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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냉정, 건조하고 서늘하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ldk209 2012-02-15 오전 11:51:14 1104   [1]

 

침묵, 냉정, 건조하고 서늘하다... ★★★☆

 

냉전이 극을 치닫던 1973년 영국 정보부 서커스의 수장인 컨트롤(존 허트)은 정보부 내에 암약하는 소련 스파이(두더지)를 찾아내기 위해 짐 프리도(마크 스트롱)를 작전에 투입시켰다가 실패로 돌아가자, 책임을 지고 컨트롤에서 사임한다. 컨트롤의 오른팔이었던 조지 스마일리(게리 올드만) 역시 공동책임을 지고 사임한다. 얼마 뒤 컨트롤이 지병으로 사망하고, 스마일리에게 서커스 고위 간부 4명 중 한 명이 오래 전에 침투한 두더지이며, 이를 찾아내라는 정부 고위 관료의 호출이 떨어진다.

 

영화를 보기 전에 모든 첩보 스파이 영화의 원작과 같은 존재라는 존 르 카레의 원작 소설을 사서 읽다가 중간 정도에서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다. 비록 다 읽진 않았지만, 이건 결코 쉽게 영화화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니었다. 단지 길다는 이유가 아니라, 매우 복잡하고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었다. 대게 소설이 1/3 정도 지나면 이야기의 윤곽이 잡히면서 진행 속도가 빨라져야 하는 데, 이건 반을 읽었는데도 여전히 모호하고 안개 속에 빠져있는 듯하다. 영화화하기 쉽지 않은 더 중요한 이유는 흔히 생각하는 스파이, 첩보 스릴러 영화로서의 재미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스파이 첩보 스릴러 영화들이 보여주는 재미 중 하나는 액션인데, 도대체 이 소설엔 액션이란 게 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소설을 영화로 연출하는 데 가장 적합한 사람 중의 하나가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이었을 것이다. 그가 만든 첫 영화 <렛 미 인>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중의 하나이며, 21세기 뱀파이어 영화의 마스터피스라고 감히 단언한다. 뱀파이어 영화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하드코어 음악과 날카로운 송곳니, 화려한 액션과 <렛미인>이 아무 상관없듯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역시 그러하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마치 거의 원형질의 스파이 영화라는 느낌이다. (이런 표현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나조차도 아리송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너무 단순하다. 영국 첩보국(MI6)에 침투한 소련 스파이를 색출해내는 것이니깐. 그런데 이 영화는 추리 과정이라든가 범인을 알아내고 사로잡는 장면에서의 쾌감이 전혀(!) 없다. 아예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심지어 결국 밝혀지는 두더지가 그 인물(!)이 아니어도 스토리상 별 상관이 없다. 네 명 중 누구라도 말이 된다. 돈이라든가 사랑이라는 이유로 첩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영국 스파이나 소련 스파이나 할 것 없이 이들은 자신들의 가치관, 직업윤리에 따라 스파이가 되고 또 첩자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70년대의 냉전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스파이 첩보 스릴러 영화로서 무엇을 주고 있는가? 그건 바로 거의 극단적인 서늘함과 건조함이다. 화면의 칙칙한 회색톤은 영국의 현실을 표현하는 화면임과 동시에 70년대의 차가운 냉전을 말해주는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은 또 어떠한가. 이들은 다른 영화 속 스파이처럼 화려한 액션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들은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모든 것을 관찰하고 주의 깊게 지켜보며, 조용히 귀 기울인다. 두더지를 찾아내는 과정도 그저 과거의 일을 회상하고 복기하며 일에 관련된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뿐이다. 불가능한 곳에 침투하는 일도 없고, 그저 서류를 검토하는 것이 멋진 코트를 걸쳐 입은 영국 스파이들이 하는 일의 전부다. 그런데도 묘하게 긴장감이 흐른다. 영화는 마치 이게 바로 70년대라고 말하는 듯 느껴진다.

 

※ 영화는 소설의 순서를 마구 뒤집어 놓았다. 누가 말했듯이 이러한 각색의 방향은 좀 더 수월하게 이야기를 파악하게 하기 위함인 것 같다. 그러나 소설이 그랬듯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도 여전히 모호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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