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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jjangill 2010-09-27 오전 7:48:51 768   [0]

현하의 국제정세를 고려해 생각해볼 때, 유엔, 그러니까 국제연합의 본부가 미국 뉴욕에 자리잡은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유엔의 결의와 무관하게, 때로 이를 어기고서라도 팽창주의적 전쟁을 자행하는 미국의 영토 안에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국제협력을 증진’한다는 이 기구가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국제사회가 개입해야 할 세계 곳곳의 문제보다 자국의 이익만을 신경쓰기에 바쁜 미국 안의 유엔은 환락가 속의 성스런 교회처럼 생뚱맞아 보인다.

정치스릴러 <인터프리터>의 기본 줄거리는 이러한 아이러니에 기반한다. 아프리카의 마토보라는 국가에서는 잔혹한 인종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유엔 회원국들이 마토보의 대통령 주와니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고 목청을 드높이고 있는 와중, 주와니는 국제사회를 상대로 설득을 벌이겠다며 유엔 방문 계획을 발표한다. 바로 이때 유엔 통역사인 실비아 브룸(니콜 키드만)은 유엔 회의장에서 은밀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마토보의 언어로 속삭인 그 소리는 주와니를 유엔에서 암살하겠다는 거였다. 마토보 사태에 개입할 의사가 별로 없다는 이유로 국제적 비난을 받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주와니가 자국에서 암살당하게 되면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될 터. 정부는 외국 요인 경호를 전담하는 연방요원 토빈 켈러(숀 펜)를 팀장으로 내세워 주와니 경호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긴다. 수사를 벌이던 토빈은 실비아가 마토보의 국적을 갖고 있으며 주와니가 묻어놓은 지뢰에 가족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가, 왜, 어떻게 주와니를 암살하려 하는가를 밝혀야 하는 토빈에게 의심해야 할 상대는 너무나 많다. 수상쩍은 과거를 지닌 실비아를 비롯해 미국 내 마토보 대사관, 미국에 망명 중인 반정부세력, 그리고 실비아 주변을 맴돌고 있는 음험한 분위기의 남자 등등. 영화는 토빈의 시점을 빌려 성큼성큼 다가오는 거대한 음모를 분주하게 추적한다. 6년 만의 연출작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시드니 폴락 감독은 능수능란한 솜씨로 뉴욕의 이곳저곳을 헤집으며 긴장의 전압을 증폭시킨다. 그중에서도 숨막히는 교차편집으로 보는 이를 질식 직전까지 몰고가는 버스 폭파 장면은 장인의 솜씨를 느끼게 하는 ‘결정적 장면’이라 할 만하다. 폴락의 진정한 노련함은 의혹과 위험으로 가득한 이 외적 긴장을 남녀 캐릭터 사이의 관계라는 내적 긴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다.

토빈은 취조 과정에서 주와니가 만든 실비아의 상처를 찾아낼 뿐 아니라 스스로 감추고 있던 어두운 그림자마저 끄집어낸다. 아내를 자동차 안에서 사고사하게끔 한 남자에 대한 분노를 간직하고 있는 그는 실비아도 자신처럼 주와니에 대한 복수심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유엔만이 내 희망이다… 총보다는 느리지만 평화만이 해결책이다”라는 실비아는 복수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믿는 인물이다. 실비아는 자신의 평화주의가 아프리카의 대승적 신념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마토보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살인범을 결박한 채 물에 던진다. 그리고 그를 살릴지 죽일지는 유족이 정한다. 그를 죽게 하면 유족은 평생 죄책감에 살게 되고, 살려주면 그 자비가 슬픔을 위안한다.” 분노 대신 자비로 슬픔을 이겨내려는 실비아의 신념은 토빈에게도 서서히 번져간다. 이제 토빈에게 실비아는 용의자가 아니라 끝까지 지켜줘야 하는 존재가 된다. 억지스러울 수도 있는 두 캐릭터의 교감은 니콜 키드먼과 숀 펜, 두 달인의 연기에 의해 싱싱한 설득력을 얻는다. 니콜 키드먼이 폭파사건으로 얼굴에 상처를 입은 채 분투하는 대목이나 후반부 숀 펜이 아내 이름을 입에 담는 장면은 이들의 존재감을 새삼 확인하게 한다.

하나 딱 거기까지만이다. 장르영화로서 뛰어난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인터프리터>는 함께 품에 안으려 했던 국제정치학에선 무능하기 짝이 없다. 이 영화는 남녀의 소통과정을 통해 사사로운 복수나 증오가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설파하면서 나아가 아프리카의 분쟁과 세계 각지의 충돌 또한 무력이 아니라 국제사법재판소 같은 제도적 수단을 통해 풀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엔에 좀더 많은 권능을 부여해야 한다는 이 이상적인 주장 또는 낭만적 평화론은 실제 세계에선 씨도 먹히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 이상향을 향한 길을 막는 장애물을 폭로하기보다 아프리카의 신비로운 사상을 동원해 평화를 외치는 순간, 영화는 폴락의 또 다른 작품인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확장판으로 바뀌어 보인다. “마토보에선 죽은 사람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잊을 준비가 됐을 때 입에 올린다”처럼 쉼없이 튀어나오는 인상적인 대사들이 좀처럼 마음을 파고들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프리터>가 보여준 야심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영화로는 유엔본부 내부에서 처음 촬영됐다는 점이나 공동제작이긴 하지만 로맨틱코미디의 명가 워킹 타이틀이 최초로 스릴러에 도전했다는 사실은 보는 이의 흥미를 자아낸다(워킹 타이틀의 손길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특히 <쎄븐> <패닉 룸> 등에서 빛과 어둠의 세계를 번개처럼 붙잡아낸 다리우스 콘지의 촬영은 탁월한 광채를 발한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촌이 다음과 같은 실비아의 이야기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곳이었다면 더욱 공감할 수 있었겠지만. “난 유엔의 의미와 힘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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