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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아메리카 트랜스아메리카
sunjjangill 2010-10-02 오후 2:45:29 606   [0]
'트랜스아메리카’의 뜻에는 남자에서 여자가 되려는 트랜스섹슈얼 브리(펠리시티 허프먼)의 이야기라는 뜻도 있고 브리가 아들 토비(케빈 지거스)와 뉴욕에서 LA까지 횡단한다는 뜻도 있다. <천하장사 마돈나>나 <헤드윅>처럼 남자가 여자가 되기 위해 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에, 아버지와 아들의 뜻밖의 만남이라는 이야기를 더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는 드라마도 극적이지만, 부정하고 싶은 자기 과거와 어떻게 화해하고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이야기는 더 극적이다.

그런데 이 영화, 또는 주인공 브리는 끝까지 수줍은 목소리로 말한다. 남자의 몸 안에 갇힌 것에 대해,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의 질서에 갇힌 자신의 삶에 대해 분노도 설움도 터뜨리지 않는다. 그건 여자가 되기 위해 고심하는 브리의 태도와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브리는 찔끔, 살짝 울고는 눈물을 손등으로 톡톡 훔친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오동구처럼 옥상에서 카세트를 틀어놓고 춤을 추거나, 광란의 스테이지 매너를 보여주는 헤드윅을 흉내내기엔 브리는 너무 내성적이다. 욕을 할 줄도, 주먹을 휘두를 줄도 모른다. 털을 제때 안 깎은 건 아닌지, 제때 여성 호르몬을 먹지 않아서 가슴이 작아진 건 아닌지 그게 먼저 문제가 된다. 나이가 들어서 과격함이 준 것도 있겠지만 그 남자, 천생 여자다.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것이다. 오동구나 헤드윅의 독기도 없고 이해해주는 가족도 없고 번듯한 직장이나 벌어놓은 돈도 없는데 이 연약해빠진 남자가 과연 험난한 세상도 뚫고 수술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게다가 아들이랍시고 머나먼 동쪽 끝 뉴욕 구치소에서 연락을 한 망나니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배짱은 있는지.

LA의 한 멕시코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브리는 평생 기다려온 수술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 짬날 때마다 집에서 텔레마케팅을 하는 브리는 운도 없게 업무 중에 뉴욕 구치소로부터 전혀 기대하지 않던 전화 한통을 받는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상담치료사인 마가렛은 브리가 아들을 뉴욕까지 가서 만나야 하며 아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레즈비언’ 시절, 잠깐 남긴 사랑의 흔적에 대해 브리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가렛이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해주지 않을 것이다.

과거는 남자 스탠리. 현재는 여자가 되고 싶은 트랜스섹슈얼 브리. 미래는 아마도 여자 브리, 그리고 아마도 토비의 아빠. 수학에 가까운 복잡한 삶이다. 브리는 수줍고 내성적이며 겁이 많지만 이 만만치 않은 질문에 하나씩 답을 던진다. 아버지-남자-스탠리 안에 갇혔던 어머니-여자-브리의 진심을 꺼내 세상에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미국의 가치를 횡단하지는 않는다. 트랜스섹슈얼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라는 정치적 주제만을 묵직하게 밀고 나가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가족을 재구성하는가라는 질문에 영화는 더 예민하다. 가족이 결합한 뒤 모든 게 평화롭고 순조롭게 진행되는 당연한 과정을 따라가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타인이었던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며 거기엔 어떤 새롭고 다른 가족의 도덕이 필요한가를 모색한다.

전혀 알지 못하던 아들과 아버지의 만남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있다. 브리의 젊은 날 남자 모습, 또는 브리의 성격만 본다면 <파리 텍사스>의 트래비스와 퍽 닮았다. <돈 컴 노킹>이나 <브로큰 플라워>의 쿨하고 유연하지만 부자인(그래서 쿨하고 유연한지도 모른다) 아버지들과는 거리가 있다. 아버지다운 외양이 전혀 없다는 것, 아버지인데 아버지라고 말하지도 못한다는 것(어느 자식이 여자 아버지를 믿겠는가), 아버지 노릇을 할 돈도 없고 거기에 대해 미안해하지도 않는다는 게 브리의 다른 점이다. 게다가 보수적이다! 술, 담배 등과 거리가 멀며 아들에게 교회 전도사 흉내를 냈지만 흉내를 못 낼 것도 없을 정도로 ‘착한’ 사람이다. 그런데 아들은 난잡하며 제어하기 어렵고 충동적이다. 여기까지 본다면 코미디가 아닐까 싶지만 그건 아니다.

감독은 궁금증을 던져 관객을 낚고는 끝까지 그 긴장을 초보답지 않게 신선하게 밀고 가는데 그 궁금증이란 아버지가 과연 자식에게 진실을 솔직하게 전달하고 좋은 사이가 될 수 있겠냐는 거다. 생물학적인 남자(무엇보다 허리 아래 달려 흔들리는 그 묵직하고 무거운 종루)를 자식과 세상에 들키지 않고 무사히 수술실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 집 밖을 벗어나자마자 브리에게는 난감한 과제가 연달아 달려든다. 호르몬이 떨어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돈이 떨어져서 한방에서 자야 할 때는? 뱀이라도 당장 튀어나올 것 같은 벌판에서 우아하게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는 있을까? 상냥한 인디언 남자 캘빈이 브리의 정체를 알면 어떻게 될까? 이 리스트는 창의적이지는 않지만 공감할 만하다.

이 공감에는 이유가 있다. 여자가 되고플 뿐인 가냘픈 아버지 역의 펠리시티 허프먼이 조용히 우리 내면 속에 스며들면서 이 영화는 볼만한 것이 된다. 아들이라는 작자의 한심함에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았을 때, 뱀에게 물릴까봐 막대기로 정신없이 수풀을 뒤지고 있을 때, 아들에게 자신의 생물학적 기관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쓸 때, 우리는 토비가 아버지를 어서 이해해주었으면 하고 소망하게 된다. 아니, 나아가서는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아버지라는 타이틀에 대해 어쩔 줄 몰라하는 수많은 아버지들의 곤경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토비에게 섣불리 강요하지도 않고 호의를 내세워 부담을 주지도 않으면서 친구로 만드는 브리의 진심은 그 반대편에 있다. 거기는 여자, 남자 또는 아버지, 어머니 같은 계급장과 상관없는 마음의 영역이다. 서툴게도 토비가 그런 마음에 대해 감동한 나머지 성적인 대접(토비식 효도)을 하려고 할 때 우리는 웃음을 머금게 된다. 브리의 그런 마음이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불씨라는 걸 토비도 알고 우리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건 가족은 무엇이고, 가족에게 필요한 건 뭔지 알기 위해 떠나는 ‘트랜스패밀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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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아메리카(2005, Trans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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