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의 도둑, 혹은 보석들
잠파노(김수현)/가넷
가넷은 투명하면서도 붉은 빛깔을 띄는 보석으로 작고 붉은 돌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잘 여문 석류알 같다고 해서 석류석으로도 불린다. 가넷은 진실과 헌신을 뜻하는 보석으로 극중 자신이 좋아하는예니콜(전지현)에게 헌신적으로 대해주는 모습이 꿋꿋한 잠파노와 사뭇 닮았다. 가넷은 왕관 제작에도 많이 쓰였다고 하는데 <해를 품은 달>에서 왕 역할로 크게 주목받았던 김수현에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보석은 없을 듯.
뽀빠이(이정재)/라피스 라줄리
라피스 라줄리는 청금석이라고도 하며 터키석과 함께 12월의 탄생석이다. 특유의 푸른빛이 남성다움과 강렬함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수컷 냄새 물씬 나는 '뽀빠이'와 매치가 잘 되는 보석이다. 성공과 번영을 의미하는 청금석처럼 뽀빠이는 도둑들 중 그 누구보다도 목표의식이 뚜렷하고 자신의 영달에 집중하는 면모를 보인다. 이를 위해서라면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는 것 역시 매력이라면 매력. 그나저나 콧수염은 왜 붙이고 다니는 거야? 날씨도 더운데.
첸(임달화)/페리도트
페리도트는 황록색의 투명하고 아름다운 보석으로 감람석이라고도 하며 부부의 화합과 친구와의 우정을 뜻하는 탄생석으로 알려져 있다. 엽문 시리즈 등으로 잘 알려진 임달화 아저씨는 <도둑들>에서 씹던껌(김해숙)과 부부 행세를 하며 미끼를 유인하는 첸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쳐보인다. 아니 근데 이 커플, 이렇게 잘 어울려도 되는건지. 그 바쁜 와중에도 폭풍 로맨스를 보여주며 중년의 매력을 한껏 뽐내주신다. 임달화 아저씨가 나오는 한컷한컷이 그냥 한편의 누아르...돋보이진 않지만 영화의 화합을 가장 잘 이끌어낸 배우.
줄리(이심결)/에메랄드
에메랄드는 자연과 청순,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녹빛의 보석이다. 큰 눈과 청초한 느낌이 살아있는 이심결과 무척 닮았다. 성실한 이미지답게 영화에서도 보스 웨이홍을 잡기 위해 경찰 신분을 숨기고 도둑으로 위장해 마카오박에게 접근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캐릭터. 스파이라는 신분은 항상 범죄영화에서 결정적인 키를 쥐고 극에 긴장감을 더하는데 더할나위 없이 좋은 역할이지만 다소 밋밋하게 처리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에메랄드처럼 예쁘므로 패스.
앤드류(오달수)/호박
그냥 못생겼으니까...
는 진담이고 호박은 나무 송진의 화석으로 경도가 약해 조금만 잘 못 해도 금방 흠집이 나므로 취급시 주의가 요구되는 보석이다. 앤드류 역시 알아서 잘 하는 다른 도둑들과 달리 가장 프로페셔널함이 떨어지는 모습을 자주 보이며 여러모로 신경을 쓰게 만든다. 그냥 웃기려고 만든 캐릭터.
조니(증국상)/아쿠아마린
아쿠아마린은 고귀함과 침착, 그리고 젊음을 상징하는 보석으로 3월의 탄생석이기도 하다. 증국상은 10명의 배우 중 분량이 가장 적지만 중국 배우들 중 가장 젊은피(76년생)로서 극에 안정감과 활력을 불어넣는다.
씹던껌(김해숙)/오팔
오팔은 10월의 탄생석으로 희망과 순결, 그리고 여자의 행복을 의미한다. 씹던껌은 평생을 도둑으로 굴곡진 인생을 살았지만 속으론 평범한 한 여자로서의 인생을 소구한다. 예니콜이 결혼할 때 자신이 어머니 노릇을 해주겠다한 점이나 몇년동안 못해(?)봤다며 부끄러워하는 점 등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생의 마지막 순간, 여자로서의 행복을 얻을 수 있었던 씹던껌의 얼굴은 그 누구보다 빛나보였다.
예니콜(전지현)/루비
빨간 루비처럼 그녀는/내게 자신있는 말투로/너를 나보다 사랑한다 말했어
라는 핑클의 노래 가사처럼 루비는 정열과 사랑, 아름다움을 뜻하며 예로부터 태양을 닮은 돌이라 해서 귀하게 여겨진 보석이다. 꾸준한 작품 활동에도 불구, <엽기적인 그녀> 이후 이렇다할 임팩트를 내지 못하고 'cf용'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던 배우 전지현은 젊고 섹시한 도둑 '예니콜'역을 맡아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반짝반짝 빛난다. 몸을 던지다시피 해서 찍었다는 고강도 와이어 신도 멋지지만 남자들을 쥐락펴락 하는 요망한 눈빛연기는 보석을 절로 바치게 하고 싶을만큼 매력적이다. 염정아-김혜수로 이어지는 최동훈표 범죄영화의 팜므파탈 계보를 이을 마지막 한수.
마카오박(김윤석)/사파이어
사파이어는 청명한 가을하늘을 연상케 하는 푸른빛이 아름다운 보석으로 정직과 진실을 뜻하며 9월의 탄생석이기도 하다. 정직과 진실이라는 덕목은 도둑에겐 어울리진 않지만 도둑이 아닌 남자로서의 마카오박은 누구보다 진실했다. 옛애인 팹시(김혜수)와 오해로 인해 관계가 틀어졌지만 그녀를 지키기 위해 나쁜남자 역을 혼자서 다 감수하는 츤데...가 아니라 진짜 멋진 사나이. 특히 부산을 배경으로 보여준 와이어 액션 신은 탐크루즈 부럽지 않았다! 어둡고 푸르지만 가장 확실하게 빛을 낼 줄 아는 배우.
팹시(김혜수)/다이아몬드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영원과 불멸의 상징. 보석의 왕. 김혜수는 금고털이 팹시 역을 맡아 여배우로서 여전한 존재감과 광채를 드러낸다. <타짜>의 정마담과 캐릭터가 다소간 겹치긴 하지만 이번엔 독기를 빼고 지고지순한 면모를 불어넣음으로써 좀 더 절제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굳이 팹시 역할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에서 김혜수만큼 오랫동안 빛을 유지하고 있는 여배우가 있을까. 앞으로도 다이아몬드처럼 환한 웃음과 빛나는 연기력 계속해서 보여주시길.
블링블링 우리는 보석 도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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