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길어올리기
거장의 101번째 영화는 한지에 관한 작품이다. 영어제목도 한지이다. 그 만큼 한지라는 우리 고유의 문화재산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보는 극영화 스타일이 아니라 다큐적인 요소들도 많이 들어가 있다. 이런 화학작용은 작품 안에서 다른 조합을 통해 다양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면 전문배우+비전문배우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 안에선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명인들이 한지 전문가를 연기한다. 대표적으로 김동호 전 부산영화제집행위원장을 비롯해서 임권택 감독의 실제 부인 등이 출연한다. 이런 조합은 낯설고, 어색한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두 번째 관람한 나로선 오히려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독이 말하자는 것을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스타일의 변화를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저한 극영화로 간다면 ‘한지’에 대한 관객들의 생각이 길게 가지 못 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 이런 스타일을 고수한 게 아닌가한다.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이야기의 재미보다 ‘한지’에 대한 정보와 그 보다 더 아름다운 촬영이 너무 맘에 와 닿았다. 하늘의 별을 언제 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는데, 이 작품 속에 별빛과 달빛, 그리고 물에 비친 달빛조차 너무 아름다웠다.
캐릭터들은 그다지 흥미롭지 못했다. 조금 평면적이었고, 3명의 배우들은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캐릭터 자체가 입체적이지 못해 아쉬웠다. 물론, 이 작품 스타일 때문에 첨부터 화려한 셋팅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한주사(박중훈)는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바람핀 것에 대해 아내에게 용서구하고, 아내(예지원)은 남편의 바람에 뇌졸중이 걸려 집에 있지만, 그를 어느 정도는 용서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한주사는 다큐pd(강수연)을 만나 다시 바람을 핀다. 물론 길게 가진 않는다. 주요 캐릭터들이 이렇게 표면적으로 얽혀있다.
어느 평론가가 흥미로운 비유를 한 것이 인상 깊었다. 이 작품은 한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지->하얀 스크린, 달빛->조명에 비유했는데, 어느 정도는 동의할 수 있는 비유였다.
끝으로 이 작품엔 멋진 대사가 곳곳에 있는데, 엔딩에서 예지원의 대사가 인상 깊었다. ‘마음으로 그 빛(달빛)을 보듬을 때 가득할 수 있다.’ 산 속에서 닥나무로 한지를 만들면서 그 장인들의 마음을 잘 표현한 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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