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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하고 가라앉히기를 여러 번... 남영동1985
jksoulfilm 2012-11-24 오전 12:31:57 12008   [2]

 

 

★★★★☆ 울컥하고 가라앉히기를 여러 번.

         가슴이 도통 식지 않는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여기가... 남영동입니까?” 밀실 안을 울리는 한 사내의 긴장가득한 낮은 목소리. 그리고 시작되는 무자비한 고문. 22일간의 故 민주통합당 김근태 상임고문의 잔혹한 고문기를 고작 106분안에 축약하기란 쉽지 않을 일이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든 정지영 감독은 관객 모두가 이 영화를 보며 가슴 아파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말 그대로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아팠다. 끊임없이 울컥하는 기분을 다독거리고 가라앉히기를 여러 번. 믿기 힘들 정도의 가슴을 저미는 역사의 이면을 발견하는 일은 그 자체가 고문 같은 경험이었다.

부 독재 치하. 반국가적 혁명은 폭력 혁명으로 몰아붙이고 민주화 운동가는 ‘빨갱이’로 몰아가던 공포로 가득한 시절, 1985년 9월 4일. 가족과 함께 목욕탕을 다녀온 김종태(박원상)는 경찰에 연행된다. 자주 경찰에 호출에 응했던 터라 별일 아닐 것이라고 여긴 김종태는 눈이 가려진채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온다. 소위 ‘공사’라 불리는 고문을 자행하던 이곳에는 박전무(명계남)를 중심으로 권력과 진급에 매달리는 고문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서 있고, 그들의 맞은편에는 김종태와 같이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비인간적인 고문을 받는 이들이 발가벗겨진 체 맥없이 대기상태다. 경찰 공안수사당국의 당위적 목표는 ‘빨갱이’ 축출. 국가의 방향에 대해 쓴 소리를 날리는 자는 영락없이 북한과 연계된 빨갱이로 내몰리고, 김종태 또한 누군가의 거짓 고백으로 인해 이곳에 끌려와 견디기 힘든 고문을 받는다. 온갖 고문을 당해도 수사의 진척이 없자 이두한(이경영)이라는 고문기술자가 그의 앞에 등장한다. 이두한의 등장으로 고문의 기술은 다양해지고, 강도는 더 세진다.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고통을 가하는 자.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자. 대한민국 현대사가 지금껏 입 닫고 있던 불편한 진실이 남영동에서 서서히 고개를 든다.

[남영동 1985]는 정치영화가 아니다. 감독, 배우, 스태프 모두가 진정성을 갖고 가슴으로 만든 역사영화이고 시대의 함성이다. 영화를 본 일부 관객은 ‘고문하는 장면’만 계속되어 불편하고 지루하다고도 한다. 하지만 영화가 故 김근태 고문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음을 밝혔고, 고문기가 책의 주된 내용이니 결과물의 대부분이 고문으로 채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 부분에 태클을 걸기에는 영화가 전하는 진심이 뜨겁다. [남영동 1985]를 단순히 즐길 요량으로 볼 목적이라면 다른 영화를 보거나 마음을 고쳐먹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점 분명히 알아두시길...

화는 거의 모든 장면이 꽉 막힌 대공분실에서 촬영되어 관객에게 답답함을 준다. 영화 시작과 함께 관객은 대공분실 일각에서 불편한 상황을 끊임없이 직시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고문의 강도가 세질수록 김종태에 대한 감정이입의 폭은 넓어진다. 반복되는 고문장면에 적응될 법도 한데 볼 때마다 슬프고 안타깝고 종국에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문장면 사이사이에는 고문하는 자들의 소소한 에피소드와 김종태의 꿈, 상상, 고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특히 사각앵글로 촬영되어 고문을 당한 김종태에게 그의 부인이 찾아와 위로하는 장면은 절절함의 온도가 매우 뜨겁다. “힘들지? 그들은 당신을 믿지 않아...” 인간 김종태가 스스로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순간. 거짓을 강요받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굽힐 수 없었던 뜨거운 가슴. 그를 버티게 하는 힘에는 그의 가족이 있었다.

문을 가하는 이들의 캐릭터 설정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이두한, 박전무를 제외한 나머지가 명확한 설정을 갖지 않은 점이 안타까웠다. 강과장(김의성)은 프로야구팬이라는 것, 이계장(김중기)은 여자친구 미스 리와 애정전선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백계장(서동수)은 잠이 많고 뚱뚱하다는 것. 이 정도가 조연의 캐릭터 설정 전부다. 최악은 김계장 역의 이천희로 그는 이도저도 아닌 악역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차라리 명확한 선악의 구분을 두었으면 어땠을까? 이두한, 박전무가 피도 눈물도 없는 나쁜 놈이라면 나머지 인물들은 생계 혹은 성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문을 자행해야 하는 악의 탈을 쓴 양이었다면. 이두한이 김종태의 목에 벨트를 묶고 끌고 다닐 때 안타까운 시선을 내비치는 조연에게 감정 이입이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실제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불행히도 현실은 영화보다 더 참혹하다. 말을 잇지 못하는 몇몇 분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만 뚝뚝 흘러내린다. 영화가 끝난 뒤 무거운 침묵. 그 사이로 배어나오는 슬픔과 분노의 울음소리. 2012년 끝자락에라도 가려진 역사의 이면을 알려준 [남영동 1985]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JK Soul's FILM Magazine

http://jksoulfil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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