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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세상이 만든 일그러진 영웅 심야의 FM
sh0528p 2010-10-18 오전 12:13:28 662   [0]

내 아이를 구해야하지만 절대 방송국을 떠 날 수 없는 절체절명의 긴박한 상황이 주는 긴박감과
기존의 여리고 착한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을 꾀하는 배우들의 신선한 매력을 기대하다.

 

 

"당신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어요. 안 그럼 당신 동생 ...죽어요"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이 흑백의 모습으로 담겨진다. 1984년 짐 자무시 감독의 <천국보다 낯선>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곧이어 한 여인이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누구이고 왜 죽어야 했을까? 그리고 범인은 누구이고 왜 그녀를 죽인걸까?... 이런 물음에 대해 영화는 해답이나 단서를 주기보다 바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며 고선영(수애)과 한동수(광기어린 청취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잘 나가던 아나운서였지만 객관적인 입장에 있어야 할 상황에서조차 자신의 옳고 그름의 분명한 입장 표명으로 라디오 DJ가 된 고선영은 어린 딸의 치료를 이유로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있다. 자신의 방송을 지금까지 사랑해 준 청취자들과 잊지못할 방송을 기대하며 자리에 앉은 고선영의 바램과는 달리 'On Air'의 불이켜지면서 아름답게 추억되길 바랬던 방송은 끔찍한 악몽으로 변하고 만다.

 

 

<심야의 FM>의 초반부는 일반적인 범죄 스릴러의 공통적인 진행을 답습한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주인공 모습과 주인공의 주변을 맴돌며 서서히 숨통을 죄여오는 범인의 모습은 특별한 차별화를 갖지 못한다. 나를 기억해 달라며 많은 힌트와 연관이 될 것들을 보여주지만 도저히 그 퍼즐을 풀 수 없는 모습까지도 유사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번 작품은 분명 이들의 관계를 풀 수 있도록 초반부터 장면마다 많은 단서를 남겨두고 있다. 한동수가 광분하는 순간 우리가 느끼는 공포 이전에 그를 자극한 라디오에서 전해진 고선영의 멘트를 주목해야 하고 그의 광기를 이해하기 위해선 마지막 방송에서 틀으라고 한 노래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광기어린 청취자를 피해 자신의 가족을 살려야하는 고선영의 고군분투가 이번 작품의 핵심이지만 곳곳에 담겨있는 단서들로 이들의 관계를 추리해보게 하며 순간의 방심을 허락하지 않는다.

 

"서로 같은 길을 가는 우리는 동반자..."


가족을 인질로 잡고 후임 DJ와 경찰을 살해한 한동수는 분명 자신도 삭막한 도시에 악을 퍼뜨리는 범죄자다. 그는 고선영의 마지막 라디오 방송을 자신의 뜻대로 만들며 철저하게 망가트린다. 그런 그의 행동만으로 보면 고선영을 철저하게 파괴하려는 악의적인 모습일 뿐이다. 하지만 실상 한동수는 누구보다 고선영을 아끼고 그녀의 방송에 집착한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방송이 마지막이 될 수 없도록 어떤 행동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랑을 지키기위해 해서는 안될 일까지도 저지르는 집착을 보이는 것처럼...  한순간의 불장난을 진정한 사랑으로 믿고 집착으로 이어져 한 가정을 파괴하려 했던 모습을 그린 <위험한 정사>에서 분명 글렌 클로스는 정상적으로 볼 수 없는 광기를 보인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보면 그녀도 피해자로 단지 그와의 사랑을 믿었고 그 소중함을 지키고 싶었던 불행한 여자일 뿐이 아니던가...

 

 

 

어둠이 내린 도시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직접 처단하려했던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처럼 한동수는 법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범인들을 스스로 단죄하며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시키던 인물이다. 불합리하고 모순된 사회가 만들어낸 기형적인 그는 자신의 단죄는 정당하다고 믿으며 스스로의 폭력을 합리화하고 고선영의 라디오 방송에서 들려주는 그녀의 멘트를 통해 신념을 다져간다.  분명 한동수가 하는 행동은 정당화 될 수 없으며 그가 그녀의 방송을 이어가게 하기위해 벌이는 범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러나 사회 부적응자가 도시의 쓰레기를 처리하면서 스스로를 영웅이라 믿게 만든 상황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살아게 한 이들의 또다른 선택이고 도피처일 수 밖에 없다. 누군가에 행동이나 시선이 엉뚱한 해석으로 사랑이라 판단하는 실수처럼 한동수는 그녀가 자신과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라는 믿음으로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말았지만 왠지 그의 파멸은 쓸쓸한 슬픔을 남길 뿐이다.

 

"색다른 시도와 배우들의 변신이 주는 긴박한 스릴"


한정된 공간안에서 벌어지는 범죄 스릴러처럼 제한된 시간안에서 벌어지는 스릴러는 색다른 긴박감을 주었다. 방송국을 떠날 수 없어 가족을 지킬 수 없는 무기력한 엄마와 말을 하지 못하는 딸이 도망과 자신의 안전을 알리기 위해 소리로 전달해야 하는 상황은 급박함을 더한다. 청순한 이미지의 수애가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위해 벌이는 사투의 모습은 <패닉 룸> 조디 포스터를 떠올리게 하고,  바른 이미지의 유지태가 <올드보이>에서처럼 슬픈 악역을 연기하지만 이번 배역의 광기는 색다른 섬뜩함을 준다. 일부 불필요한 과장된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마자도 작품 속에 잘 녹아 도드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고선영과 한동수가 끌어가는 스릴러의 힘은 후반부 이들의 관계가 밝혀진 이후부터 왠지 힘을 조금씩 잃어가는 느낌이고 일부 상황은 과장이 지나쳐 보이기도한다. 요즘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영화의 공통점인 막강 조연의 부재가  이번 작품에서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한동수만큼이나 고선영을 사랑하는 애청자로 등장하는 마동석의 놀라운 능력(?)이나 최송현의 어색하지만 왠지 사랑스러운 사투리의 맛이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다.

 

"에필로그"


김상만 감독의 <걸스카우트>를 극장에서 본 느낌은 웃음이 있긴 하지만 왠지 잘 만들어진 영화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후 2년이 지난 <심야의 FM>은 색다른 소재와 배우들의 변신이 눈에 띄긴 하지만 범죄 스릴러라는 잣대로 보면 이 작품 역시도 잘 만들어진 영화에는 약간 못미친다는 생각이다. 불필요하게 잔혹한 장면을 줄이고 배우들의 연기와 스토리의 힘으로 긴장감을 끌어가는 것은 좋은 시도이지만 애초부터 배역이 갖는 한계는 벽을 넘지 못해 보인다. 이번 작품을 위해 삭발까지 감행한 유지태의 삭발 투혼의 놀라운 열정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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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의 FM(2010)
제작사 : 그리고픽처스, (주)홍필름 / 배급사 :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공식홈페이지 : http://www.fm2010.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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