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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에게 보낸다 야스쿠니
yghong15 2010-10-26 오후 7:56:07 181   [0]
야스쿠니는 리잉 감독 자신의 말처럼, 감독이 일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다. 사랑의 에너지만큼, 강력한 변화동인은 어디에도 없다. 더욱이 그 에너지가 차갑고 이성적이라면, 그보다 강력한 무기는 없다. 사람들은 종종 에로스를 열기 가운데 들끓는 것이라고 믿지만, 열정은 사실... 징후같은 것이다. 에로스의 열기가 폭발하게 만드는 동인은, 차갑고 음산한 타나토스, 죽음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야스쿠니의 '숨겨진' 시선은 사막처럼 차갑고 음산하다.

야스쿠니 신사는 1869년 일왕의 명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한다. 내전이나 국가간 전쟁에서 일왕과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쟁 희생자들의 영혼을 신격화시켜 기리는, 일종의 일본 '호국종교' 성지이다. 마치 시간이 식민지 침략 전쟁 당시로 정지해버린 듯한 야스쿠니 신사 안에서 벌어지는 슬프고 소란스러운 9년 간의 기록들과, 신성한 검인 야스쿠니刀를 만드는 장인을 교차시켜, 감독은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다큐 영화를 만들었다. 야스쿠니 신사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마치... 영원히 고통 속에 허덕이는 무간지옥의 모습처럼 슬프고 서럽다.

카메라 시선은 서정적이지만, 카메라가 담고 있는 내용은 있는 그대로 현실이다. 일본인들의 극우적 의식 속에 내재해 있을 법한, 그들 용어로, 대동아 '해방' 전쟁에 대한 인식, 미국에게 패전한 일본인들의 분노와 반감, 고이즈미 신사 참배를 강력 비판한 중국에 대한 적의, 스스로를 잠자는 사자로 규정하고 싶어하는 일본의 자긍심과 욕망 등등이 야스쿠니 신사 안에서 소용돌이친다. 그 소용돌이는 시간이 출구를 찾지 못한 지옥의 아우성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야스쿠니 인근 도로를 일본군복을 입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어떤 사람의 뒷모습을 카메라는 길게 주시한다. 야스쿠니의 출구없는 비명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시간이 멈춘 출구없는 지옥의 아우성을 우리는 며칠 전,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목격했다.)

이 영화는 다큐영화임에도 감성적으로 재미 있고, 지루하지 않은데, 야스쿠니에 바쳐지는 칼을 만드는 90세가 넘은 야스쿠니刀의 장인을 교차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노인은 야스쿠니 신사 안에서 벌어지는 아우성과는 무관하게 순진무구할 지경으로 어눌하고 말수가 적다. 야스쿠니의 역사적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말없이 평생 칼을 만들어왔다. 이 노인은 민감한 질문에는 여지없이 입을 닫고 할 말을 찾지 못한다. 이 노인이 입을 닫는 건, 민감한 질문이어서가 아니라, 질문이 노인에게는 어렵고 난해하기 때문인 듯 보인다. 이 노인이 유일하게 할 말이 생겼다는 듯이 말을 많이 한 경우는, 때를 기다리는 청룡에 야스쿠니를 비유한 일왕의 음성이 실린 녹음테이프를 틀었을 즈음이다.

감독은 왜 이 노인과 야스쿠니의 처연한 소용돌이를 교차시켰을까? 그것은 그 두 요소를 연결하는 유일한 꼭지점이 일왕이기 때문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인, 그들에게는 체면과 존엄 자체이고, 그 체면과 존엄의 꼭지점에는 일왕이 존재한다고 감독은 말한다. 전쟁터에서 야스쿠니도가 적의 기관총 총신을 싹둑 잘랐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멋쩍게 웃는 무구한 한 노인은, 일왕의 체면과 존엄을 위해 평생토록 야스쿠니도를 만들었다. 노인에게 사적인 삶은 없다. 전쟁터에서 죽음으로써, 사적인 정체성은 소멸되고, 오로지 공적인 몸으로 변신하여, 야스쿠니에 안치되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250만의 영혼들처럼 말이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테마는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되어 신으로 모셔지고 있는 한국과 대만의 전쟁희생자들의 유품과 유골 반환 주장이다. 한국과 대만에서 온 유족들은 징병되어 끌려가 죽은 가족의 이름을 야스쿠니 명단에서 빼주고, 유골과 유품을 돌려줄 것을 요구한다. 식민지 시대 때 원통하게 전쟁에 동원된 한국과 대만의 징병자들이 죽어서도, 종전 후 반백 년이 훌쩍 넘긴 현재에 이르러서도, 아직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에 유족들은 오열했다. 사실... 카메라는 한 대만인 유족의 또렷하고 분노에 찬,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비판하는 말을 담았을 뿐이다. 한국인 유족은 시끄럽게 소리치는 목청만 들린다.

