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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hong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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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6 오전 10: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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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파괴다...★★★★☆
내가 남들에 비해 특별히 <에반게리온>에 더 미쳤다든가 더 열광했었던 사람은 아니다. 그저 26편 짜리 TV 시리즈를 한 번 보았고, 극장용 영화인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과 <데스 & 리버스>를 개봉 이후 한참 지나 어둠의 경로를 통해 보았으며, 2007년에 개봉한 <에반게리온 : 서>의 DVD를 구해 봤을 뿐이다. 그러니깐 TV 시리즈의 내용이 가물가물하긴 해도 어쨌거나 <에반게리온> 영상물을 한 번씩은 본 정도며, 피규어를 구입한다거나 <에반게리온>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수집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어린 소년 소녀가 거대 로봇을 조종한다는 로봇 애니메이션은 대게 비슷한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그 안에 강하게 내재되어 있는 성장이라는 모티브. 그런데 확실히 <에반게리온>은 여타 로봇 애니메이션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지점들이 있으며, 아마도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킨 원천으로 작용했으리라.
로봇을 조종하면서 타인과 소통하고 성장하는 대신, 신지, 레이, 아스카는 오히려 점점 자신의 틀 속에 갇히고, 단절해 간다. 과연 그것이 악(惡)인지 정체가 모호한 사도의 계속된 침공, 이에 맞서는 네르프라든가 제레가 과연 선(善)인지 확신하기조차 힘들다. 이렇듯 <에반게리온>은 추상적이고 종교적인 메타포로 가득하며, 심지어 TV 시리즈의 마지막은 신지 혼자의 독백으로 메꿈으로써 어떻게 해석하면 이 모든 얘기가 신지의 상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허망한 결론에 다다를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거기에 일부에서 <사골게리온>이라고까지 표현될 정도로 같은 콘텐츠를 우려먹는 것에 대한 불만은 2007년 새로운 극장판 <에반게리온 : 서>가 공개되고 나서도 잦아들지 않았다. 왜냐면 <에반게리온 : 서>는 TV 시리즈의 초반부를 정리한 것에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보면 <에반게리온 : 서>는 새로운 시리즈를 위한 거대한 예고편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누구라도 제목에 파(破)가 들어있다고는 해도 이렇듯 오리지널을 완전히 파괴할 줄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건 그저 스토리가 조금 변한 정도가 아니라, 세부 설정과 캐릭터의 성격까지 변했다. 새로운 창조를 위해선 완벽한 파괴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에반게리온 : 파>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처음 등장하는 캐릭터가 마리라는 점 때문이었다. 기존 시리즈엔 없는 마리는 아스카가 좀 더 강력해지고 상대적으로 좀 더 성장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후반부 에바 5호기를 타고 침공해 온 사도와 맞서 싸우는 가운데 다치면서도 “재미있으니깐 괜찮아”라고 외친다. 안노 히데아키 총감독은 <파>를 제작하면서 처음부터 기존 캐릭터의 변화만으로는 완전한 <파>를 추구할 수 없다며 새로운 캐릭터로서 기존의 세계를 파괴한다는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물론 새로운 캐릭터만으로 <파>가 완성될 수는 없다. <파>를 통해 우리가 목도한 건 오리지널 설정의 완벽한 배반이다. ‘고마워’ ‘안녕’이라고 말하는 레이를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었는가? 그렇다면 신지에게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레이와 아스카의 모습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신지의 모습이라든가 ‘더 이상 신지가 에바에 안 타도 되게 할 거야’라고 외치며 사도와 맞서는 레이의 모습은 기존 시리즈에 익숙해 있던 팬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변화다.
영상 미학적 차원에서도 <에반게리온 : 파>는 잊혀지기 힘든 순간을 제공한다.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배경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사도의 모습은 황홀하기 그지없고, 파괴되는 순간 화면을 물들이는 핏빛은 끔찍하다기보다는 선명함으로 아로새겨진다. 에바의 신도쿄시 질주 장면은 가슴을 뛰게 하고, 동요 같은 음악을 배경으로 더미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에바가 아스카가 탑승해 있는 사도를 처참하게 물어뜯는 장면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아련하고 충격적이다. 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파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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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신극장판: 파(2009, Evangelion: 2.22 You Can (Not) Advance.)
배급사 : (주)라이크콘텐츠
수입사 : 미라지 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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