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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지난 시사회 후기 건축학개론
milky0 2012-03-22 오전 6:18:32 806   [1]

흐린 색 글씨에는 영화의 중요 스포가 포함되어 있으니 안 보실 분은 스킵해주시고, 보실 분은 마우스로 긁어서 읽어 주세요.

 

 

 

 

 

 

 

 

 

1. 잼있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아련하다. 광고 카피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인데, 영화를 보고 나니 정말 명카피 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은 딱히 애틋할 것도 없는 썰렁하고 허무하기만 한 첫사랑의 경험을 갖고 있는데도, 극장을 나설 때 뭔가 아련한 듯, 그리운 듯, 기억도 잘 안 나면서 괜히 아름다웠던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이 영화는 보는 이들의 첫사랑을 환기시키는 힘이 확실히 좀 있다.

 

2. 영화는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 사람들이 첫사랑이란 것에 기대하는 온갖 긍정적인 면은 다 보여준다는 점에서 판타지 스럽지만, 대신 그 묘사가 아주 자연스러워서 거부감은 없는 편이다. 그 풋풋함, 순수함에 보고만 있어도 절로 엄마미소 지어지고, 삽질할 때는 절로 안타까워지고, 분위기 좋을 때는 절로 들뜨게 되고 그런다. 그림같이 예쁘고 순수한 첫사랑이라 '너무 이상적이고 전형적인 이미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적어도 나는 보는 동안 그런 느낌이 없었다. 누구나 첫사랑을 추억속에서 좀 미화시키기 마련이지 않나. 영화는 그 수준을 넘어서서 미화시키는 일은 거의 없었고, 그냥 너도 나도 다 겪은 일이라는 느낌으로 연출하고 있더라. 그래서 편안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공감하며 보게 된다. 나중에 곰곰 생각해보면, 매우 현실적인 첫사랑 판타지였다는 느낌도 살짝 들지만 말이다.

 

3. 영화를 보기 전에는 한가인-엄태웅 커플이 주역이고 수지-이제훈 커플은 그들의 아역시절을 조금 연기하는 줄 알았는데 정 반대였다. 시간적으로도 어린 시절 회상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영화의 초점도 두 사람의 해후보다는 순수했던 그 시절에 맞춰져있다.

4. 엄태웅-한가인 조합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제훈-수지 조합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고. 그러나 이제훈-수지가 15년 후 엄태웅-한가인이 됐다고 생각하면 어색함이 많다. 외모 싱크로 문제는 넘어간다 쳐도, 성인이 되면서 캐릭터 자체가 약간 달라졌달까. 어릴적 수지는 당돌하고도 발랄한 캐릭터인데, 한가인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청담동 며느리 스타일+ 좀 피곤한 여자 캐릭터로 바뀌어 있고, 그렇게 수줍던 이제훈이 쪼잔껄렁한 엄태웅으로 성장한 것에는 분명 이질감이 있다. 15년이면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남는 시간이니 성격이 못 변할 것도 없긴 하다만. 어쨌든 성인 캐릭터가 좀 찌들은 듯하게 변하면서 상대적으로 아역시절이 더 순수하게 보이는 효과는 있었다.

5. 납득이 역의 조정석이 정말 기똥차게 연기를 잘한다. 납득이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얼마나 심심하고 밋밋했을까. 이 캐릭터 덕에 승민이의 연애번민도 더 살아나고, 꼭 내 친구 연애사 듣고 있는 느낌도 들고, 아~ 이런게 스무살의 연애구나 싶어 귀엽기도 하고,, 무엇보다 납득이 덕에 영화가 처질 틈이 없다. 거의 빵빵 터지는 수준.