일본에서 상영금지 소동이 벌어졌고, 현재 감독은 극우 일본인들에게 고소당해 법정에 서야 할 처지라고 한다. 영화를 보는 중에 이미 짐작하고 있었는데,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수 십 년 간 촛불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 단체 관계자들은 시사회가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에서, 신사참배 장면과 관련하여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런 반응을 짐작하고 있었던, 나는 실룩실룩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영화를 보는 중에 야스쿠니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나도 오히려 했으니까.) 이 영화 때문에 일본 사회에서 고생 중인 감독은, 한 한국 관객의 불편한 반응에 당혹해 하는 것 같았다. (눈이 나쁜 나는 비교적 앞자리에 앉아서도 무대 위 얼굴들이 분간이 안돼서, 표정 변화는 전혀 가늠할 수 없었지만 음성에서 그런 느낌이 묻어났다.)

리잉 감독은 다면적이고 다각적인 관점으로 야스쿠니 내에서 벌어지는 슬픈 풍경을 담아냄으로써, 전쟁이 끝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모순과 병증을 말하고 싶었으며, 그 정점에는 일왕이 있음을 환기하고 싶다고 답변했다. 그리고는 한국 관객들의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접근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 지점에, 영화의 취약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감독은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야스쿠니는 다면적이고 냉철하며, 거기에 서정적인 작품성을 더한, 감독 자신의 말처럼 아름다움 속에 잔혹성을 감추고 있는 야스쿠니를, 선명하게 표현한 다큐 영화지만, 가치판단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수직과 수평이 공존할 수 없듯이, 다양성과 가치판단은 공존할 수 없다.

일본이 범한 침략 전쟁의 직접적인 희생자가 보기에는, 자칫 세월 좋은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보일 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들은 가치판단을 요구한다. 야스쿠니가 지금도 하고 있는 짓은 만행이고, 그 만행은 '마땅히' 가치판단의 대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다면적으로 심도 있게 그려낸 야스쿠니의 실상은 가치판단을 결여하고 있어서, 감독은 전쟁 후유증의 병증과 망각을 통해, 더 근원적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으로서 망각을 말하고자 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또 다른 망각을 낳고 있는 지도 모른다. 가치판단의 대상이 다면적이고 감성적으로 조망될 때, 그 판단은 유보되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이 옳은 지 모르겠다. 다면적인 관점으로 너무나 깊은 상흔을 품고 있는 일본과 침략전쟁의 피해자들이 소통을 시작해야 할지, 아니면, 철저한 가치판단에 의거해서 시시비비를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지금도 단 한 구의 유골도 돌려주지 않고 있는 야스쿠니와, 유족은 소통할 수 있을까. 야스쿠니에 붙잡혀 있는 유골과 영혼들은 야스쿠니의 존재 근거이고, 일왕의 존엄이다. 야스쿠니는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갈림길에 서서, 과감히 일본 이해와 소통을 선택한 리잉 감독의, 일본을 향한 러브레터이고, 한국 관객에겐 그 러브레터를 관찰해야 하는 영화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 한국 관객이 무엇을 결론짓는 건, 성급하다. 내가 비록 최상급의 아이콘을 주긴 했어도, 훌륭하다고 박수치는 것도 호들갑스럽다. 그저... 조용히 한 남자의 일본을 향한 사랑고백과 카메라 이면에 사막같이 차갑고 음산한 시선을 관찰하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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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2007, Yasuk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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