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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마음을 움직인다...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
ldk209 2010-11-23 오후 4:58:31 702   [0]
끝내 마음을 움직인다....★★★★

 

영화 <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이하 <엘 시크레토>)는 25년이라는 시간을 오르내리며 가슴 속에 묻어왔던 사랑을 확인하는 남녀의 애달픈 멜로와 독재 권력의 암울했던 역사의 비극을 한 남자의 삶을 중심으로 펼쳐 보인다. 이제는 퇴직한 전적 법원 직원인 벤야민 에스포지토(리카르도 다린)는 25년 전의 끔찍했던 강간 살인사건의 기억으로 인해 괴로워하다가 이 사건을 소설로 쓰기로 하고 상사이자 사랑했던 여인 이레네(솔레다드 빌라밀)를 찾아간다. 25년 전 두 사람은 사건 발생 몇 년 뒤 범인 고메즈(하비에르 고디노)를 검거해 종신형을 선고받게 하지만, 반정부 게릴라 소탕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정부는 범인을 석방한다. 오히려 고메즈 일당으로부터 습격을 받아 위기에 빠지게 된 벤야민은 이레네와 헤어져 멀리 피신하게 된다.

 

우리에겐 쉽게 접하기 힘든 아르헨티나 영화인 2010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 <엘 시크레토>. 2010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경쟁작 중에는 프랑스의 <예언자>와 독일의 <하얀리본>이 있었다. 당시엔 후보작 중 어느 영화도 보지 못한 상태라 딱히 평가할 만한 근거가 없었는데, 몇 달 전 <예언자>와 <하얀리본>을 연달아 관람했고, 이제 <엘 시크레토>를 보게 되었다. 대체 어떤 영화기에 <예언자>와 <하얀리본>을 제치고 수상작이 됐는지에 대한 놀라움과 기대감으로 영화를 감상했지만, 만약에 내가 심사위원이었다면 <엘 시크레토>보다는 다른 두 영화의 손을 들어주었을 것 같다. 물론 이 영화가 실망스럽다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수상할 가치가 있는 영화이며, 끝내 마음을 움직이는 진한 감동을 안겨주는 영화인 것만은 확실하다. (영화의 가치가 영화제 수상 여부에 달린 것이 아님도 분명하다)

 

이 영화는 개인의 삶에 그 사회의 역사가 등재된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특이한 것도, 드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25년이란 세월을 오가며 보여주는 한 남자의 사랑에 대한 감정과 아르헨티나의 암울했던 역사를 살인사건에 빗대 그리는 방식, 그리고 감춰진 두 개의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은 유려하면서도 가슴을 애달프게 만드는 힘이 있다.

 

129분이란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영화는 바쁜 걸음을 내딛지 않는다. 이 영화가 만일 스릴러 장르였다면 필요 없었을 장면들, 또는 멜로 장르였다면 필요 없었을 장면들을 품고 있느라 어떤 때는 영화가 오락가락한다거나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러나 끝내 <엘 시크레토>는 둘 중의 어느 한 가지도 내치지 않고 끝까지 함께 내딛으며, 두 가지 모두 관객에게 감동과 놀람을 제공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의 장면이라든가 스토리는 여러 군데서 아르헨티나의 어두운 역사와 겹친다. 살해된 아름다운 여자의 나신은 마치 죽어가는 아르헨티나의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듯하고, 좀 더 직접적으로는 세계 첫 여성대통령으로 쿠데타에 의해 축출된 이사벨 페론을 연상시킨다. 25년 전 살해사건의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벤야민의 모습은 역시 오랜 독재의 유산에 괴로워하는 아르헨티나 민중의 모습이며, 소설로 괴로움을 극복하려는 벤야민의 노력은 독재의 유산에서 탈피하려는 아르헨티나의 노력으로 연결 지어진다.

 

물론, 이러한 의미만으로 이 영화가 대단하다는 건 아니다. 사실 평소 접하기 힘든 나라의 영화를 볼 때, 가장 우려되는 건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과 익숙하지 않은 언어에 대한 공포감이다.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얼굴이 잘 매치가 안 되고, 눈은 자막 좇기에 급급하느라 영화가 상당히 흘러갈 때까지 내용 파악이 안 되거나 잘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엘 시크레토>는 무엇보다 깔끔하고 매끈하다. 25년을 오가며 날줄과 씨줄처럼 얽히는 이야기 속에서도 배우들 한 명 한 명의 캐릭터와 이미지가 분명해 혼란스럽지 않고 따라서 이야기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대체로 평이하게 연출된 장면들 속에서도 놀랍도록 인상적인 장면이 숨어 있다. 그 중 하나는 범인 고메즈를 검거하는 장면이다. 거대한 인파가 들어찬 축구 경기장에서 도망가는 고메즈와 이를 추격하는 벤야민의 모습을 롱테이크로 잡은 화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만하며 대체로 아련한 영화의 이미지를 화려하게 물들인다. 또 하나의 장면은 기차를 타고 떠나는 벤야민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레네의 모습이다. 이 장면과 이 장면을 연상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묘하게 홍상수의 영화가 떠올랐다. 둘의 기억이 약간 어긋나는 모습은 25년 전 플래시백 장면이 그대로의 현실을 담은 것인지 아니면 벤야민의 기억 속 모습인지 모호하게 하며, 이레네의 시선으로 바라본 벤야민의 모습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낳게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마지막 장면에 두 개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복수는 무관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영화 내내 A 버튼이 고장 난 타자기와 관련한 얘기들이 일종의 화룡점정을 일으키는 장면이다. 스페인어로 두렵다(TE MO)라는 말에 A를 덧붙이면 사랑한다(TE AMO)로 변모하는 기적, A 하나를 덧붙이기 위해 그 남자는 25년을 기다려온 것이다. 그 만큼 사랑한다는 말은 두렵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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