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트릴로지의 가장 적절한 완결판... ★★★★
※ 영화의 주요한 설정과 결말에 대한 묘사가 엄청 담겨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읽지 말고 그냥 돌아가세요.
드디어 돌아왔다. 2005년 <배트맨 비긴즈>로 출발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트릴로지가 2008년 <다크 나이트>를 거쳐 2012년 <다크 나이트 라이즈>로 배트맨 트릴로지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부모님을 범죄자에게 잃은 후 라스 알굴 밑에서 오랫동안 수련을 쌓고 고담시로 돌아와 어둠의 전사 배트맨이 된 브루스 웨인(크리스찬 베일)은 평화를 위해 스스로 하비 덴트 검사를 죽였다는 악역을 담당한 채 사라져 버린다. 그 후 8년, 고담시엔 거짓으로 이룩된 평화가 흐르고 브루스 웨인은 폐인처럼 은둔생활을 이어 나간다. 그러나 압도적인 육체적 능력을 지닌 베인(톰 하디)이 등장, 핵무기로 고담시를 접수하고, 거짓된 평화는 깨진다. 그리고 배트맨은 베인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다시 등장한다.
일단 칭찬을 늘어놔보자. 어쨌거나 많은 분량을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덕분인지, 어마어마하고 압도적인 이미지를 자랑한다. 일반 디지털 상영관과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두 번을 봤는데, 이 영화는 가급적, 아니 무조건 아이맥스로 관람해야 할 영화였다. 이미 본 영화인데도 아이맥스가 주는 느낌, 감동이 엄청난 크기로 밀려들었다. 이런 느낌은 <아바타> 류의 영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감독의 고집대로 가급적 CG 사용을 배제한 실제적 질감이 주는 쾌감으로 그득하다.
아마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거대한 미식축구장의 객석을 사람들을 복사해 붙여(!) 가득 채웠을 것이다. 그런데 놀란 감독은 만 명이라는 보조출연자를 동원하고서도 텅텅 빈자리를 그대로 두었다. 마지막 경찰 대 악당들의 집단 난투극 장면에서도 사실 저 뒤의 경찰, 악당들은 화면에 제대로 한 번 나오지 않는, 그저 배경이므로 CG로 처리해도 별 문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마저 실제 인물로 채워 넣은 그 고집.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런 고집이 모여 이런 거대하고 압도적 이미지가 탄생되었을 것이다.
미국의 금융 중심지인 월가 점령이라든가, 프랑스 대혁명을 연상시키는 장면들도 아주 흥미롭다. 전위적인 혁명가 포스를 가지고 있는 베인의 연설은 나름 새겨들을 지점이 있기는 하다. 물론 베인의 선동은 가짜 혁명, 가짜 선동이다. 혁명은 아래로부터 위로 분출되는 것이고, 대다수 구성원, 특히 민중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민중과 함께 전진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베인의 혁명은 곧 폭발될 핵무기를 숨겨두고선 그로부터 파생된 공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혁명이라 이름붙일 건덕지는 전혀 없다. 특히 이와 관련해 크레인(킬리언 머피)을 판사로 등장시켰다는 점은 매우 상징적이다. 누구는 크레인의 등장이 그저 시리즈 팬들에 대한 일종의 서비스라고 보기도 하지만, 크레인이 <배트맨 비긴즈>에서 공포를 상징하고 있었다는 점과 연결시켜 생각해보면, 바로 베인의 지배가 공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등장이 아닐까 한다.
질문을 던지는 <다크 나이트>에 비해 메시지가 상대적으로 약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곱씹어 볼만한 대사와 주제들이 넘실댄다.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약해지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해야 강해진다” “진짜 절망은 헛된 희망을 동반한다”와 같은 대사들도 좋지만, 계급 갈등과 같은 무거운 메시지도 적절히 다루어진다. 물론 계급, 금융과 같은 무거운 메시지는 이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주제가 아니므로 일종의 소스에 불과한 수준이다. 따라서 이런 메시지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 아닐까.
