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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안에 숨겨둔 절절한 멜로 알리바이. 용의자X
jksoulfilm 2012-10-18 오후 11:38:05 905   [0]

 

★★★☆ 미스터리 안에 숨겨둔 절절한 멜로 알리바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을 영화화한 한국영화 [용의자 X]는 ‘감성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내세우고 있다. 초반 급하게 내달리 듯 사건을 터뜨려버리는 영화는 남은 시간에 ‘치밀한 알리바이를 설계하는 자’와 ‘이를 풀어가는 자’의 숨 막히는 두뇌싸움을 전개할 것처럼 예고한다. 하지만 중반 이후 미스터리에 대한 예고는 간과하고 있던 ‘감성’이 대신한다. 그렇다. 영화는 미스터리에서 절절한 멜로로 장르 변신을 시도한다. 갑작스럽지만 관객은 미스터리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포기하는 관용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중반 이후 확실히 느슨해진 흐름을 메우는 건 미스터리가 아닌 감성이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감성멜로’가 아닌 ‘감성 미스터리’라고 장르 타이틀을 붙인 [용의자 X]. 감성멜로가 미스터리보다 메인요리임을 앞서 드러낸 것이 오히려 이 영화의 가장 치밀한 알리바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늘 음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천재 수학자 석고는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에 이사 온 화선(이요원)이 우발적으로 전남편을 살해한 것을 알게 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녀를 찾아가 자신을 믿으면 범죄로부터 지켜주겠다 약속한다. 화선이 석고의 제안을 수락하자마자, 평소 화선을 짝사랑 해왔던 석고는 화선을 위해 알리바이를 계획한다.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끊임없이 화선을 용의자로 지목하는 석고의 친구이자 담당형사 민범. 그의 등장으로 석고의 계획에는 변수가 발생했지만 치밀한 알리바이는 도통 풀리지 않는다.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든 자,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자. 두 남자의 두뇌싸움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화선을 향한 석고의 짝사랑은 어떤 결말을 맺을 것인가?

[용의자 X]는 전형적인 미스터리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허탈할 수 있는 영화다. 앞서 밝힌 대로 감성코드를 더 내세우기 때문에 미스터리를 전개하는 과정에는 허술한 점이 곳곳에 보인다. 일단, 석고의 캐릭터를 말해주는 ‘수학’과 ‘천재’라는 설정이 사건에서 사라졌다. 풀 수 없는 치밀한 알리바이로 포장된 석고의 계획은 ‘천재’ 와 ‘수학’ 그 어떤 설정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 알리바이에 어떤 수학적 공식이 들었는지, 천재적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어디인지 명확히 집어낼 수 있는 부분이 없다.

그래서 유발되는 두 번째 문제. 바로 이야기의 흐름이다. 다른 단서는 찾지 않고 피해자가 살해된 날짜에만 집착하는 민범의 수사력도 설득력이 떨어지는데, 화선과 대질하는 장면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예상 가능한 단서들만 나열되니 미스터리의 긴장감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 느슨해진 긴장감에 슬며시 멜로가 자리한다. 하지만 이 때까진 가볍게 노크를 하는 수준일 뿐. 긴장감이 떨어진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을 정도가 못된다.

영화의 장르가 서서히 변형되어가면서 미스터리를 기대한 관객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끝까지 두뇌싸움을 하며 석고의 문제를 풀 것인가. 아니면 영화 속 또 다른 장르인 멜로에 빠져들 것인가. 감독은 관객을 후자의 선택으로 유도한다. 석고가 이 계획을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했는지 보다 그가 화선을 위해 어떻게까지 자신을 헌신할 수 있는 지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이 부분부터 온도가 뜨겁다. 특히 석고 역을 분한 류승범의 연기는 그야말로 발군이다. 그는 내내 음울하고 어두운 표정 안에 사랑에 설레는 쑥맥과 알리바이를 계획하는 사이코의 모습을 적절히 조율하며 보여주었는데 영화 마지막에는 참고 참았던 절절한 감성까지 뜨겁게 표출해낸다. ‘사랑은 쓰다’ 라고 툭 뱉는 석고의 대사가 영화가 끝난 후에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걸 보면 이 영화는 ‘류승범의 헌신’이라 해도 손색없을 듯하다.

데뷔작인 [오로라 공주]를 연출한 배우 출신의 방은진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 출신’이란 꼬리표를 떼어도 될 듯 싶다. 미스터리를 다루는 솜씨는 다소 부족했지만, 후반 감성 멜로를 관객에게 묵직하게 전달해내는 연출은 매끄러웠다. 무엇보다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현장을 지휘한 점이 연출자로서 가장 잘한 일로 비춰진다.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만큼 어려운 그 놈의 사랑. 도대체 누가 이 어려운 사랑이란 문제를 만들었단 말인가.

사랑의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석고’를 떠올리자. 그의 헌신의 반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헌신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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