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보는 코믹 잔혹극.... ★★★
이 영화는 개인적인 의미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영화다. 꽤 오래 전, 친구가 자신이 프로듀서를 맡아 촬영하는 영화가 있다며 주인공이 정경호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제목이 <노르웨이의 숲>이라고 해서 혹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코믹 호러 장르란다. 그리고는 작년 부천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개봉이 감감 무소식이다. 개봉하지 못한 채 묻히는 영화가 많은 현실이라 더 이상 물어보진 못했는데, 큰 규모는 아니지만 그나마 개봉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아무튼, <노르웨이의 숲>은 간만에 보는 코믹 잔혹극으로 개봉 시기가 몇 년 빨랐다고 한다면 지금보다는 많은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싶은 영화다. 왜냐면 한 때 이런 식의 코믹과 호러를 결합한 영화들이 나름 인기를 끌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세브란스> 같은 영화들. 그런데 확실히 잔혹한 영화가 코믹과 결합되었을 때, 잔혹에 대한 반응이 무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 외딴 숲에 세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보스의 명령에 따라 시체를 묻기 위해 한적한 숲을 찾은 창욱(정경호)과 중래(박인수)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시체가 사라졌음을 알게 되고, 시체를 찾으러 다니다 이 숲엔 자신들 외에 다른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두 명의 남자친구와 함께 본드를 하러 숲에 들어왔다가 성희롱을 피해 달아나는 여고생, 카섹스 때문에 왔다가 오빠가 사라진 명숙(지서윤). 그리고 숲엔 이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위험한 존재가 도사리고 있었다. 숲에 모인 8명(시체 포함)의 사람들은 한명씩 정체 모를 살인마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
이 영화의 장점과 단점은 상당히 명확한 편이다. 낫으로 사람의 신체가 갈라지며 내장이 드러나는 장면 등은 예상 외로 꽤나 잔혹하고 묘하게 그로테스크하다. 고어팬들이라면 충분히 즐길만한 장면일 것이다. 그럼에도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대사를 통한 코미디는 이러한 잔혹함을 무디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적은 인원을 활용, 이야기를 옆으로 넓히지 않고 직진으로 내닫는 기운도 시원시원한 편이다.
그런데 왜 제목이 <노르웨이의 숲>일까. 아마도 유추 해석해 보건데, 북유럽의 숲은 크고 넓은 것으로 유명하고 그러한 숲의 갇힌 듯한 이미지를 주기 위한 것 아닌가 싶다. 그러니깐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는 숲이 주는 이미지가 될 것이다. 어디선가 갑자기 뭔가 나타날 것 같고,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람을 찾기 어려우며, 사방이 똑같이 생겨 자칫 길을 잃기 쉬운 그 곳.
그런데 문제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숲이 그러한 이미지에 부합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선 한국에서는 북유럽의 울창한 숲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고, 촬영 등으로 그러한 점을 표현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영화 속 숲은 마치 바로 조금만 옆으로 나가면 길이 나오고 차가 지나다닐 듯한 느낌이고, 그 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게 그다지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음으로 자주 구사되는 코미디가 공포와 적절히 조합되느냐의 문제이다. 아마 특별히 둔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영화 속 코미디로 인해 분명히 웃음 짓게 되는 몇 장면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며, 묘한 뒤틀림에 킥킥대는 장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코미디는 반복이라고 해도 뻔히 예상 가능한 상황에서 그것도 별 재미없는 유머의 계속되는 반복은 무리수로 보이며,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세 인물의 동문서답은 진정 생뚱맞게 느껴진다. 거기에 살인마에게 굳이 이유를 만들어줬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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