라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기 힘들더군요.
몰입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서 조금 고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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