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옹’이란 영화의 후속편이란 이야기도 있고, 소녀 주인공이었던 마틸다가 성장하고 나서 할 복수를 보여주고 싶어서 만들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과거 작품인 레옹과의 연결고리가 무엇이든 이 영화는 그냥 콜롬비아나다. 즉 우리가 모르는 어느 소녀가 성장하고 나서 시작하는 복수극으로 알았고,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에 어느 영화에서 봄직한 그런 구성과 내용, 그리고 결말을 비슷하게 다 갖고 있어서 굳이 이전 작품과 연결한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이 영화, 사실 평범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뻔한 영화지만 그래도 뭔가는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를 다루는 미국영화는 유별나게 친절해 보였다. 상당수 영화에서의 복수는 정당했고 정의로웠다. 서부영화의 고전들이 거의 다 복수와 연관된 것을 생각한다면 복수를 하는 것이 얼마나 명예스러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 영화의 특성 중 하나인 통쾌함이 이 영화엔 없다. 프랑스 감독, 뤽 베송이 만든 각본이라 좀 달랐을까? 어릴 때의 부모님이 살해당하는 불행과, 그 과정에서 겪게 된 위험과 공포는 씁쓸한 인생의 전조인 것만 같았다. 부모의 살해는 이미 어린 소녀의 미래를 제한해 버렸고, 그녀의 삶 역시 복수를 하고 난 이후 자신의 진정한 삶이 시작되는 듯 했다. 태어날 때부터 숙제 하나를 갖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소녀 시절을 허비해야 하는 운명을 짊어진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우아해 보이진 않는 법이다. 결국 불행한 운명을 지닌 여인의 삶이 형상화될 수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불운으로 점철된 복수를 위해 살게 된 여자 킬러, 카탈리나는 부모가 살해당한 이후, 여느 어른들도 하기 힘든 놀라운 거래를 하며, 자신의 또 다른 가족의 품으로 간다. 그녀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되고자 했던 것은 킬러였다. 이 점에서 그녀는 착하지도, 그렇다고 남을 배려하는 인생을 사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게 됐다. 자신의 복수 대상을 죽이기 위한 준비도 하지만 번외로 그녀는 또 다른 살인을 해야 할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복수는 정당할 수 있지만 또 다른 타인에 대한 살인으로 본인도 누군가에 의해 복수로 응징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아니면 작위적인지 그녀가 살해한 인사들은 범죄자라 해도 전혀 틀리지 않은 인간들이다.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주인공이 그렇게 나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주인공은 그래도 정당하다는 신화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제작자들이나 관객들의 바람이 반영된 결과이리라. 그러나 그녀의 복수는 자신의 또 다른 비극을 만들고 말았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이들의 죽음, 그리고 그나마 그녀가 행복하게 간직했던 사랑의 보금자리 역시 무참히 망가지고 말았다. 복수가 정당해 보이긴 하지만 살인은 그에 걸맞은 위험을 내포하기에 복수에 대한 각오를 해야만 했다. 다만 그런 위험성을 처음엔 인지하지 못했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알게 됐다는 점에서 비극은 더욱 강화됐다. 영화에서의 복수는 끝났다. 그리고 그녀는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사적 복수 역시 불법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싫든 좋든 과거와의 비극적인 단절을 한 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도록 강요 받게 됐다.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죽거나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했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기약 없는 만남에 대한 약속을 했지만 그것이 과연 언제인지, 그리고 과연 재회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최소한 그녀는 재회를 마냥 반길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복수는 자신의 불행에 대한 개인적 정당화는 얻을 수 있지만 반대로 결코 행복할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해주지 못했다. 사회적 정의를 따지기엔 매우 어렵지만 그러나 복수가 인간의 궁극적 행복을 줄 수 없다는 마지막 모습들은 묘한 울림을 관객들에게 줬다. 통쾌함이 아닌 우울함이 지배하는 마지막 장면들이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오르는 버스는 그녀의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지만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멀리 보이는 찻길 위에서 버스가 향하는 그곳에서 그녀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과연 그게 될까 하는 의문도 동시에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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