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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 4 여고괴담 4(사): 목소리
sunjjangill 2010-09-24 오전 7:38:04 1094   [0]

<여고괴담> 시리즈는 괴담 아래에 애(愛)와 애(哀) 두 가지 정서를 포개어두었다. 점프컷으로 튀어오르는 원혼과 거대하게 부풀어오른 소녀의 눈동자를 헤치면, 기름 먹인 스트레싱 페이퍼 밑으로 희미하게 비치는 글자와도 같던, 사랑과 슬픔이 새어나오곤 했다. 사자(死者)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어린 영혼들. 혼자서 죽어간 그 아이들은 생과 사를 가르는 심연을 거부하면서 그저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있고 싶다고 아이다운 고집을 세운다. 그 고집은 산 자에겐 공포가 되고, 죽은 자에겐 올가미가 될 뿐이다. 죽은 이는 보내야만 한다. 그러나 어떤 냉정한 목소리도 아이들이 울먹이면서 저승으로 떠나는 <여고괴담>의 끝자락에 성불이나 해피엔드라는 무심한 내레이션을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노래 연습을 하던 여고생 영언(김옥빈)은 누군가 자신의 노래에 화음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언은 그 목소리로부터 달아나려고 하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악보에 목이 베인 채 살해당하고 만다. 다음날 아침 음악실, 영언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깨어난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영혼일 뿐이다. 누구도 그녀를 보지 못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단 한명 단짝친구 선민(서지혜)만 제외하고. 선민은 목소리만 남은 영언 곁에 머물면서, 사라진 영언의 몸이 어디에 있는지, 학교를 배회하는 검은 그림자는 누구인지, 영언을 아끼던 음악선생 희연(김서형)은 왜 자살했는지, 함께 알아내고자 한다.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신비한 소녀 초아(차예련)는 그런 선민에게 다가와 영언을 너무 믿지 말라고 충고한다.

많은 이들이 열여덟 무렵을 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 모두 아이 적엔 순수했을까. 어쩌면 그때는 세상의 먼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내 상처만이 쓰라리다고 믿었기 때문에, 가책받지 않고 잔인하게 행동했을지 모른다. 죄를 짓고도 기억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을지 모른다. <여고괴담4: 목소리>는 그 망각을 파헤치는 영화다. 기억의 빈틈, 영언이 죽어야만 했던 이유.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를 모두 알고 있는 초아는 “귀신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면서 영언을 경계하지만, 단지 듣기만 하는 그녀는, 사라진 기억을 불러올 수 없다. 영언은 스스로 그 틈을 메워야만 한다.

최익환 감독은 영언의 과거를 찾아내기보다 보여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실험영화를 공부했던 그는 영언이 과거로 걸어들어가는 장면을 외로운 소녀의 꿈처럼 애잔한 추상화로 만들었다. 햇빛이 거침없이 쏟아지는 복도에 물방울이 피어오르면, 영언은 잃어버린 시간의 유리벽에 손을 대고, 자신이 모르는 자신을 지켜본다. 허공을 떠도는 직소 퍼즐 조각이 하나씩 제자리로 찾아든다. 이것은 미스터리를 푸는 과정으로는 평면적이고 안이하지만, 그 길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초아가 경고했듯이 귀신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는 탓이다. 자기 손으로 한 도막 한 도막 시간을 잘라냈던 영언은 증발한 순간들을 직접 목격해야만 온전한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엄마 없는 소녀가 음악선생의 어깨에 기대어 속삭이는 “선생님한테서는 우리 엄마 냄새가 나요”. 이 처연한 문장이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그 소녀와 그 여인이 아니라면, 누구도 알지 못한다.

앞서 세편의 감독들처럼 이 영화로 데뷔한 최익환 감독은 무서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고괴담4: 목소리>는 이전엔 체험하지 못했던 어둠의 깊이를 들여다본다. 한밤의 목소리를 들은 영언과 선민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공포에 사로잡히는, 카메라가 엘리베이터로부터 끝도 없이 멀어졌다가 덮치는 것처럼 달려드는 장면은, 아찔한 추락을 수평으로 재구성한 듯하다.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머리카락이 출렁인다고 무서운 영화는 아닐 것이다. 이미 죽은 영혼조차도 어둠 저편을 두려워한다면 산 자는 더욱 무력할 수밖에 없다. 사라지는 목소리를 붙잡기 위해 폭주하는 영혼. 꺼져가는 목소리의 파동과 똑같은 속도로 깜박이는 전구 불빛과 살아 있는 것처럼 웅웅거리는 보일러 소음 아래에서, 차가운 분노 속에 던져진 소녀들은, 빠져나갈 길이 없는 폐쇄회로 안에 갇히고 만다. 죽은 자의 원한을 누가 감히 풀어줄 수 있다는 걸까.

<여고괴담4: 목소리>는 장르를 멸시하지 않고 장르에 촌스럽게 매달리지도 않는다. 이대로 사라질 수는 없어, 혹은 내 친구를 사라지게 하진 않을 거야, 라는 소녀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둘러싸고선, 파문처럼 동심원을 그려나갈 뿐이다. 이미 학교를 떠난 이들은 그 시절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학교 건물 안에 갇힌 영언은 영원히 빛날 것만 같던 시절이 끝나리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선민의 애착에만 매달린다. 영언만이 아니다. 누구인들 손잡고 화장실까지 같이 갔던 친구를 다시는 만나지 않게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비열한 마음이 피를 부르는 <여고괴담4: 목소리>는 한때 우리 모두가 믿었던 환상을 되짚는 탓에 애상을 남기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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