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보단 얌전하지만 여전히 신정원표 영화.. ★★★
꾸준히 시골에 간 도시 사람들의 좌충우돌 모험담(?)을 그려왔던 신정원 감독이 이번엔 점쟁이들을 시골마을로 보냈다. 귀신 쫓는 점쟁이 박선생(김수로)은 큰돈을 벌기 위해 전국의 유명한 점쟁이들을 모아 의문의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울진으로 향한다. 버스에서 집단 접신을 경험하고 굿이 벌어지는 도중 혼령의 출몰로 혼비백산한 점쟁이들은 대부분 떠나고,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진 심인(곽도원), 공학박사 출신의 석현(이제훈), 과거를 보는 승희(김윤혜), 미래를 보는 월광(양경모), 그리고 사건 취재를 위해 동행한 찬영(강예원)이 박선생과 남아 악령의 존재를 추적해 나간다. 이들은 악령이 기자였던 찬영 아버지의 죽음과 일제 강점기 당시 난파된 보물선의 존재와 연관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점쟁이들>은 만약 사전 정보를 전혀 모른 채 영화를 봤다고 해도, 아마 잠깐만의 관람으로도 신정원의 영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이하면서도 독특한 신정원식 유머 감각이 살아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며, 거기에 만듦새조차 허술하다. 심지어 보는 관객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분명 NG 컷이거나 또는 컷한 이후에 카메라에 담긴 것 같은 장면들이 고스란히 사용되는 장면도 있다. 그런데 신정원의 영화는 그것마저도 의도적인 게 아닐까 하는 믿음(?)을 주며, 오히려 정교하고 정밀한 것보다 투박하고 서툴러 보이는 것이 바로 신정원의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신정원 영화에서의 묘한 말장난과 특정 상황에서의 묘한 어긋남이 주는 허허실실 유머는 당연하게도 취향을 크게 타는 특징들이다. 자주 얘기하다시피 비극은 취향을 별로 타지 않는다.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관객을 울리려고 작정하는 영화는 대체로 울리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코미디는 다르다. 아마 취향을 가장 많이 타는 장르가 코미디일 것이며, 특히 일반적(?)인 유머 감각이 아닌 영화는 더욱 그러하다. 고로 <시실리 2Km>나 <차우>를 보며 재미보다는 화가 치밀어 올랐던 사람이라면 <점쟁이들>의 관람은 일단 피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런데 <차우>는 한 마디로 한국영화에서 다시 등장하기 어려운, 극단으로 밀어붙인 영화였다. 무슨 얘기냐면 나름 거대한 자본이 투자된 대중영화에서 신정원식 유머가 극단으로 발휘된, 전혀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가 탄생됐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남의 돈 가지고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고 비난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정말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박수를 보낼 수도 있다. 헐리웃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나름 감독의 감각과 연출력을 믿고 블록버스터 영화의 연출을 맡겼더니 <슬리더>같은 노골적인 B급 무비를 내놔 모두를 당황시킨 사례들.
확실히 <점쟁이들>은 <차우>에 비해서는 얌전하다. 기괴하다고까지 표현됐던 <차우>의 유머는 상황으로 봤을 때 더 치고 나가도 좋을 <점쟁이들>에선 오히려 자제되고 있으며, 거의 정상적(!)인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수위를 보여주고 있다. 또는 반대로 <차우>에 비해 과장되고 억지스런 유머들. 거기에 아무리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신정원하고 거리가 멀다고는 해도 박사장과 석현의 관계라든가 악령의 감춰진 진실은 생뚱맞고 어색하고 뜬금없다. 이 모든 게 <차우>를 거치며 나름 대중성을 고려한 결과물인 것인가?
물론 수위가 좀 낮아졌다고는 해도 앞에서 얘기했듯이, <점쟁이들>은 잠깐만 봐도 신정원의 영화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자기만의 색깔이 배어 있다. 한국 대중영화 감독 중 이렇게 자기 색깔을 유지하고 있는 감독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보낼 일이다.
※ <점쟁이들>에서 신정원 유머에 가장 잘 녹아드는 배우는 강예원, 가장 겉도는 배우는 이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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