6. 근데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정말 저런 숙제를 내주나? 집에서 학교 오는 길 투어, 우리 동네 여행, 내가 살고 싶은 곳 여행이라니.. 그 교수님 참 낭만적이고 멋있기는 한데 요즘 학생들은 싫어할 것 같다. ^^

7. 제주도 한가인의 집이 너무 아름다워서 부러울 정도였다. 삐까번쩍 으리으리한 집은 아니지만 소박하게 멋이 있는 집이었다. 거실 창문을 열면 제주도의 푸른 바다가 16:9 비율로 펼쳐지는데 정말 그림 같았고,(영화 예고편에도 나옴) 1층 거실 지붕에 잔디를 심어놓고 2층 한가인 방에서 테라스처럼 쓸 수 있게 만들었는데, 거기서 일광욕하며 책보면 진짜 신선이 따로 없겠더라. 나도 제주도에 집이나 하나 지을까 막 이러고, 내 첫사랑은 왜 건축가가 아닐까 막 이랬다.ㅋㅋ

 

8.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형식의 많은 드라마들처럼 첫사랑이 주인공 인생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서로 첫사랑이었던 남녀가 15년 만에 다시 만났으니 TV에서 많이 본 익숙한 시추에이션이 나올까봐 걱정했는데.ㅋㅋ 천만분의 확률로 엇갈렸던(일명 병신 술래잡기 하느라고) 커플이 어렵게 다시 만난다던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오해로 헤어졌었는데 15년 뒤에 오해가 풀리면서 다시 사랑이 싹튼다던지, 아니면 첫사랑만이 유일하게 포기안되는 사랑이라서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던지, 하는 그렇고 그런 레파토리 저~~언혀 없다. 그런 부분이 참 현실적이어서 맘에 든다.

아니 그럼 한가인은 도대체 15년만에 왜 나타났냐고! 이제와 뭐 어쩌자는 거냐고! 이러는 관객도 있을 것 같긴 하다. 영화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조금 애매모호하지만 그 점이 또 참 현실적이다. 현실에서 첫사랑에 대한 진짜 감정이 아마도 그럴테니까. 애매모호한 감정. 정말 그냥 어찌 사나 궁금하기도 하고, 그때 그 감정은 뭐였는지 날 정말 좋아했었는지 물어보고 싶기도 하고, 이제와 다시 어찌해볼 맘은 아니어도, 그래도 그때 정말 좋아했다 말해주고 싶기도 하고..... 뭐 이러저러한 애매한 이유로, 남이 들으면 어이없을 만큼 별 것 아닌 이유로 한가인도 찾아간 것이다.

하지만 마무리가 너무 애매하다는 생각은 든다. 한가인이 다시 찾아온 것까지는 애매해도 애매한데로 괜찮았는데, 마무리는 너무 애매해서 쪼께 거시기하다고해야 하나 찝찝하다고 해야 하나ㅎㅎ 그때 확인하지 못했던 감정을 15년 만에 확인한 것 까지는 좋다만, 그 후 두 사람의 감정이 애매해도 너무 애매한 듯하다. 추억을 기분 좋게 간직한 채 깔끔하게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옛날 감정이 되살아나서 새로 정분이 나는 것도 아니다. 분명 흔들리긴 흔들리는데 그냥 좀 싱숭생숭하다 마는 정도. 이게 일반적이고 현실적인 그림이려나? 하긴 그럴수도 있겠다. 15년 만에 뜬금없이 나타난 첫사랑에게 그렇게나 절절할리도, 그렇다고 완전 덤덤할리도 없을테니. 뭐 이걸 현실적이라고 한다면 현실적인 거겠지만... 아무튼 맘이 콩밭에 가 있는 채로 결혼하는 엄태웅의 모습이 나는 좀 거시기하였다. 이건 미련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여, 정분이 난 것도 안 난 것도 아니여.

 

9. 공교롭게도 이 영화를 화이트데이에 봤는데, 화이트데이용 무비를 기대한 커플들한테는 이 영화의 후반부가 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겠다. (달달함 부분에선 합격이다) 극장을 나서는 내 옆자리 커플이 "본격 바람 권장 영화" 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걸 들었다. 확실히 올드커플이나 결혼을 앞둔 커플에게는 아주 조금 껄끄러울 수도.

10. 마무리 아쉽다는 얘기를 길게 써 놨지만 사실 전체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어차피 이 영화는 상큼이 시절의 달달한 애정 놀음이 7할이기도 하고, 그 점이 약간 있는 아쉬움을 거진 다 상쇄한다. 또 음악, 미술, 소품에도 구석구석 티 안나게 신경써서 영화가 참 담담하게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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