특히, 배트맨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에 대한 염원은 이 영화의 핵심을 구성한다. 이런 점에서 놀란 감독의 배트맨 트릴로지는 이상한(!)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시종일관 배트맨은 자신의 힘을 벗어 던지려 하고, 자신의 부담을 공적인 영역으로 이관시키려 노력한다. 적극적으로 해석해보면 이런 배트맨의 입장은 미국 사회의 자경단 전통과 총기 사용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한다.(극장에서의 총기 난사로 인해 사망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은 고담시의 문제를 좋은 지도자를 내세워 해결하려 하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선 수천의 경찰과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 심지어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중간, 배트맨이 지하감옥에 갇혀 사라져 버린 상황에서 경찰들은 배트맨 없이 스스로 베인의 목적을 좌절시키기 위해 노력한다.(자경단의 전통이 만들어낸 배트맨 영화에서 자경단이 등장하지 않는 아이러니) 그리고는 끝내 배트맨은 자연스럽게 고담시에서 사라진다. 이는 배트맨만이 영웅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린아이의 어깨에 코트를 걸쳐주며 세상이 끝나지 않았다고 얘기해주는 사람도 영웅”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호평으로만 끝내기엔 조금 미진한 부분도 있는데, 어쩌면 이는 시리즈의 전작 <다크 나이트>가 워낙 완벽해 더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우선 어쩔 수 없이 조커의 공백이 눈에 띈다. 베인은 육체적 능력으로는 배트맨을 능가하는 유일한 악당이다. 육중한 체구와 힘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대단하다. 개인적 차원의 혼돈을 불러오는 조커가 아니라, 조직으로 사회를 전복하려는 혁명가에 가깝다는 점에서 느껴지는 조커와는 다른 매력도 있다. 이런 영화에서 강력한 악당의 존재는 재미의 핵심이다. 그런데, 그토록 강력했던 베인은 어느 순간, 너무도 짧은 시간에 급격히 몰락하고 혁명의 대의 같은 건 원래 없었던 가련한 인간으로 추락해 버린다. 강력한 악당의 최후치고는 너무 허무하다. 이건 악당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원작에서 브루스 웨인의 아들을 낳는, 탈리아 알굴을 이런 식으로 소모한 것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아 보이긴 한다)
그리고 무려 164분이나 되는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담기지 않은 듯한 얘기들이 있으며, 이해하기 힘든 서사의 구멍도 눈에 띈다. 아예 <다크 나이트 폴>과 <다크 나이트 라이즈> 두 편으로 나눠 개봉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다. 특히 크레인의 경우, 그 비중으로 생각해 볼 때, 아캄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장면 한 컷 정도는 넣어줘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영화 중반부까지 워낙 많은 인물의 등장과 설정이 난무해 그것이 일관되게 정리되고 이해되기란 조금 애매한 측면이 있으며, 그걸 마지막에 한꺼번에 봉합하려는 시도가 조금 무리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한 지점이다.
어떻게 보면 매우 사소한 설정이고, 영화적 설정으로 이해해 줄 수 있기는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특징은 그런 사소한 것에도 원인과 과정을 명확히 제시해 줌으로써 탄탄한 내러티브를 표방해 왔다는 점에서 더 아쉽게 다가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지하감옥에서 탈출한 브루스 웨인이 모든 출입구가 막혀버린 고담시에 들어오는 과정이라든가 핵폭탄의 폭발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배트’의 잔해 같은 것들. 핵폭탄이 터지려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 여전히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 배트로 악당들을 공격하지 않고 주먹질로 베인과 맞서는 것도 참 팔자 좋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굳이 총으로 쏴 죽이지 못하겠다면, 바로 직전에 고든 국장을 구해낼 때 사용했듯이 표창을 사용해서라도 싸움을 빨리 끝내야 하는 상황 아니었을까? 어떻게 보면, 그러한 설정은 단지 12,000명의 보조 출연자를 동원해서 촬영한 경찰 대 악당들의 집단 난투극이라는 스펙터클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너무나 장중하고 무려 7년을 끌고 온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서 손색없는 결론이다. 배트맨의 고민, 즉 고담시의 문제가 해결되고, 자신의 후계자가 활동을 개시할 것이며, 자신과 관객은 행복한 미소를 짓는, 이런 모두가 만족하는 결론을 내리는 시리즈가 어디 그렇게 흔한 것인가 말이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원작에서처럼 10년 뒤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크리스찬 베일과 함께 <다크 나이트 리턴즈>로 돌아오길.
“부서지고 추락하고 다시 일어서다”
※ 여전히 이 시리즈 최고의 대사는 “일찍 죽어 영웅이 되든가 오래 살아남아 악당이 되든가”이다.
※ 살인을 않겠다는 배트맨의 원칙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일까. 그럼에도 원칙을 고수하려는 그 자세는 인정할만하다. 이것도 원칙이 실종된 사회에 대한 경종인가?
※ 이번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앤 해서웨이가 분한 캣 우먼이 아닐까.
※ 존 블레이크의 중간 이름이 ‘로빈’이라는 것이 일종의 서비스라 할지라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영화 후반부 경찰 대 악당들의 집단 난투극 장면을 자세히 보면, 대충 주먹을 날리는 경찰이나 악당들이 보인다. 아무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라 하더라도 모든 걸 통제할 수는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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