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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그들을 감염시킨 끔찍한 전쟁 중독 바이러스. 아르마딜로
theone777 2012-05-02 오전 8:20:37 403   [0]

아무도 모르게 그들을 감염시킨 끔찍한 전쟁 중독 바이러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지금 이게 실제 영상인가? 꾸며낸 극 영상인가? 분명 기존 극영화들과는 확실히 차별화 된, 꾸며지지 않은 날 것의 이미지들인 것으로 봐서는 실제 영상 같기도 한데, 그럼 이걸 진짜 찍었단 말인가? 아무리 리얼리티와 사실성이 중요한 다큐멘터리 영화라지만 목숨을 담보로 직접 전쟁 현장에 뛰어들어 그들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낸 것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 영화, <아르마딜로>의 영상들은 주인공(군인들)의 헬멧에 카메라를 직접 부착 설치하여 찍은 것이고 감독과 카메라맨이 현지 적응 훈련까지 한 뒤 직접 전쟁 현장에 뛰어들어 직접 담아낸 영상들이라고 한다. 정말 무척이나 대담하고 놀라운 시도의 영상들이라 생각된다. 목숨을 담보로 한 촬영의 실제 현장 영상의 결과물들. 정말 충격이다. 거기에다 시종일관 깔리는 너무나도 우울하고 비장한 배경음악. 그렇게나 우울한 음악은 최근에 봤던 영화 중 <토리노의 말>에서 느꼈던 음악과 비슷했다. 매우 황량하고 살벌한 공포의 배경음악.

영화는 아프가니스탄 최전선 ‘아르마딜로’ 라는 캠프에서 생활하는 덴마크 파병 군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탈레반 반군과 평화유지군의 무의미한 희생과 마을 주민들의 속수무책적인 피해가 반복되는 전투가 끊이질 않고 계속 되고 있는, 척박하고 황량하기만 한 희망이 없는 아르마딜로이다.

바로 이곳에 파병을 오게 된 덴마크 군인들을 장장 6개월 동안 밀착 관찰을 하며 파병 오기 전과 후에 변화된 그들의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극히 가까운 바로 옆의 동료가 바라보고 있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과 사실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장면 대부분이 마치 영화 속의 한 인물이 되어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것같이 느끼게 하는 핸드헬드 기법이나 군인들의 헬멧에 장착한 소형 카메라를 통해 촬영을 했기에 직접 영화 속 군인들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진지와 마을 정찰, 게릴라 총격 전투 등 전쟁 한복판의 현장을 직접 체험 하는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연출이 되었다. 물론 이 전투와 사건들은 연출이 아니라 진짜 사건, ‘사실’ 이다.

이러한 생생한 현장감과 사실감을 바탕으로 영화가 전개되기 때문에, 말로썬 명쾌하게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파병 군인들이 겪는 그 어떤 심리에 나도 모르게 서서히 동화되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파병에 처음 오고 나서는 한 두달 간은 생각보다 그리 위험하지 않고 급박하지 않은 현지 생활 속에서 나름대로의 여가시간과 놀이시간을 즐기며 약간의 긴장감만을 가진 채 약간은 평화롭다 못해 지루함까지(?) 느끼며 생활을 하는 그들인데, 나 또한 ‘아프가니스탄 최전선이라도 뭐 별거 없구만.’ 하는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한다. 물론 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심장 쿵쾅 거리는 전투 장면에 대비하여 조마조마한 상태이지만 어쨌거나 그 군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만하다’ 라고 해야 할까. (물론 직접 파병 가본 그들만이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영화에서는 말하긴 하지만...)

그런 나름(?) 평화롭다 못해 지루함까지 동반된 전쟁터 아닌 전쟁터 생활 속에서 마침내 서서히 피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멀쩡하던 소대장의 두개골이 박살이 나 생명이 위태롭다. 마침내 IED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숨 막히는 전투가 시작되는데, 이때부터 주인공들의 심리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옆에 있던 동료의 어깨와 다리에 총알이 박히고 군인들은 서서히 패닉에 이른다. 총알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른다. 최대한 몸을 숙이고 한시라도 빨리 적에게 총구를 겨눠야한다. 쏘지 않으면 그들이 당한다. 이곳은 단순히 시간 복무기간 때우러 놀러온 곳이 아니라 역시나 전쟁터인 것이다. 그러던 중 한 게릴라 전투에서 덴마크 병사들은 마침내 탈레반 반군을 크게 소탕해 낸다.

개인적으로 이 전투 장면에서 정말 큰 충격이었는데, 정말로 탈레반 반군의 죽어있는 시체를 여과 없이 보여줄 줄이야. 나는 관람하면서 여태 이때까지만 해도 이건 연출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진짜 탈레반 반군의 시체였던 것이다. 정말 소름끼치고 역겨운 장면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얼굴은 형채도 없이 뭉개지고 사라져 보이지도 않고 몸은 축 늘어진채 푸르팅팅하며, 그 현장의 역겨운 냄새까지 전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온갖 비위 상하는 끔찍하고 역겨운 비주얼과 악취가 진동하는 모습. 이것이 진짜 전쟁의 참상.

