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 원작 만화의 딜레마.. ★★★
영화의 배경은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낡은 강산맨션. 102호에 거주하는 연쇄살인범 승혁(김성균)은 202호 소녀(김새론)를 살해하는 등 10일 간격으로 누군가를 납치, 자신의 아파트 지하에서 살해한 후 큰 가방에 담아 버리는 만행을 되풀이한다. 불안에 떠는 강산맨션 주민들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르지만, 범행일에 시켜먹는 피자, 유난히 많이 나오는 수도세, 범행에 이용된 가방 등을 이유로 승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강풀의 원작만화를 안 보고 영화를 본 입장에서 <이웃사람>은 캐릭터의 활력이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지 않으며, 대중 상업영화로서의 기본적인 재미를 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어디서 보니, 원작만화는 단절되어 소통이 없는 현대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런 이웃들이 살인마를 저지하는 과정을 통해 연대라는 정신을 복원하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라 하는 데, 만약 원작만화의 정신이 이렇다고 한다면 분명 영화는 원작만화를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왜냐면 그런 점을 영화에서 제대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영화에서 느낀 건, 죄책감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씻김굿에 가까웠다. 물론 그것 역시 잘 구현해냈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아무튼, 위에서 말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런 장점 때문에 <이웃사람>은 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강풀의 많은 만화들이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아파트>처럼 기본 설정만 가져와 전체를 새롭게 가공한 작품이 있는 반면에 <이웃사람>은 만화의 장면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을 만큼, 새로운 해석보다는 원작과의 동일성을 추구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강풀 만화의 가장 큰 형식적 특징이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다중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점일 것이다. 거의 예외 없이 강풀 만화엔 다수의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각자의 이야기가 존재하며, 하나의 사건을 다수의 시각에서 바라보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만화는 기본적으로 단절된 분할 화면을 통해 정지된 상태로 넘어가기 때문에, 그리고 부족한 설명을 빈 공간에 내레이션으로 채워 넣기 때문에 이런 특징들이 문제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실과는 괴리되는 설정이라든가 앞뒤가 안 맞는 전개도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이라 이해해 줄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영화라는 매체로 (그대로) 넘어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으로 보면 <이웃사람>의 구조는 너무 허술하다.
단적으로 아파트 황 경비원(김기천)이 살해되는 과정을 보면, 왜 승혁은 교복을 그렇게 처리했을까?(시체와 같이 처리하는 게 가장 합당한 방식 아니었을까?) 그건 황 경비원이 발견하지 않았더라도 당연히 경찰에 의해 수사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처리 방식이었다. 그 외에도 아파트와 가까운 가방판매점, 그것도 한 곳에서만 계속 큰 가방을 구입해 스스로 의심을 자초하는 거라든지(경찰은 왜 피해자 인근 가방 판매점 등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일까?), 누구 말대로 승혁은 ‘자 잡아 볼 테면 잡아봐’라는 심정(?)으로 자신이 연쇄살인범임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마구잡이로 흩뿌리고 다닌다. 조심하는 모습을 조금도 보이지 않던 승혁이 막상 주민들이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귀찮다며 짜증을 낸다. 이 어처구니없는 반응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일까?
주민들의 반응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표 경비원(천호진)이야 자신의 과거 때문에 그렇다고 치지만, 다른 주민들은 그토록 이상한 상황을 보면서 왜 경찰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모두 단독으로만 행동하려는 것일까? 특히 딸이 살해된 송경희(김윤진)는 102호 남자 승혁이 바닥의 피를 닦는 것을 보았고, 부녀회장(장영남) 딸인 수연을 죽이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아마 딸의 실종 및 시체 확인 과정에서 알게 된 경찰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만화에선 별로 부각되지 않던 이런 문제들이 영화로 옮겨지면 구멍이 뚫린 것처럼 눈에 밟히는 것이다.
아주 뛰어나고 재밌는 만화를 가져다가 비슷한 인물을 캐스팅한 후, 장면 하나하나를 그대로 옮겨 영화로 만든다고 해도, 결코 뛰어나고 재밌는 영화가 나오지 않음은,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20세기 소년>이 이미 입증한 사실이다. 후발주자가 굳이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는 없는 길인 것이다.
※ 장면을 그대로 복사하듯 옮기는 것이 좋은 방식이 아니라면 <아파트>처럼 아예 설정만 남겨둔 채 새로 재구성하는 방식은 어떨까? <아파트>의 경우에서 봤듯이 이는 만화 팬덤의 분노를 사게 되고, 특히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 그 공격의 강도는 더욱 강해진다. 결국 문제는 만화라는 원작을 어떻게 가져오느냐의 방식이 아닌 것이다.
※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나쁜 짓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고 도망 다니다 나쁜 인간을 상대로 그 나쁜 짓을 범하면 죄의식에서 벗어나게 되는 걸까? 더군다나 아주 급박한 상황도 아니었고 이미 나쁜 놈이 제압된 상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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