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주년에 걸맞는 007.. ★★★★
<007 스카이폴>은 1962년 <007 살인번호>로 시작된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50주년을 기념하듯 이에 걸맞게 전통이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기존 007 영화와는 선을 긋는(반면 <007 카지노 로얄>에서부터 이어오는) 새로운 007 영화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는 아주 전형적인 007 시리즈처럼 보인다. 영국 MI6 요원의 명단이 담긴 파일을 누군가 훔치려고 하고, 이를 회수하기 위해 육탄전을 벌이는 007. 그러나 같은 편 요원의 실수로 다리에서 떨어진 007은 사망한 것으로 처리된다. 한편, 요원의 명단을 입수한 정체불명의 악당은 MI6 본부를 테러하고 전 세계에서 암약 중인 요원들의 명단을 공개하면서 M을 압박해 들어온다. 어디선가 유유자적 휴가를 즐기던 본드는 사태가 악화되자 임무 수행을 위해 다시 MI6로 돌아와 악당을 잡기 위해 작전에 투입된다.
사실 난 예전 007 시리즈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편이다. 리얼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첩보 영화로서의 007, 어떠한 위험이 닥쳐도 능글맞으면서도 매끈하게 위기를 벗어나는 제임스 본드, 세계 정복과 같은 허황된 꿈을 좇는 악당, 현실에선 보기 힘든 첨단 무기 등. 그에 반해 <카지노 로얄>부터, 정확하게는 금발과 우직스러워 보이는 외모의 다니엘 크레이그가 새로운 007이 되면서, 007은 과거와 선을 긋기 시작했다. 바람기보다는 오히려 순정남에 가깝게 변했고, 액션 스타일도 기름기가 쪽 빠진 과격과 우직스러운 스타일로 변했다.
여전히 이에 대해 불만이 있는 팬들이 많은 걸 알고는 있지만, 그리고 나로서도 기름기 넘치는 본드와 순수한 오락영화로서의 007 시리즈에 애정이 많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첩보액션 장르에서 이만한 완성도의 영화가 나오기 힘들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변화된 007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된 것 같다. 이건 마치 <슈퍼맨>을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갔다가 <다크나이트>를 보게 된 느낌이랄까. 첩보영화로 치자면 심지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분위기까지 풍긴다.
<007 스카이폴>은 스타일면에서는 확연히 달라졌지만, 007의 전통을 되살리려 한다는 점에서 일단 50주년에 걸맞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그건 오랜 인물들의 복원이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이후 사라져버린 Q라든가 머니페니의 자연스러운 등장과 비중 있는 인물의 우아한 퇴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새로운 진용짜기는 이 작품보다는 오히려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더 높게 만들어 주었으며, 당분간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이 여전할 것임을, 그리고 이젠 그런 007을 기다리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전통을 복원하는 반면, <007 스카이폴>은 새롭다. Q가 등장했지만, 획기적인 첨단무기는 등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Q의 입으로 그런 기대를 비웃기까지 한다. 악당의 성격도 그러하다. 세계정복? 핵무기 탈취? <007 스카이폴>의 악당 실바(하비에르 바르뎀)는 온전히 개인적 복수심에 사로잡힌 악당이다. 사실 본드와 실바의 대결은 모성을 향한 인정투쟁에 가까워 보인다. 어쩌면 본드와 실바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 같기도 하다. 다른 걸 떠나, 007 영화에서 이런 걸 얘기하는 거 자체가 놀랍지 않은가.
※ 액션, 특히 마지막 액션이 좀 약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런 흐름의 영화에서라면 오히려 그런 전통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액션이 격에 맞는 거 아닌가 싶다.
※ 최초의 여성 M이었던 주디 덴치. 그 이름은 오래 빛나리라.
※ 이 영화의 오프닝은 아름답기로는 황홀하기가 그지없다.(표현력이 너무 짧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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