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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새로운 모색.... 옥희의 영화
ldk209 2010-10-08 오후 1:28:30 1199   [0]
홍상수의 새로운 모색.... ★★★★

 

<옥희의 영화>는 일단 영화 자체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도 주목해야 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홍상수 감독의 여러 인터뷰를 보면, 홍 감독이 <옥희의 영화>를 찍게 된 계기는 ‘과연 이런 상황에서 찍으면 어떤 영화가 나올까’란 일종의 예술가적 오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전체적인 스토리라인도 없는 상태에서 단 4명의 스태프와 일부 연기자만을 데리고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물론 이전부터 홍 감독의 시나리오는 촬영 전날 저녁에 쓰기 시작해서 당일 아침에 배우들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옥희의 영화>는 이보다 더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깐 홍 감독은 애당초 진구(이선균)의 하루를 담은 1부의 내용으로만 영화를 찍을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1부에 정유미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1부를 찍은 후 편집을 해 보니, 시간이 너무 짧아 정유미를 캐스팅, 두 편의 영화를 더 찍게 되고, 이 두 편이 바로 진구와 옥희(정유미)를 중심으로 하는 2부 <키스왕>과 옥희를 중심으로 하는 4부 <옥희의 영화>다. 그럼에도 장편의 기준인 80분에 미치지 못하자, 이왕 찍은 거 송교수(문성근)를 중심으로 하는 한 편을 더 찍을 결심을 했고, 마침 103년만의 폭설이 내린 후 3부 <폭설 후>가 나오게 된 것이라 한다. 재밌는 건, 그랬음에도 시간이 조금 모자라자 일부러 각 파트별로 별도의 크레딧을 따로 넣은 것이라 한다.

 

정리해보면,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촬영된 <옥희의 영화>의 촬영 순서는 1부 → 2부 → 4부 → 3부이며, 영화에서의 시간 순서는 대략적으로 2부 → 3부 → 4부 → 1부로 진행된다. 해석하기 따라 다르겠지만, 2, 3, 4부 전체는 마치 1부의 플레시백처럼 보이기도 하며, 또 다른 측면에서는 1부의 내용이 2부 또는 3부의 진구가 상상하는 내용으로 보이기도 한다.

 

간단히 정리해보면, <주문을 외울 날>에서 시간강사이자 영화감독인 진구(이선균)는 송교수(문성근)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듣지만, GV에 참석했다가 자신도 역시 안 좋은 소문의 대상이 된 것을 알게 된다. <키스왕>에서 영화과 학생인 진구는 옥희(정유미)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다 결국은 사귀게 되는데, 옥희는 송교수와 사귄 과거가 있다. <폭설 후>에서 시간강사이자 영화감독인 송교수의 수업시간에 폭설로 인해 진구와 옥희만이 강의에 참석했고 둘의 질문에 송교수의 대답이 이어진다. <옥희의 영화>는 옥희가 일 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두 남자, 즉 송교수와 진구와 함께 각각 아차산에 올랐던 경험을 교차편집으로 나란히 붙여 한 편의 영화로 만들었다.

 

전체적인 계획 없이 순간 순간 필요에 의해 촬영이 진행되었기 때문이겠지만, 재밌는 건 4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과 맡은 배우들이 동일하긴 하지만, 해석 여하에 따라서는 동일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2부, 3부의 진구는 1부에 출연한 진구의 플래시백일 수도 있고, 전혀 별개의 인물을 그린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옥희와 송교수의 관계와 1부에서 진구가 GV에서 맞이하게 되는 곤란한 상황을 고려해보면 송교수가 진구의 미래로 보이기도 한다.

 

<옥희의 영화>를 보고 흥미로웠던 건 기존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새로운 변화가 모색되고 있다는 점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대게 댓구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동일한 현상을 사람에 따라 달리 반응하고 기억하는 차이에 주목해 왔다면, <옥희의 영화>는 시간과 정서의 차이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제목과 일치하는 4부 <옥희의 영화>는 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옥희가 송교수와 아차산에 올랐던 때는 12월 31일이고 진구와 올랐던 때는 년수로 2년이 지난 1월 1일이다. 영화는 이 과정을 옥희의 내래이션을 빌려 나이든 남자와 올랐을 때의 정서와 젊은 남자와 올랐을 때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붙여 비교하고 있다.

 

이때 전반적으로 옥희는 나이든 남자에게 좀 더 기울어져 있다고 보이는데, 홍상수 감독이 비슷한 동년배에게 더 마음을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보는 관객의 마음이 그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슨 얘기냐면, 만약 3부 <폭설 후>가 없이 처음 계획대로 1부, 2부, 4부로 영화가 완성됐더라면 4부의 송교수에게 마음을 줄 수 있는 정서적 계기는 아마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3부 <폭설 후>에서 학생들과 나누는 여러 가지 대화들, 그리고 음주 후 낙지를 토해내고 걸어가는 쓸쓸한 뒷모습으로 인해 송교수에 대한 정서(3부/4부의 송교수가 같은 인물이라는 가정 하에)는 그대로 4부의 송교수에게 이입되고, 약속대로 아차산 소나무 밑에서 옥희를 기다리다 돌아서는 송교수의 뒷모습이 더욱 아련하게 다가왔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 이런 효과를 예상하고 3부를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모자라서 어쩔 수 없이 찍게 된 3부에서 이런 지점을 찾아내 결론으로 연결시켰다는 것에서 홍 감독의 예술가적 능력이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홍 감독의 모든 영화를 본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홍 감독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 것보다 좋은 건 세부적인 에피소드에서 살아 숨 쉬는 그 생생함이다. 이번 영화가 기존 영화에 비해 새로운 모색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홍상수의 영화인 건 그 사실적인 대사들과 자연스러움이다. 이전에 홍상수의 영화를 보며, 배우들의 대사들이 저토록 현실적이고 생생한 건 배우들이 평소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애드립을 구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출연한 배우들의 증언(?)에 따르면, 홍 감독은 애드립을 전혀 허용하지 않으며 자신이 건네 준 대본대로만 대사하는 것을 바란다고 한다. 그러니깐 홍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의 그 현실감은 온전히 홍상수의 것이란 얘기다. 사실 나로선 홍상수의 영화에서 그게 제일 놀랍다.

 

※ 동료 세명과 함께 같이 보러 갔다. 분명히 인터넷으로 네 장을 얘매했다고 생각했는데, 가서 보니 세 장만 예매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게 전산이라든가 극장 측의 오류라고 생각했지만, 워낙 시간이 없어 속는 셈치고 현장에서 한 장을 더 구매해 관람했다. 다음날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내가 네 장을 예매한 건 맞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한 장을 비슷한 시간대의 다른 극장으로 예매해 놓았다. 내가 왜 그랬는지도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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