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스캔들>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솔직히 아직도 차태현이라는 배우가 가진 잠재력에 대해선 반신반의다. 깎아놓은듯 잘생긴 외모나 인상 깊은 연기력으로 소름이 돋은 기억도 없다. 대신 친근한 이미지로 편안함 속에 유쾌함을 주는 매력의 연기자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이미지는 TV 오락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선 가볍게 대중과 호흡하는 정도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영화라는 장르에서 만큼은 냉정한 평가를 받아온게 사실이다. <엽기적인 그녀>의 건우는 차태현이 갖고 있는 연기인지 실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모습이 대중에게 잘 녹아들어가 성공작으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 가령 <연애소설>, <투가이스>, <해피 에로크리스마스> 등등 차마 열거하기 민망한 작품들은 차태현이라는 배우가 영화에서만큼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어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그런 그가 <과속스캔들>이란 작품으로 다시 영화에 나왔을 때 극장에 앉아 상영을 기다리던 나조차도 그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기대 이상의 재미를 맛본 뒤 리뷰를 적었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흥행 결과에 차태현이라는 배우가 어느 정도 기여를 했는가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를 내리게 되긴 하지만 영화의 흥행은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나 영향이 아닌 종합적으로 평가되는 만큼 차태현은 적어도 다른 영화에서와는 달리 자신의 존재감을 잘 살렸다는 점이나 그 작품 이후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차태현이 차기작으로 고른 <헬로우 고스트>는 과연 <과속스캔들>이 어쩌다가 건진 행운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할 영화가 될 것인가가 가장 궁금한 대목이다. 이점은 소위 영화를 고르는 안목이 그만큼 좋아졌는가를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헬로우 고스트>란 작품을 보기 전 예고편의 느낌은 큰 기대를 갖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죽다 살아난 남자에게 4명의 귀신이 빙의되어 죽지도 못하게 하기에 4명 귀신들에 소원을 하나씩 들어준다는 내용인데 뭔가 기대감을 갖게 하는 내용도 아니고 빙의된 연기를 하는 차태현의 연기도 왠지 어색함이 주는 손발의 오그라듬을 어찌해야 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차태현의 모습을 보자마자 왠지 <과속스캔들>이 떠올라 막연한 웃음과 행복한 기대감으로 즐거운 관람을 시작했다. 외로움에 지쳐 자살을 시도하다 살아나면서부터 자신만 보게 되는 귀신과의 상황은 미소와 웃음을 적절히 던지며 앞으로 남은 시간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했다.
정상인의 눈엔 그저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이는 상만(차태현)의 귀신과의 모습은 연신 웃음을 준다. 그들의 특징을 따라하며 행동하는 과정에서 웃지못할 상황들은 <헬로 고스트>가 갖는 웃음의 포인트이자 영화의 초반부를 책임지는 핵심인만큼 영화는 그런 기대감에 적절히 부응하고 있다. 연신 줄담배를 피우고, 술을 글래스로 마시며, 단것과 짜장면을 우겨 넣는 모습은 상만이 자신의 몸을 관리해 가던 생활과 완전히 반대가 되는 상황이기에 이런 모습들은 웃음을 주는 요소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그런 웃기는 과정 속에서 영화는 조금씩 잔잔한 감동을 주기 시작하며 장르를 코믹에서 드라마로 탈바꿈을 시작한다.
상만이 귀신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그토록 원했던 염원을 이루기 위한 상황들은 시종 눈시울을 조금씩 붉게 만들거나 가슴 속에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응큼 할베가 찾아 주려는 카메라를 결국 주인에게 돌려주는 장면이나 골초 아저씨 귀신이 차를 얻기 위해 다른 이의 숨겨진 사실을 들려주는 과정은 <식스 센스>나 케이블 미드인 <호스 휘스퍼러>에서 귀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줄 수 있는 그런 가슴뭉클한 감동을 주는 것이다. 다만 감동의 여운이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꽤나 인상적인 모습으로 영화는 변신을 해 간다. 그러나 거의 종반부를 향해 갈 때부터 조금씩 '이게 다야?'라는 불안감이 쌓여가지만 그 순간 영화가 보여주려던 진짜 이야기를 시작한다. 왜 이들 4명의 귀신이 상만의 몸을 함께 써야만 했는지에 대한 숨겨진 비밀 이야기가 공개되고 깜짝 놀랄 눈물의 반전이 펼쳐진다.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영화를 보는 중에 아무리 이들에게서 연결 고리를 찾으려 머리를 써도 찾을 수 없었던 숨겨졌던 사연. 이 영화를 제대로 즐감하려면 이 비밀은 절대로 모르고 봐야 한다. 어느 정도만이라도 눈치를 채면 반전의 묘미는 사라지고 그만큼의 눈물의 감동도 덜하게 된다. 왠지 어설픈 CG로 상만에 엎여 다녔던 이들과의 여정은 웃음과 잔잔한 감동을 주긴 했지만 왠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그 순간 반전은 이 작품에 대한 평가를 일순간에 뒤바꿀 정도의 반전을 보여주고 극장을 최루 모드로 돌변하게 한다. 정말 기분 좋은 반전이고 뭔가를 말끔히 처리해주는 카타르시스랄까...
상만은 고아였고 그래서 외로움에 지친 인물이다. 누군가와 함께 살기를 간절히 꿈꾸지만 냉정한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바람이다. 그가 죽다 살아난 순간 병원에서 연수(강예원)를 만난다. 가족을 꿈꾸는 상만과 달리 가족을 짐으로 생각하며 힘들어 한 가족에 관해선 정반대의 입장인 연수. 환자들에게 친절하지만 왠지모를 쓸쓸한 그늘을 갖고 있는 연수에게 상만은 마음을 빼앗긴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으로 실수 연발에 사고도 치지만 연수의 속사정을 자신의 특별한 재주 (귀신을 볼 수 있는)로 알게 된 뒤부터 이들의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리고 연수가 병원에서 들려주던 '충격이 심하면 기억이 사라지기도 해요'라는, 당시엔 흘려 들었던 그 한마디가 뇌리를 스치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이 대사는 <식스 센스>에서 '난 죽은 사람들이 보여요'라는 대사가 가진 함축적인 메세지처럼 이번 작품에서의 메세지를 단적으로 암시하는 말이다. 그럼 대체 상만이 잊고 있었던 기억은 과연 무엇인가?
"에필로그"
이 영화를 볼 사람이라면 어떤 내용도 알지 못한 백지 상태로 극장에서 보기를 추천한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어두운 공간에서 혼자 이 놀라운 반전을 즐겨야 진짜 <헬로우 고스트>의 매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도 울린 가공할 최루성 반전이 깊은 인상을 남기고 웃음과 감동이 훌륭한 영화였다. 차태현의 영화에 대한 안목, 이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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