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쌩 효과음을 동반한 편집과 아드레날린을 펌프질하는 음악, 정지동작으로 소개되는 등장인물들. <이대로, 죽을 순 없다>의 시작은 <춤추는 대수사선>이나 <수사반장> 같은 TV 수사시리를 보는 듯 긴박하다. 주인공 이대로 형사(이범수)는 미친 듯이 차를 몰아 용의자를 추격하는 중이다. 혹시 그는 불나비 같은 영웅? 천만에. 평소, 검거현장 대신 러브호텔의 애인에게 출동하고 용의자 빼돌려 뇌물 챙기기 분주한 이대로 형사의 본색을 아는 자라면 물을 것이다. “어디 아파요?” 혹은 “죽을 때가 됐나?”라고. 실은 둘 다 맞다. 뇌종양 말기 선고를 받은 이대로는, 홀로 남겨질 딸 현지(변주연)에게 보험금이라도 남기려면 몇달 안에 반드시 사고로 죽어야 한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그는 순직을 도모한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자 죽고 죽고자 하는 자 산다는 옛말의 섭리에 따라, 이대로는 죽긴커녕 9시 뉴스를 주름잡는 스타 민완형사로 거듭나고 만다. 이건 그리 낯선 역설은 아니다. 우리는 데브니 콜먼이 호연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1990)나 더스틴 호프먼이 졸지에 영웅적 행동을 하는 <리틀 빅 히어로>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웃기 위해 진땀을 빼야 하는 코미디는 아니다. 죽고자 덤비는 이대로의 기세와 우연이 절묘하게 맞물려 공적을 쌓는 상황들은 대체로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여기에는 한국적 경찰영화의 단골 캐릭터로 짜여진 강력3반의 공도 크다. 이범수의 갈 데 없는 진지함, 손현주의 정감, 최성국의 이모티콘 같은 표정은, 아마 이 배우들과 술자리를 함께하면 맛보지 않을까 싶은 재미를 챙겨준다. 물론 더 기다리면 진짜 악인이 등장한다. “살인을 했어도 내 사람은 챙긴다”는 악당의 도덕은 일견 이대로 형사의 철학과 조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이대로는 결정적인 순간 뿌리친다. “내가 비록 뺀질거리는 경찰이지만 경찰이고, 같잖은 인간이지만 인간이야.” 그가 큰소리칠 수 있도록 영화가 발부하는 ‘(선한) 인간의 증명’은 가족애, 떠난 옛 애인이 맡긴 생부를 모르는 딸을 향한 순정한 사랑 하나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현지, 누구 딸이야?”라고 끝내 여자에게 캐묻는 핏줄에 대한 집착은, 이대로를 다시 초라하게 돌려놓고 감동의 그릇을 줄여버린다. 인간성에 대한 고민과 코미디의 관습을 합성하고 봉합하려는 영화의 노력도 그 순간만큼은 부질없어 보인다. 주인공이 풀붙여 만든 가짜 가족사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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