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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킹스 스피치
ldk209 2011-03-26 오후 2:55:53 1362   [0]
스펙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

 

1939년. 라디오가 막 보급되어 왕실조차 연기를 해야 했던 1939년. 사람들 앞에만 서면 심하게 말을 더듬는 조지 5세의 아들 앨버트 왕자(콜린 퍼스)는 아내(본햄 카터)가 소개해 준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시)의 도움을 받아 말더듬 증세를 치료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숨을 거두게 되고, 왕위를 이어 받아야 할 형 에드워드 8세(가이 피어스)는 사랑 때문에 왕위를 포기하고 앨버트는 원치 않았던 영국 국왕의 자리에 오른다. 이제 조지6세는 히틀러의 침공에 맞서 영국 국민들을 상대로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 세워야 한다.

 

2011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킹스 스피치>는 왕의 말더듬 증세라는 별 것도 아닌 걸 영화로, 그것도 매우 유려하면서도 리듬감 있게, 감동적으로 만들 수 있구나 라는 하나의 증표가 될 만하다. 앨버트 왕자의 푸념대로 라디오가 없었다면 조지6세가 말더듬이를 고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더 멀리 간다면 어린 시절의 강압적 환경이 아니었다면 아예 말더듬이가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콜린 퍼스의 연기가 빛이 나는 순간은 말더듬을 하거나 그것을 극복하는 장면이라기보다 라이오넬 로그에게 어린 시절을 털어 놓는, 둘 사이에 친구로서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왼손잡이인데도 억지로 오른손으로 모든 걸 해야 했으며, 안짱다리를 고치기 위해 보철을 대야 했고, 유모의 냉대를 받아야 했던 조지 6세의 어린 시절이야말로 어쩌면 영화가 주는 감동의 원천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또 하나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유행어가 된 소위 ‘스펙’에 관한 문제이다. 요즘 대학생을 포함한 다수 사회 구성원들의 최대 관심이 된 ‘스펙’. 좋은 학력, 화려한 자격증, 토익에서의 높은 점수 따위를 의미하는 ‘스펙’이라는 외적 조건이 마치 특정한 인간에 대한 유일한 평가의 기준이 된 듯하고, 따라서 ‘스펙’을 쌓기 위해 청소ㆍ경비 노동자들의 집회는 부정되어야 한다.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는 박사도 아니고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가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훌륭하게 조지 6세의 말더듬이를 치료했고, 그건 그가 말더듬은 단순히 외적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자라온 환경과 결부된, 즉 그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문제라는 차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런 긍정적인 점에도 불구하고 <킹스 스피치>는 고개가 흔쾌히 끄덕여지는 영화는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말끔하게 잘 다듬어졌음에도, 오히려 그것 때문인지 영화의 강조점이 연설의 내용보다는 말더듬이라는 형식에 치중되어 있어, 자칫 영화의 깊이가 얕다고 느껴질 지점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말에 능수능란한 히틀러와 말더듬이 조지 6세라는 대립구도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 영화는 적대적 인간의 대립보다는 신분을 초월한 소통에 있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 베토벤 교향곡 7번을 배경으로 라이오넬의 지휘로 조지6세가 연설을 하는 장면은 <카핑 베토벤>에서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이 여성 카피스트의 도움으로 9번 교향곡 초연을 성공리에 지휘하는 장면과 이미지가 겹친다.

 

※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묘하게 95년도 지방선거가 연상되었다. 당시 서울시장 선거는 달변가이자 친 여권 성향의 박찬종 후보와 어눌한 민주당 조순 후보, 거기에 민자당 정원식 후보까지 3자 대결구도였다. 선거 초반은 박찬종 후보의 압도적 우세로 기울어지는 듯했다. 그의 소위 스펙은 완벽할 정도였다. 사법고시, 외무고시, 행정고시 등 3대 국가고시를 패스한 천재 이미지, 거기에 화려한 말빨. 특히 TV 토론에서 박찬종의 언변은 감히 다른 후보와의 비교를 거부할 정도로 뛰어났다. 거기에 반해 TV 토론에 비친 조순 후보는 어눌하기 그지없었다. 시간 내에 답변을 다 못할 정도로 쩔쩔매는 모습에 지지자들조차 답답해했다. 그러나 TV 토론이 거듭되면서 오히려 박찬종 후보의 강세가 꺾이고 조순 후보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결국 승리를 거뒀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분명한 건 화려한 언변보다 그 말에 담긴 내용, 그리고 진정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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