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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이 깨질 때의 그 씁쓸함... 환상의 그대
ldk209 2011-02-09 오전 11:45:23 1076   [0]
환상이 깨질 때의 그 씁쓸함... ★★★★

 

우디 알렌. 80을 눈앞에 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년 무슨 공산품 찍어내듯 신작을 들고 찾아오는 것을 보면 이젠 놀라움이나 신기함이라는 감정보다는 거의 일상화된 느낌이다. 그다지 열성적인 팬이 아니라 우디 알렌의 영화를 매번 찾아보는 것은 아님에도 그의 손길을 거친 영화는 어쨌거나 기본적인 수준을 유지한다는 점은 여전히 놀라움의 대상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환상의 그대>는 최근 관람한 영화 중에 가장 재밌는 영화였으며 가장 유쾌한 영화였다. 우디 알렌의 스크루볼 코미디가 빚어내는 말의 성찬은 말 그대로 환상적인 경험이며, 객석은 시종일관 ‘낄낄’대는 웃음소리로 그득했다. 물론, 코미디는 다른 장르에 비해 개인적 취향이 판이하므로 다른 사람에게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보장은 못한다. 그럼에도 말의 성찬 뒤에 찾아오는, 아니 환상이 깨진 뒤에 찾아오는 그 씁쓸함과 허전함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볼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엔 총 네 커플이 등장한다. 그러니깐 주요 인물만 8명이 출연하는 셈이니깐 이 영화가 어느 정도는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예상은 접어두는 게 좋다. <환상의 그대>는 많은 인원과 에피소드가 무색하리만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으며,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내레이션은 놀라울 정도로 명쾌하게 많은 걸 정리해준다. 모든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인물은 샐리(나오미 왓츠)다. 샐리는 황혼 이혼에 충격을 받아 알코올에 의지하는 엄마 헬레나(젬마 존스)를 위해 점성술사를 소개해주고, 아버지 알피(안소니 홉킨스)의 새로운 사랑의 과정을 지켜보며, 스스로는 오랫동안 새로운 작품을 쓰지 못하고 있는 남편 로이(조쉬 브롤린)와의 불화를 겪으며, 직장 상사와의 달콤한 로맨스를 꿈꾸는 중이다.

 

인생엔 “신경 안정제보다 환상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말이 영화 결론부를 장식하듯 영화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환상을 그리며 현실을 헤쳐 나가려 하지만, 그 환상은 말 그대로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현실은 그저 현실을 뿐임을 냉혹하게 직시하게 된다. 알피는 몸을 파는 3류 배우와의 재혼에 성공하지만, 그가 꿈꾸는 젊은 연인과의 환상은 비아그라의 조력을 받아야만 되는 육체적 한계 앞에서 좌절하게 되고, 건너 편 아파트의 아름다운 여인 디아(프리다 핀토)와의 사랑에 성공한 듯 보이는 로이 역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친구의 회생과 함께 환상은 무참히 깨질 운명에 처한다. (친구가 죽었다고 생각한 로이의 판단 자체가 일종의 환상이었을 것이다.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중상을 입었다는 전화에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대입시켜 착각한 거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일종의 환청. 왜냐면 그것만이 자신이 원하는 사랑과 성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영화를 전반적으로 이끌어가고 중재하는 샐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에게 오페라 관람을 청하고 아내와의 불화를 얘기하는 직장 상사 그렉(안토니오 반데라스)과의 사랑이라는 환상을 꾸지만, 그렉은 자신이 소개한 화가 친구와 이미 연인 관계로 발전한 상태였다. 처음 그 얘기를 듣곤 샐리는 그렉이 천하에 둘도 없는 바람둥이라 생각하지만, 그런 판단 역시 샐리의 자존심을 위한 위무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렉 역에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캐스팅한 건 관객에게 그렉이 바람둥이라는 선입견을 주기 위한 캐스팅이라고 보인다.(참 절묘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스스로가 환상에 눈이 멀어 헤매는 알피, 샐리, 로이가 정작 헬레나에게 환상에서 빠져나오라며 윽박지른다는 것이다. 로이는 장모에게 “그 점성술사는 돈을 받고 그저 장모님이 원하는 얘기만을 해줄 뿐이다”며 힐난을 퍼붓지만, 헬레나는 “자네는 내 돈을 받고도 내가 좋아하는 얘기를 해주지 않는다”며 반박한다. 로이의 힐난에 일종의 진실이 있다고 보인다. 그 점성술사가 헬레나가 원하는 말만(!)을 해주는 건 확실한 것 같다. 그러니깐 어떻게 보면 점성술사의 입을 빌어 딸의 사업자금 대출을 미룬 것도 헬레나의 판단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가장 환상을 꿈꾸며 사는 듯한 헬레나가 가장 현실에 적응하며 사는 인물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른 인물들이 현실에선 만나기 힘들 것 같은 멋지고 아름답고 환상적인 연인과의 로맨스를 그리다 현실의 벽에 부딪치지만, 헬레나의 새로운 사랑은 나이로 보나 외모로 보나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며 유일하게 사랑에 성공(하는 듯하게 마무리된다)한다는 점이 그러한 해석의 반증이다.

 

“인생은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고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

 

※ 이 영화가 가장 아쉬운 건 기존의 우디 알렌 영화가 그 영화를 촬영하는 장소에 대한 고찰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에 반해, <환상의 그대>는 런던에서 촬영했지만 런던과는 무관한 영화로 보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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