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눈을 사로잡는 올해의 한국 액션!
대한민국에는 3대 미제사건이 있다. 제 1대 미제사건은 화성 연쇄살인사건.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시에서 10여명의 여성이 차례로 살해되었던 끔찍한 사건이었다. 제 2대 미제사건은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1991년 3월 대구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와룡산으로 갔던 5명의 소년이 실종되며 종적을 감췄던 희대의 미스터리 사건이었다. 마지막 미제사건은 이영호군 유괴살인사건. 1991년 1월 서울 압구정동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사라진 이영호군이 유괴된 채 질식사한 사건으로 유가족의 부모는 내내 가해자의 목소리로부터 고통스러운 나날을 겪어야했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모두는 1991년을 기준으로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현재까지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고, [살인의 추억], [아이들], [그놈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내가 살인범이다]의 출발은 바로 이 '공소시효'라는 제도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잡히지 않은 '범인'이다. 현실에서는 극악의 범죄를 저지르고도 공소시효가 정한 기간 안에 체포되지 않으면 죄에 대한 책임과 대가는 불문이 된다. 피해자를 잃은 가족은 평생을 아픔과 슬픔 속에 살아가야 함에도 오히려 범인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지는 셈이다. 영화는 바로 이 제도가 안고 있는 부조리함을 꼬집는다. “죄의 대가는 더디지만 반드시 찾아온다”, 얼마전 방영한 TV드라마에서 나왔던 이 대사가 [내가 살인범이다]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권선징악의 도덕적 상식이 통하지 않는 현실, 행여 과장되고 말도 안되는 영화적 상상에 그칠지언정 이 현실을 넋 놓고 가만히 좌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을 뒤흔들었던 연곡 연쇄살인 사건. 10명의 부녀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한 채 2005년 공소시효를 넘긴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담당 형사 최형구(정재영)는 범인을 잡지 못한 죄책감에 범인이 그어놓은 입가의 흉터를 지우지 않고 매일을 범인 잡을 생각만 하고 있다. 그리고 2년 후, 연곡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라고 우기는 이두석(박시후)이라는 자가 ‘내가 살인범이다’라는 자서전을 출간한다. 잘생긴 외모와 야성적 눈빛을 지닌 그는 미디어와 팬덤을 매개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책은 날개 돋친 듯이 팔린다. 최형구는 이두석을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마지막 사건을 빌미로 감옥에 집어넣으려 하고, 세상이 만들어 논 스타 작가 이두석은 번번이 형구로부터 벗어난다. 법으로는 잡을 수 없는 범인. 어떻게든 잡아넣고 싶은 형사. 수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우린 액션배우다]를 연출한 액션스쿨 출신의 정병길 감독은 오프닝 시퀀스 액션신부터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는 빠른 추격전, 거친 질감으로 쉼 없이 흔드는 영상. 장면의 대부분을 원테이크 원컷으로 촬영한 오프닝은 관객이 직접 범인을 쫓는 것처럼 실감난다. 이후 등장하는 두 번의 액션도 오프닝 시퀀스만큼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카체이싱 액션신은 피해자의 유가족이 이두석을 납치한다는 조금은 황당하게 느껴지는 이야기 얼개와 맞물려 비현실적인 느낌을 풍기기도 하지만 눈과 귀를 과도하게 즐겁게 만드는 액션이 모든 불편요소를 불식시킨다.
엔딩 액션시퀀스는 앞서 펼쳐진 두 번의 액션신을 종합한다.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격렬하게 맞붙는 격투, 또 한 번 도로를 시원하게 내지르는 무적의 카체이싱. 모두 ‘액션이 드라마보다 중요하다’는 감독의 의지가 만들어낸 최후의 결과물이다.
단연, [내가 살인범이다]는 액션이 살아있는 영화다. 어느 한국영화에도 뒤지지 않는 창의적 액션을 선보이고, 그 디테일한 표현에도 게으른 구석이 없다. 상대가 맞붙을 때는 다양한 사이즈의 컷을 겹겹이 이어붙이고, 상대를 추격할 때에는 시점쇼트를 섞어 마치 내가 같이 쫓는 듯한 착각도 만들어낸다.
영화의 이야기는 인위적으로 설정된 부분이 있으나 대부분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해된다. 다만 유가족이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시퀀스는 과하다. 범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들이 모이는 과정은 뜬금없고, 각 캐릭터의 속사연(정수연의 어머니와 오빠를 제외한)은 깊지 않아 그들에게 온전히 공감하기 힘든 지점이 있다.
또한 영화는 유가족과 다른 조연들의 등장부터 보조 플롯을 생산하고 코미디 영화로 외도하는데 이 부분이 석연치가 않다. 이두석에게 피부 관리 여부를 묻는 여성지 여기자, 이두석에게 반해 팬클럽까지 만드는 날라리 여중생은 대표적으로 실패한 코미디 캐릭터이다. 다분히 영화적인 것이 문제다. 연출자의 애초 의도는 ‘스타의 신변잡기’만 파고드는 ‘발기자’ , 스타에게 광적으로 빠져 도덕적 기준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빠순이’에 대한 조롱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감싸는 무채색의 분위기에서 이런 캐릭터는 유감스럽게도 원색처럼 튀어 보이기만 했다. 잘 만든 코미디는 최형사와 그의 엄마가 함께 붙는 장면에서 나온다. 파스 붙이는 방법을 두고 티격태격하는 장면이라든지, 엄마의 안전이 걱정되어 집으로 달려간 최형사가 엄마가 죽은 줄 알고 울고불고 하는 사이 방에서 엄마가 슬그머니 나와 혼내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짠한 구석이 있다.
이 영화의 한 가지 단점을 더 지적하자면 정면쇼트가 너무 반복적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연출자가 힘주는 장면마다 정면쇼트가 쓰이는데 이것이 지속적으로 관람의 불편함을 준다. 단순히 말해, 영화를 보는 일차적 목적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인데, 영화 속 인물이 나와 눈을 자꾸 마주치는 순간 몰입이 단숨에 깨진다. 스크린 속 세상이 스크린 밖에서 보이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 [그놈 목소리]의 마지막 장면도 정면쇼트였다. 어딘가 숨어있을 범인을 향한 경고의 눈빛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두 영화의 감독은 마지막에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정면쇼트를 사용했는데 [내가 살인범이다]는 두 영화에 비해 정면쇼트가 너무 많이 쓰이면서 오히려 강조점이 사라졌다. 이 점이 참 아쉽다.
[내가 살인범이다]는 오락영화로서 충분히 재밌게 볼만한 요소들이 넘친다. 연출, 연기, 이야기의 삼박자가 만들어내는 호흡도 상당하고 2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깨우쳐주는 법도 없다. 그럼에도 더 많은 재미와 의미를 담으려했던 욕심은 오락영화의 완성도에 덫이 되지 않았나 싶다. 특종에만 골몰하는 미디어 환경, 외모지상주의 위에 뿌리내린 그릇된 팬덤문화 등은 가볍게 놓일 뿐 그 자체로 깊이 있는 해석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아주 다행인 것은,
올해의 한국 액션이라 꼽을 만한 영화를 만났다는 것이다.
액션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JK Soul's FILM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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