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투표해야 하는가... ★★★☆
1997년도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김대중 후보는 ‘준비된 대통령’이란 구호를 내세워 대한민국에서 첫 번째 정권교체라는 역사를 이룩한다. IMF라는 환난(?) 속에 치러진 선거였으니만큼 ‘준비된 대통령’이란 슬로건은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의 개인적인 이력과 더해지면서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그런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김대중은 예상 외로 빨리 IMF를 졸업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하는데, 조기에 IMF 체제를 벗어난 게 과연 한국에 긍정적이었는지에 대한 얘기는 일단 논외로 하자.
그로부터 10년 후 비슷한 슬로건이 다시 등장한다. 이번엔 ‘준비된 경제대통령’. 바로 영화 <MB의 추억>의 주인공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구호였다. 당시에도 MB는 전혀 준비되어있지 않은 대통령 후보이며, ‘경제대통령’도 거짓 신화에 기인한 슬로건이란 주장이 있었지만, ‘경제대통령’은 거의 광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그런 반응의 기저에 집요한 물적 탐욕이 내재해 있었다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만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약속한 것들만 지켜준다면, 조금 양심에 거리끼거나 조금 꺼림칙해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는 5년이 지났다. 영화 <MB의 추억>에서도 나오지만, MB가 약속한 것, 특히 경제와 관련한 그의 약속은 거의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지켜지지 않은 게 문제가 아니라, 더 큰 문제는 애당초 그는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도, 그럴 능력도 없다는 거였다. 국민들이 본 건 왜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지 사정을 설명하며 사과하는 태도가 아니라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오만과 약속을 지키라는 국민의 요구에 대한 강경 일변도의 자세였다.
소위 정산(!) 다큐멘터리 <MB의 추억>은 이러한 과정을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의 대부분은 그저 5년 전 MB의 어록을 모아 놓은 것뿐이다. 그가 지난 대선 유세에서 한 이야기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만 모아놔도 영화는 단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장르로 색깔을 달리해 나간다. 코미디처럼 웃기기도 하고, 스릴러처럼 스산해지기도 하며, 심지어 호러처럼 공포를 주기까지 한다. 그러다 끝내 가슴 아픈 비극의 드라마까지 이어진다.
영화는 처음 나치의 나팔수였던 오제프 괴벨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가 강제한 게 아니야.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지. 그리고 그들은 지금 그 대가를 치르는 거야” 이게 바로 위정자들이 국민을 바라보는 시각인 것이다. 이 영화가 주려는 메시지도 명확하다. 투표하라는 것이다. 특히 MB의 유세 중간 중간 편집되어 들어간 최근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시위 장면과 방송인 김제동이 대학생들을 향해 연설하는 장면은 투표에 대한 가장 강력하면서도 감동적인 선동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영화는 내 예상과는 달리 통계 등을 활용한 정교한 이성적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다분히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영화는 왜 MB의 경제정책이 실패로 돌아갔는지,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국제 경기의 하락이 원인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정책의 실패인지 차분히 검토하지 않는다. 아마도 김재환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대게는 반(反) MB 성향이라고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식의 전략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MB의 추억>은 비슷한 감정이나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며 배설의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영화, 그리고 올 12월에 열릴 대선에 필히 투표를, 그것도 MB 정부를 잇는 후보를 떨어트리려는 전략적 투표에 적극 나서게 해 줄 거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중도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기엔 조금은 버거워 보인다. 아쉬운 지점이다.
※ 사실, 이 영화의 포스터만 봐도 기분이 나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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