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크로우의 존재감 그리고 3일안에 5가지 미션으로 아내를 구해내야 한다는 긴박함이 기대되는 영화
현대극보다 시대서사극이 더 잘 어울리는 스케일이 큰 배우 러셀 크로우가 출연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작품은 왠지 풍성한 볼거리를 기대하게 한다. 특히 그의 작품 중 분노와 복수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영화 대부분이 대중에게 사랑받았다는 공통점 또한 이런 기대감을 뒷바침한다. 거기에 지금까지 리암 니슨하면 그의 대표작이었던 <쉰들러 리스트>가 이제는 자연스레 <테이큰>이 될 정도로 바뀐 이미지로 인해 그의 출연만으로 '최고의 범죄 스릴러'가 아닐까라는 성급한 예상도 하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이 작품의 핵심 스토리가 3일안에 5가지 미션을 성공해 아내를 구해야 한다는 제한된 미션이 아닌가... 이제 남은건 이들이 보여주는 대 탈옥극을 즐기는 것만 남은 것이다.
처음 예상대로 <쓰리 데이즈>는 아내를 구하기 위한 남편에 이야기이다. 다만 애초의 기대와는 살짝 다른 방향이 차이가 있을 뿐. 간단히 말하면 <테이큰>처럼 자신의 소중한 딸을 구하기 위해 나선 아버지가 전직 특수부대원의 만능 재주꾼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남자라는 인물 설정이 다르다. 다른 이들을 한방에 제압하는 무술 실력이나 생활 속 물건을 이용해 폭발물을 제조하는 그런 능력은 없다. 다만 대학 교수인만큼 뛰어난 두뇌와 끈기 그리고 집념으로 아내를 구하려는 무모한 도전을 그리고 있다. 그런만큼 영화는 <테이큰>처럼 숨가쁘게 위기와 결말을 행햐 내달리는 스피드감은 부족하다. 본격적으로 아내를 구하기 위한 작전이 시작하면서 경찰의 추격이 뒤따르는 과정은 스피드한 진행이 있지만 그 전까지는 평범한 남자가 법으로 보호받지 못한 아내를 위해 직접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의 설명과 그 속에서 겪는 가족과 친구들간의 감정적 대립이 주는 괴리감으로 고뇌하는 과정에 더 집중한다.
이때문에 이 작품을 탈주극에만 초점을 맞춰 상영시간 내내 빠르고 거친 액션을 기대한 관객들이라면 조금 아쉬울지도 모른다. 분명 영화 홍보물에 '<테이큰>을 뛰어넘는 최고의 스릴러'라고까지 했으니 그런 기대감을 갖는 것도 당연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쓰리 데이즈>를 바라보는 관점을 약간 바꾸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우선 이 작품은 영웅처럼 뛰어난 능력을 갖춘 남자가 아내를 멋지게 구해내는 다소 과장된 화끈한 액션 영화가 핵심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생을 가르친 것 외에는 모르던 평범한 남자가 무죄인 아내를 구해줄 법의 한계에 절망해 자신이 직접 구해야 한다는 상황을 실현하기 위해 탈옥 전문가 데이먼(리암 니슨)을 만나 속성으로 Know-How를 전수 받은 뒤 일을 벌이는 일련의 상황을 숨가쁘게 보여준다는 정도로 기대하면 적당하다. 생업도 줄여가며 사전 답사나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하는 치밀한 과정에서의 돌발 상황이나 막대한 거금을 만들기 위해 마약상의 돈을 탈취하는 모습은 진짜 절박한 상황에 닥치면 못할 것이 없다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테이큰>과 다른 매우 현실적인 아버지이자 남편의 모습을 그려내는 점 또한 지독히도 사실적이다.
거기에 더해 이 작품은 법이 보지 못하는 시야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증인, 증거로 범인을 잡아내는 상황에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라는 맹점을 통렬히 꼬집는다. 아내 라라 (엘리자베스 뱅크스)가 범인으로 지목된 이유는 피 묻은 옷, 지문이 선명한 살인 도구 그리고 목격자다. 이 증거물만 보면 명백히 라라는 유죄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것들이 증거로서 갖는 함정에 대해 보여주며 우리의 법이 만능은 아닐 수 있다는 판단을 관객에게 묻고 있다. 게다가 법을 집행하는 공권력은 이처럼 보이는 것만을 보고 무죄라는 작은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행동에 우려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런 조직안에도 공정함을 끝까지 찾으려는 누군가는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도 함께 전한다.
또하나의 관람 포인트라면 행복한 가정이 겪는 몰락이다. 평화롭던 가족은 이 사건으로 산산히 조각난다. 아내는 풀려날 수 없는 형을 선고 받아 아내로서의 자리가 없어졌고 아들은 범죄자라는 놀림으로 인해 엄마를 거부한다. 생업을 포기한 남편은 아들을 돌보지만 다른 이들의 손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정상적인 교육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법은 공정하지만 잘못된 판결로 누군가의 가정은 산산히 파괴된다는 무서운 결과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역경을 이겨내는 가족의 힘 또한 잔잔한 감동으로 그려낸다. 특히 아내를 구하기위해 노력하는 아들을 묵묵히 지켜보며 아들을 응원하는 아버지를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놓칠 수 없는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아내를 구해낸 뒤의 탈주장면이다. 감정의 변화나 법의 맹정을 충분히 보여준 영화는 드디어 아내를 탈출시키기 시작하며 빠른 진행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제한된 시간안에 탈출을 성공하지 못하면 차라리 자수하라는 조언을 들은 존(러셀 크로우)은 조언대로 치밀한 준비를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일어나는 상황은 어쩌면 이들의 도망은 막연한 해피엔딩의 결말을 거부한다. 이유는 이들은 잡히기 보다는 사살될 것이라는 긴장감 때문이다. 숨가쁘게 조여오는 경찰의 포위망은 그들을 끝까지 추격하고 데이먼이 말해준 대로 위조한 여권으로 공항을 통과할 수 있는가가 <양들의 침묵>과 같은 유사한 장면을 연출하며 손에 땀을 쥐게 한다.
* 부스러기 몇 개 * 브래넌 역에 엘리자베스 뱅크스. 어디서 봤더라 기억이 안났다. 분명 본 배우는 확실한데... 상영시간 내내 이 배우 출연작 기억해내르나 힘꽤나 들었다. <써로 게이트>에서도 봤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우리 <장화와 홍련>을 리메이크한 <안나와 알렉스 - 두자매 이야기>였다.
그리고 추억에 배우들이 반가웠다. 우선 초반 존 브래넌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인 다니엘 스턴. <나홀로 집에>에서 어리바리 도둑으로 출연했던 그 배우가 공부 열심히 했는지 이번엔 변호사역으로 등장하셨다. 이분만큼 반갑고 이번 작품에서 아버지 역으로 확실한 존재감 주셨던 브라이언 데니히. 어릴 적 본 1986년작 <F/X>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최고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던 수작.
정말 이 두분을 다시 보게 되어 반가웠다.
"에필로그"
<007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의 폴 해기스 감독은 이전 007과는 달리 첩보 액션이라는 틀 안에서 제임스 본드가 겪는 고뇌와 감정 변화에 중점을 둔 작품을 보여줬다. <쓰리 데이즈>도 그런 연장선상의 작품이라 보면 될 듯 하다. 색다른 시간대 전개도 독특했고 도망과 추격을 풀어가는 과정도 괜찮았던 영화로 지나친 기대만 아니면 즐기기에 충분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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