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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로선 선방, 추리로선 미흡... 용의자X
ldk209 2012-11-02 오후 1:27:17 1210   [0]

 

멜로로선 선방, 추리로선 미흡... ★★★

 

일본 유명 추리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 소설 중 한편이자, 이미 2008년에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져(한국에선 2009년 개봉) 나름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원작을 왜 굳이 다시 만들어야 했을까? 영화를 봤지만, 답은 딱히 찾아지진 않는다.

 

일단 얘기는 이렇다. 천재 수학자이자 현재는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석고(류승범)는 옆집에 살고 있는 화선(이요원)이 폭력적인 전 남편을 우발적으로 죽이자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준다. 담당 형사 민범(조진웅)은 화선을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시작하지만, 화선의 알리바이는 깨지지 않는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석고와 민범은 고등학교 동창. 민범은 석고와 만나면서 석고가 이 사건에 개입되어 있음을 눈치 챈다.

 

비단 이 영화만이 아니라 일본 소설이나 영화를 원작으로 한 한국 리메이크 영화들의 특징은 원작에 비해 영화의 온도가 조금 올라간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하며, 은밀한 일본 영화에 비해 한국영화는 좀 더 열정적이고 폭발적이며, 외향적이다. 어느 게 더 낫다는 게 아니라 이건 그저 특징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열정적이고 뜨겁다는 얘기는 멜로 장르에서 빛을 발하기 쉽다는 얘기하고 연결된다. 빛을 발한다는 건 관객의 감정을 끌어내기에 유리하다는 정도. 반대로 차분하다는 특징은 아무래도 추리 장르에 더 어울리는 모양새다.

 

최근 <백야행> <화차> <용의자X> 등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한국 영화들이 대게 그러했다. 즉, 추리적 측면에서는 아쉬운 지점이 많은 반면, 등장인물의 정서에 공감하게 만들어 관객들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데는 일정정도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용의자X>가 원작과의 비교에서 보여준 가장 큰 변화는 주인공인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 교수를 아예 삭제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인물의 캐릭터는 누구에게로 갔는가? 천재 수학자와 친구라는 점에서 형사 민범이라고 봐야겠지만, 민범은 두뇌로 수사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감에 의지하는 행동파 형사로서 원작의 주인공은 그냥 하늘로 사라져버린 셈이다.

 

소설은 유카와 마나부 교수를 주인공으로 몇 편을 더 이어가지만, 영화를 시리즈로 만들 생각이 없다면 탐정 역할을 하는 주인공 캐릭터를 없애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천재 수학자와 천재 물리학자의 두뇌 싸움, 둘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긴장에 주목했던 원작(소설/영화)의 느낌이 180도 달라졌다는 점이다. 말이 좋아 추리장르 영화이지, 사실상 영화가 추리하는 건 하나도 없다. 천재 물리학자의 두뇌 회전의 결과로 얻어지던 단서들이 영화에서는 그저 우연히 획득될 뿐이다. 그러다보니 원작에서 큰 의미로 다가왔던 “아무도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 문제를 푸는 것, 무엇이 더 대단한가”라는 대사가 이 영화에선 실로 생뚱맞게 튀어나온다는 느낌이다.

 

다시 말하자면, 추리/미스테리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면 그럭저럭 선방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원작 소설과 영화를 접했던 사람들, 특히 원작에서 두 천재가 벌이는 두뇌싸움에 매료됐던 사람이라면 멜로에 방점을 둔 <용의자X>에 대해선 적잖이 실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 배우들의 연기는 괜찮은 편이다. 특히 그 동안 주로 발산하는 연기를 보여줬던 류승범은 안으로 수렴하는 연기에 있어서도 충분히 제 몫을 한다는 걸 입증했다. 조진웅의 경우엔 연기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민범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이 영화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 영화 티켓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 나만 해도 이 영화를 볼 당시에 지갑에 3장의 영화 티켓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지문의 문제. 어쨌거나 18세 이상 모든 국민의 지문을 보관하고 있는 국가의 수사기관에서 두 사람의 인적사항을 끝까지 다르게 파악하고 있는 게 가능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음악사용은 정말 최악이다. 안 그래도 두 주인공이 오열하고 있는 데, 음악마저 덩달아 오열해대니 오히려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 류승범 제자로 잠깐 나온 여고생을 보면서 두 가지 점에서 좀 놀랐다. 첫 번째는 도저히 고등학생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 두 번째는 어디에서 많이 본 얼굴이라는 점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음악의 신>에 출연했던 김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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