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무시무시한 영화라니.. ★★★★☆
※ 이 글에 별다른 스포일은 없지만, 이 영화를 볼 분이시라면 가급적 영화에 대해 어떤 정보도 입력하지 않고 백지 상태에서 보는 걸 권합니다.
영화 도입부부터 심상치가 않다.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 장면은 즐거운 축제의 장이 아니라 마치 좀비에 의해 갈가리 찢겨진 육신과 튀어나온 내장, 그리고 흥건한 피로 얼룩진 끔찍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피의 카니발. 에바(틸다 스윈튼)의 입장에서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 그로 인한 결혼, 그리고 끔찍한 비극으로 가는 여정의 첫 걸음인 스페인 토마토 축제가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현재 시점과 과거 케빈(이즈라 밀러)의 성장을 이어 붙이며, 마치 퍼즐게임을 하듯 맞춰 나간다. 사이코패스로 자란 아들 케빈과 애정 표현에 서툰 에바의 관계는 살얼음을 걷듯 또는 날카로운 칼로 후비듯 긴장감을 불어 넣고 다가올 비극의 예감에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싶은 순간들을 영화는 제공한다. 그러니깐, <케빈에 대하여>는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섭고 서늘한 냉기를 뿜어낸다.
<케빈에 대하여>는 기존 모성에 대한 신화를 거부함으로서 서늘함을 안겨준다. 누군가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우리는 대게 모성 결핍을 떠올리거나 파괴된 가정을 연상하게 된다. 반대로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에 의해 착해진 ‘돌아온 탕아들’의 전설들. <케빈에 대하여>는 악마나 괴물 탄생의 원인을 모호하게 만든다. 결핍 가정도 아니고, 어머니의 노력으로도 악마는 순화되지 않으며, 분노는 진정되지 않는다.
<케빈에 대하여>는 잔인한 장면 하나 없이도 그 어느 영화보다 잔인하고 섬뜩한 영화가 나올 수 있음을 입증한다. 묘한 이미지들의 클로즈업. 말라비틀어진 어머니의 발목, 기니피그가 사라진 텅 빈 우리, 뭔가 들어 있는 것 같은 수챗구멍, 입으로 뜯긴 손톱들의 잔해들과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어둡고 차가운 음악들.
무엇보다 기막힌 건, 서늘함과 비극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예술영화 감독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틸다 스윈튼의 공허한 연기는 명불허전이고, 아직 10대라는 이즈라 밀러의 소름끼치는 눈빛은 새로운 배우의 탄생을 목도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케빈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야 될 것만 같은 강박관념이 아로새겨진다는 것이다.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
※ 영화가 끝나는 순간, 이렇게까지 조용한 영화는 별로 경험하지 못한 것 같다. 정말 쥐죽은 듯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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