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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부재, 상상력 빈곤... 토탈 리콜
ldk209 2012-08-16 오후 4:33:17 7560   [2]

 

아이디어 부재, 상상력 빈곤... ★★☆

 

※ 영화의 주요한 설정이나 결말에 대한 묘사가 담겨 있습니다.

 

헐리웃의 수많은 리메이크 시도에 대해 별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 아무래도 기술적 한계 때문에 표현하지 못했던 걸 더 정밀하게 표현할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난만큼 새로운 이야기를 첨가할 수도 있고,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럼에도 <토탈 리콜>의 리메이크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의아했고, 의문이 들었다. 대체 왜? 개인적으로는 <토탈 리콜>이야말로 가장 좋아하는, 아니 거의 숭배에 가까운 지지를 보냈던 SF영화였고, 그래서 폴 버호벤이 창조한 그 완결적 세계와 기괴하기까지 한 상상력, 그 잔혹한 표현이 침해되기를 원치 않았다. 더군다나 감독이 렌 와이즈먼이라니. 차라리 데이빗 크로넨버그라면.

 

어쩌면 2012년판 <토탈 리콜>은 원작에서 ‘기억을 판다’는 기본 설정만 가져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저버린 채 폴 버호벤과 거의 동일한 이야기의 리메이크 버전으로 선을 보였다. 좋은 예로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을 들 수 있다. 많은 <혹성탈출> 리메이크 작품들이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던 게 아니다. 유인원이 인류를 대신해 지구의 지배자가 된다는 기본 설정과 함께 우주여행을 떠나 시간여행을 한다는 부가 설정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설정을 고수하는 한 처음 <혹성탈출>이 주었던 그 충격과 경이를 넘어선다는 건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시도였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유인원이 지구의 지배자가 된다는 설정만 남겨두고 다른 것은 모두 버렸으며, 거기에 <28일후> <12몽키즈> 등의 바이러스 설정을 가지고와 과감하게 접합했으며 새로운 마스터피스가 되었다.

 

물론 렌 와이즈먼도 원작과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위해 여기저기 손을 대기도 하고 일부 설정을 바꾸기도 했다. 원작이 화성으로 날아갔다면 새로운 토탈 리콜은 지구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샤론 스톤에 비해 케이트 베킨세일의 비중이 확연하게 커졌다. 그러나 몇 가지 변화된 설정에도 불구하고 ‘기억을 판다’와 ‘이중간첩’ 등의 설정을 고수하는 한 원작이나 리메이크나 결국 대동소이한 이야기라고 느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대체 왜?’라는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2012년판 <토탈 리콜>의 이야기는 이렇다.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지에서 영국연합으로 중력 엘리베이터 ‘폴’을 이용해 출퇴근하며 일을 하는 노동자 퀘이드(콜린 파렐)는 아름다운 의문의 여인 멜리나(제시카 비엘)와 함께 쫓기는 악몽에 시달린다.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퀘이드는 가상의 기억을 심어주는 ‘리콜’사에 찾아가 기억을 심는 과정에 군대의 습격을 받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전투 능력을 발휘 그곳에서 탈출한다. 이유도 모른 채 쫓기게 된 퀘이드는 아내 로리(케이트 베킨세일)마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자, 추격을 피해 달아나기 시작한다.

 

렌 와이즈먼이 2012년판 <토탈 리콜>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설정이 바로 중력 엘리베이터 폴이다. 미래 지구는 화학전으로 인해 대부분이 오염되어 버려 영국연합과 영국연합의 지배를 받는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지라는 두 세계만이 존재한다. 영국연합엔 지배층이 살고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노동계급이 살아가는 데, 노동계급은 폴을 이용해 영국연합으로 출퇴근을 한다는 것이다. 바로 폴은 영화의 주요한 액션이 펼쳐지는 장소이자, 식민지에 대한 탄압을 상징하는 장치라고 영화는 설명한다. 사실 여기에서부터 영화는 엇나가기 시작한다. 지구의 핵을 관통하는 ‘폴’이라는 장치가 대단히 매혹적임에도 불구하고 이것 자체만으로도 영화는 많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자유낙하로 지구의 핵을 관통해 반대 지점까지 17분 만에 도착하는 엘리베이터가 가능한지의 과학적 입증은 둘째 치더라도 이 정도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로봇군단까지 보유한 영국연합이 폴이 아니고선 식민지에 갈 수 없다고 보는 것 자체가 좀 어처구니없다.

 

또한 지구를 17분 만에 관통하는 엘리베이터라면 그 속도가 어마어마할 텐데, 달리는 아니 수직 낙하하는 장치의 외부로 탈출하려는 시도 자체가 가당키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낙하하는 폴 위에서 액션이라니. 게다가 폴의 제거만으로 영국연합과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지와의 기존 관계가 해체되고 새로운 관계가 열렸다는 결말은 이게 대체 뭔가 싶은 허망함을 안겨준다. 이토록 쉽게 파괴될 폴이라면 영화 속에서 저항군들의 공격은 폴에 집중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가장 의아스러운 건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폴의 파괴가 결정적인 승부처라는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깐 문제는 폴에 대한 여러 가지 설정을 영화적 장치로 이해해줄 여지는 있지만, 영화 내에서조차 그 법칙을 편의대로 해석해버린다는 점이다.

 

그보다 <토탈 리콜>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SF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부재하거나 빈곤하다는 점이다. 한자가 보이는 식민지 풍경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빌려온 것이고, 공중을 떠다니는 차량 액션은 기술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제5원소>와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넘어서지 못한다. 영화의 여기저기엔 1990년 폴 버호벤 원작에 대한 오마주 또는 거기에서 가져온 장면들이 보인다. 물론 그대로 따라한 건 아니고 시간의 변화에 따라 더 첨단화된 장치들이 동원된다. 그런데 이런 장면들에서조차 1990년 작품이 훨씬 더 창의적이라고 느껴진다. 이건 실로 심각한 문제다.

 

폴 버호벤의 원작을 안 보고, 아니 모르고 이 영화를 본다면 그나마 재밌으려나? 글쌔. 내가 보기엔 원작의 존재를 떠나 이 영화 자체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된다. 굳이 리메이크가 필요 없었던 영화를 리메이크 했는데, 왜 리메이크를 했는지 전혀 답을 주지 않는 영화. 바로 2012년판 <토탈 리콜>이다.

 

※ 섹시와 표독은 샤론 스톤 우세, 액션과 극중 비중은 케이트 베킨세일 우세. 극중 비중은 아무래도 2명이 했던 역할을 한 명이 했으므로 당연히 케이트 베킨세일이 높겠지만, 감독인 남편이 아내를 멋지게 그려내기 위해 노력했던 점도 기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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