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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의 기본적인 한계... 무서운 이야기
ldk209 2012-08-01 오후 5:13:54 559   [0]

 

옴니버스의 기본적인 한계... ★★★

 

연쇄살인마(유연석)에게 납치당한 여고생 지원(김지원)이 살인마의 요청에 따라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네 가지 무서운 얘기를 해준다는 기본적인 골격이 <무서운 이야기>의 컨셉이다. 셰헤라자드 이야기를 가지고 와 활용한 프롤로그, 브릿지, 에필로드의 표현은 맹숭맹숭하지만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여고생이 해주는 네 가지 무서운 이야기라는 기본 컨셉과 각각의 에피소드는 별로 연결되지 않으며, 전체적인 조화와 구성도 상당히 아쉽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이를 테면, 에피소드만 떼어 놓고 보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 환상장면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진행 중인 이야기가 환상으로 종결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방식은 많은 호러영화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장르 규칙 중 하나지만, 옴니버스 영화의 각 에피소드가 동일한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면 이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제작 과정에서 사전 조율이 이루어져야 했을 부분이다. 또한 이와 연관되어 깜짝쇼가 너무 빈번하게 등장하며, 시종일관 시도되는 과도한 음향 효과도 거슬린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임에도 노골적인 표현도 자제되어 있는데, 어쨌거나 이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제작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 정범식 감독의 <해와 달>

 

동서양에 모두 존재하는 전래동화의 모티브인 엄마를 기다리는 남매에 관한 이야기다. 엄마 대신 남매를 찾아오는 건 늑대일 수도 있고, 호랑이일 수도 있다. 영화에선 택배기사로 위장한 살인마다. 상당히 넓은 현대식 아파트가 얼마나 끔찍한 호러의 장소로 변할 수 있는지, 그리고 공포의 근원엔 근거 없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음을 잘 말해준다.

 

<기담>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정서에 호소하는 면도 존재하는 데, 무서운 얼굴을 한 살인마와 함께 뭔가 억울한 사연이 있는 듯한 머리 긴 처녀 귀신도 집안을 배회한다. 집이라는 가장 안전한 공간에서 아이들이 겪는 공포, 두려움이 영화 중후반부까지 긴장감을 잘 유지해 나간다. 문제는 종결부에 있다. 감독은 갑자기 튀어나온 침착한 내레이션과 함께 현실의 진정한 공포라며 전혀 다른 것 같은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런데 과연 두 얘기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고, 특히 사회적 메시지를 강요하는 듯한 태도가 너무 노골적이라 동의하기 힘들다. 공포영화에서의 사회적 메시지는 노골적이지 않아야 좋은 거 아닌가.

 

2. 임대웅 감독의 <공포 비행기>

 

한국에서 보기 드물었던 슬래셔 무비 <스승의 은혜>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었던 임대웅 감독의 <공포 비행기>는 연쇄 살인마를 태운 특별기에서 벌어지는 공포를 다루고 있다. 많은 공포영화들이 폐쇄된 공간에서의 상황을 다루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인 만큼 기본적인 설정은 무리가 없다. 무시무시하고 거기에 머리까지 좋은 연쇄살인마가 자신을 감시하는 경찰과 다른 승무원들을 죽인 후 유일하게 남은 여 승무원이 살인마와 대적해야 한다.

 

폐쇄 공간을 다루는 공포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구조와 상황을 이용한 다양한 아이디어에 있다. 그게 없다면 굳이 밀실을 고를 이유가 없다. <스크림>에서 웨스 크레이븐이 보여준 장기 중 하나는 집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살인마와의 숨 막히면서도 다양한 추격전이었다. 그런데 <공포 비행기>에는 별다른, 아니 아이디어가 전혀 없이, 그 공백을 손쉬운 유령을 소환해 메워 버린다. 아, 이런 밀실 슬래셔 무비에 유령이라니. 게다가 미성년자 관람불가 호러영화임에도 <스승의 은혜>에서 보여준 끔찍한 고어 장면 하나 보여주지 않는다.

 

3. 홍지영 감독의 <콩쥐 팥쥐>

 

한국의 전래 동화 <콩쥐 팥쥐>의 이복 자매 모티브에다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 모티브가 결합된 에피소드. 모태 미녀 공지는 재력가 민회장의 여섯 번째 부인이 되려 하지만, 계모는 공지 대신 자신의 딸 박지를 민회장의 부인으로 앉히려 한다. 전래 동화의 착한 콩쥐와는 다르게 영화 속 공지는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지만, 결국 공지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민회장은 박지를 자신의 상대로 맞아들인다.

 

<무서운 이야기>의 각 에피소드가 살인마에 사로잡힌 여고생이 살기 위해 해주는 무서운 이야기라는 점에서만 보자면, <콩쥐 팥쥐>가 제일 잘 어울리는 스토리라고는 보인다. 이 에피소드야 말로 친구들과 여행가서 저녁에 둘러 앉아 불을 끄고 얘기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괴담 아니든가. 그런데 이 괴담을 그냥 영상으로 구현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말 그대로 괴상한 이야기에 머물러 버린다. 게다가 너무 뻔하기도 하고. 이런 점에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끔찍한 요법을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쓰리 몬스터> 프루트 챈 감독의 <탐욕>의 설정을 좀 빌어 왔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 영화에서 만두를 씹는 소리(!)야 말로 진정 끔찍한 공포였으니깐.

 

4. 곡사의 <앰뷸런스>

 

<앰뷸런스>는 한국 공포영화에서 보기 드문 언데드 호러물이다. 좀비 바이러스 감염지역을 벗어나기 위해 달려가는 앰뷸런스 안에 무심코 태운 엄마와 소녀. 군의관은 소녀의 감염 상태를 의심해 앰뷸런스에서 버리려 하고, 간호사는 아직 감염을 의심할 단계가 아니라며 만류한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엄마는 딸의 치료를 위해 뭐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고.

 

<앰뷸런스>는 좁고 위부의 위험이 가득한 앰뷸런스 안에서 인간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논쟁이 흥미롭고 긴장감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물론 나는 간호사보다는 군의관의 의견을 지지했다. 왜냐면 장르물에서 동정이란 곧 감염의 확산과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동정도 장르에선 금물이다. 물론, 실제 현실에서라면 인간의 목숨을 예단만으로 쉽게 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앰뷸런스>는 무엇보다 질주하는 쾌감이 느껴지는 영화다. 시종일관 앰뷸런스는 달리고, 더 이상 시스템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아니 시스템에서 제외된 존재들이 짓이겨지고 밝히고 깨져 나간다.

 

그런데 장르의 규칙을 가장 잘 따르고 있다는 얘기는 뒤집어 말하면 신선도에서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시도지만, 그게 곧 새로움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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