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에서 서로 뒤엉켜 구르는 개싸움... ★★★
※ 영화의 주요한 설정과 결말에 대한 묘사가 담겨져 있습니다.
<범죄의 재구성>으로 화려한 데뷔, <타짜>로 대중과 평단을 모두 사로잡았다가 <전우치>로 의구심을 자아냈던 최동훈 감독이 다시금 범죄 영화로 돌아왔다. 소위 <범죄의 재구성> <타짜>에 이은 범죄 3부작 <도둑들>. 공개된 스토리 라인만 보면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일레븐>이 연상되지만, 그런 류의 깔끔한 케이퍼 무비가 아니라 개떼들이 뻘밭에서 뒹굴며 싸우는 뒤통수 영화(?)에 더 가깝다. 긍정적 의미이든 부정적 의미이든 ‘한국형 케이퍼 무비’
한국 도둑 뽀빠이(이정재), 예니콜(전지현), 씹던껌(김해숙), 잠파노(김수현)과 가석방으로 나온 팹시(김혜수)는 마카오 박(김윤석)의 제안에 따라 중국 도둑 첸(임달화), 앤드류(오달수), 줄리(이심결), 조니(증국상)와 함께 카지노에 숨겨진 홍콩 범죄조직의 두목 웨이홍이 소유한 희대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기로 한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과거에 얽힌 오해와 구원(舊怨)으로 힘을 모아 보석을 훔쳐낼 생각보다는 서로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각자 치밀한 작전을 세운다.
사실, 화려한 캐스팅, 도둑들만 10명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조금 산만할 거라 예상이 됐고, 실제 산만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인물 정리라는 점에서만 봤을 때는, 생각보다 깔끔한 편이긴 하다. 물론, 대체 이런 인물구성이 왜 필요한 것인지, 다이아몬드를 훔치기에 꼭 필요한 인물과 딱히 필요 없는 인물들이 뒤섞여 있고,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게 비중 없이 사라져 버리는 인물들도 있다. 10명의 도둑이 등장하는 영화를 끌고 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 치부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인물의 등장과 퇴장에 별다른 고심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결론적으로 <도둑들>은 상당히 재미가 있는 영화인 건 사실이다. 하나의 큰 팀으로 묶여 있지만, 알고 보면 대부분 개별적으로 움직이며(주로 한국 도둑) 어떻게 하면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고, 어떻게 하면 결실을 독차지 할까 음모를 꾸미는 기본적인 설정과 구성의 짜임새도 좋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긴장이 영화 전반부를 끌고 나가는 동력이 된다. 편의적 플래시백의 활용과 그로 인해 너무 쉽게 드러나는 과거사가 좀 거슬리긴 해도 재미를 해칠 정도는 아니다.
다른 영화, 주로 헐리웃 블록버스터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이해해줄만하다. 그들이 엄청난 예산으로 828m의 세계 최고층 빌딩에서 매달려 액션을 펼칠 때, 우리는 떨어져도 다치지 않을 거 같은 아담한(?) 건물에서 등산줄 액션을 펼치지만, 주는 쾌감은 건물 규모 정도로 차이나지는 않는다. 주로 오달수와 전지현이 책임지는 코미디도 괜찮은 편이다.
처음 부분에 <도둑들>을 한국형 케이퍼 무비라 지칭했지만, 전반부 그러니깐 마카오에서 보석을 훔쳐낼 때까지의 분위기는 한국 영화라기보다 묘하게 과거 유행했던 홍콩 액션 영화 느낌이 진득이 묻어난다. 뭔가 모를 그 비장미. 만약 임달화와 김해숙의 러브 스토리가 한국 액션영화에서였다면 무지 튀었겠지만, 홍콩 영화의 분위기에서 묻혀가는 느낌이다.
액션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전반부 카지노 액션과 후반부 아파트 액션. 액션 그 자체의 쾌감은 좋은 편이지만, 이상하게 긴장을 고조시키지 못한다. 왜일까? 특히 가장 최고조의 긴장과 재미를 안겨주어야 할 다이아몬드 탈취 과정이 여러 모로 어설프고 결정적 재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만약 실패하는 작전이기 때문에 일부러 재미없게 연출, 편집을 했다고 한다면, 이건 그 장면이 담고 있는 의미와 줘야 할 재미를 구분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부산 아파트 총격장면도 상당히 공을 들은 흔적이 역력하고 실감나는 장면이 주는 재미가 크지만, 한편으로 <전우치>에서의 단점이 그대로 복제되어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인물들의 동선이 애매하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대체 홍콩 갱들과 김윤석 말고는 다 어디로 사라져 한 동안 안 보이는 것일까? 심지어 아파트 실외기가 떨어지고, 유리창과 간판이 박살나는 상황에서 왜 어떤 주민도 창문을 열고 확인하지 않는 것일까? 거기다 들어가는 아파트마다 우연인지 텅 빈 아파트들이고.
물론 나에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불만은 취향을 탈 요소이긴 하지만 결국 이 영화가 범죄 영화의 외피를 둘러쓴 사랑영화라는 점이다. 특히 과묵하던 김윤석의 오글거리는 대사는 끔찍했다. 바로 이런 게 한국형 범죄영화라면 제발 이런 것에선 좀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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