그런데 간만의 이런 심장 쫄깃해지는 화끈한 기습 전투에서 승리한 덴마크 병사들.. 그전과는 점점 달라져 보이기 시작한다. 심상치가 않다. 승리라는 기쁨과 동시에 전투로 부터 큰 충격과 쇼크를 동시에 받은 젊은 덴마크 병사들... 흥분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한다. 드디어 전쟁 속 전투다운 전투, 부상다운 부상, 상처다운 상처를 얻었다고 되려 목소리에 뿌듯함과 당당함, 즐거움, 힘이 가득해진다. 이상하다. 전투가 끝나고 이겼다 하더라도, 그런 상황을 한 번 겪고 나면 한시라도 빨리 그 전쟁터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던 걸까? 물론 그들 자신들은 언제 머리통이 날아가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전쟁터에 놓여있고 하루하루가 불안한 건 관객인 나보다도 분명할 테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전투의 작은 승리(?)가 그들에게만은 평생토록 회자될 길이길이 기억될 최고의 전투였고, 그 동안의 파병 3~4개월 동안 느꼈던 지루한 긴장감과 평화로움에 따른 따분함을 파괴시켜준 희열과 쾌감의 효과를 나타내는 기저로서 작용했던 것 같다. 이로써 결국 덴마크 군인들에게 역시 전쟁은 마약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아무도 모르게 그들에게 전쟁이라는 전염병, 전쟁 바이러스에 조금씩 조금씩 감염되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제일 충격적인 건, 실제로 이 파병 군인 주인공들이 6개월간의 파병을 마치고 고향 덴마크로 돌아온 뒤에 일이다. 안락한 집과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왔음에도 일반인으로서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의 그 전쟁 현장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한 것이다. 아니, 그 황량하고 끔찍한 덧없는 죽음의 땅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미친거 아닌가? 그러나 그들에게 더 이상 전쟁의 의미는 끔찍하고 무섭고 두렵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들도 모르게 전쟁은 그들에게 있어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고 파병 그 전의 삶과는 전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그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전쟁과 함께 하는 삶에 중독되어 일상에서 전혀 느낄 수 없는 전쟁만을 통해 느낄 수 있는 희열과 쾌감을 쫓게 된 것이다. 또한 그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남으면서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끼고 전투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과 살아 숨쉬고 있음을 확고히 하며 삶의 이유를 찾고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마약에 한번 빠져들게 되었을 때 수반되는 놀라운 결과인 것이다. 그들은 정말 전쟁이 아니면 살 수 없게 된 걸까.

영화에선 정말 이런 전쟁을 통해 변화해 가는 군인들의 심리를 6개월간 밀착하여 잘 보여준다. 그들이 여가시간에 놀면 노는 모습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정찰하면 정찰하는 모습, 전투 중에 전투 현장의 모습, 아프가니스탄 민간인들과 대화를 나누면 그 대화하는 모습, 그 모든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이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그것을 최대한 실감나게 간접체험 시켜주는데 이번 <아르마딜로>를 보면서 또 한번 확실하게 느꼈던 것은 ‘전쟁에 영웅은 없다’ 는 것이다. 여타 헐리우드 전쟁 영화들에서 보여주는 기가 막히게 드라마틱한 전쟁 영웅들과 같은 화려하고 멋있는 그런 군인은 없다고 본다. 실제로도 이 영화를 보면 여타 전쟁 영화에서 보여주는 멋진 슬로우 모션 전투 장면들은 볼 수 없다. 1인칭의 시점으로 전투 상황을 생생하고 담는다. 실제로 총알이 어디에서 날아오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정말로 엎드려 숨어 있어야 하고 은폐엄폐 해야 한다. 진짜 군인들의 전투 상황을 옆에서 실제로 보고 있노라면, 정말 숨이 막힌다. 입이 벌어지고 아무 말도 안나온다. 탕탕, 가슴 철렁 빗발치는 총탄 소리와 폭발음. 눈앞에서 벌어지는 실제 전투. 정말 무시무시하다.

그런데 이런 전쟁에 서서히 중독되어 가는 그 젊은 덴마크 군인들. 아이러니하지만 사실인 이야기. <아르마딜로> 카피문구 대로 ‘피부에 스며들 정도로 중독되는 바로 그 전쟁’ 의 이야기. 전쟁에 영웅이란 없다. 전쟁이라는 바이러스에 자신도 모르게 감염된 환자들만 있을뿐.. 지구상의 모든 덧없고 무의미한 전쟁들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단 우리나라의 상황부터 해결되야 할테지만...) 끔찍한 전쟁의 실상과 군인들의 심리를 온몸으로 느끼고 체험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해 본다. 다소 지루할 것 같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게 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전쟁이라는 그 무서운 바이러스에 대한 영화 <아르마딜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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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딜로(2010, Armadi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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