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1000만 관객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대박난 영화지만 나는 개봉한지 이틀밖에 안 된
따끈따끈한 광해를 봤다.
워낙 개봉 전부터 홍보가 많이 되어 있었고 이병헌이라는, 이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가 된
배우가 출연한 작품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의 첫 사극, 코믹 연기 도전이라는 수식어만으로
이미 관객들의 호기심이 극에 달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이병헌이라는 배우를 좋아하지 않는다. 멋있고 대단한 스타임은 인정하지만
많은 출연작을 봤지만 배우로서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 동안의 새로운 경험들 때문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노련해지기 때문인지
캐릭터의 맛을 제대로 살렸다. 거의 완벽하게 역할에 몰입했고 그것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내게 전해졌다.
1인 2역이고, 그 두 인물이 얼굴 말고는 닮은 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촬영을 하면서 혼란이 많았을 것 같은데 정말 잘 표현했다.
두려움에 떨면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려는 광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가장 넓게 바라보는 하선. 광해군을 평가하는 두 견해가 적절히 결합되어 공감이 많이 되었다.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이면의 모습들을 상상해서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 참 신기했다. 터무니 없는 소리 같지만 귀기울여 듣게 되는 이야기.
살아가기 막막한 지금의 사회와 비교하며 더 큰 공감을 이끌어 냈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가장 높은 곳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도 사실은 아무 힘도 없다는 점,
그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이들이 고통받는 다는 점이 깊이 와닿았다.
하선과 함께 극을 이끌어가는 허균 역할의 류승룡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영화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분위기를 오르락 내리락 마음대로 움직였다.
거기에 관객들은 덩달아 울고 웃으며 작품 속으로 빠져들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하나 아쉬운 점은 초,중반을 이끌어가는 과정에 비해서 결말에 너무 힘이 빠졌다는 것이다.
마라톤 선수가 처음부터 열심히 달리다가 결국 후반에 힘이 달려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것 처럼말이다. 뭔가 더 있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아주 약간 모자랐다.
그래도 오랫만에 유쾌하고 진지한 영화를 만나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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