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배우와 제작두레 참여자들에게 박수를.. ★★★☆
1980년 5월 18일. 우리 역사에 도저히 씻기지 않을 상흔을 남긴 그 날. 불과 32년 밖에 지나지 않은 역사임에도 그 날을 왜곡하고 곡해하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움직임은 학살의 책임자에 대한 단죄는커녕 엄청난 재산으로 그 일가족이 호위호식하며 여전히 막후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오늘의 현실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다.
6년 전 강풀 원작의 <26년>이 나왔을 때의 현실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5․18 책임자인 전직 대통령을 암살한다는 과격(!)한 내용의 만화에 사람들이 열광적 반응을 보였던 것도 이런 현실에 기반한 분노였을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 이러한 감정은 5년 전 제작에 들어갔다가 무산되고 감독과 배우들이 모두 교체되는 등 거의 무산 직전에 몰렸다가 많은 사람들의 모금을 거쳐 개봉에 이른 영화 제작 과정 자체에도 서려 있다. 여전히 학살자와 그들의 비호세력이 힘을 가지고 피해자들을 농락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
영화 <26년>은 원작의 각색 과정에서 일부 캐릭터를 삭제하고 또 일부 캐릭터의 성격과 스타일을 변형시켰다. 나름 영화화를 위해 고심한 흔적이 묻어나는 변화라고 인정할만하다. 영화는 워낙 이야기 자체의 힘과 온도가 강하다보니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는 있으며,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몰입시키는 힘도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대로 연결이 거칠고 투박하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뭔가를 만들어 내며 앞으로 나간다는 느낌도 없다. 중구난방이랄까. 툭툭 던져지는 이야기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오히려 감정의 고조를 가로막기도 한다. 미술감독 출신의 신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게 한계로 작용하지 않았을까란 느낌. 거기에 여전히 현실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전직 대통령을 암살하는 과정이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게 진행되는 게 아니라 다분히 우연과 즉흥적 발상에 의해 돌발적으로 나간다는 점도 눈에 거슬린다.
이런 문제는 각색이나 연출의 문제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강풀 원작의 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단적으로 김갑세가 전두환의 경호책임자가 마상렬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철저한 경호를 받고 있는 누군가를 암살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암살 대상자의 주위에 누가 있느냐의 정보일 것이다. 당연히 내부에서 도와줄 누군가를 찾는다면 작전은 훨씬 수월하게 진행될 테니깐.
강풀의 만화들은 접하는 순간,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이야기가 영상으로 떠올려질 만큼 구성도 드라마틱하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강풀 만화는 엄청난 양의 내레이션과 다중 초점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강풀 만화를 읽는 사람이 만화 속 인물의 처지와 정서에 공감하는 건 쉽다. 그런데 영화로는 표현하기가 애매해진다. 물론 이런 강풀 만화를 영화로 잘 표현할 수 있는 연출자가 있기는 할 것이다. 가끔 드는 생각은 어쩌면 강풀 본인이 나서는 게 제일 낫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조금 아쉬운 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제작 과정과 축소된 예산 규모 등을 고려해볼 때 이 정도면 영화적 재미와 나름의 감동을 주기에 만족한 수준이라고 본다. 덧붙여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용기(!)와 엔딩크레딧에 흐르는 1만 명 이상의 제작두레 참여자들에게 박수를.
※ 특별히 가수 이승환에게 박수를!!!
※ 영화의 마지막에 원작에는 없는 아주 후련한 장면이 하나 나온다. 그런데 오히려 이 장면 때문에 영화의 전체적인 방향이 흐려진다. 도대체 이들의 목적은 학살 책임자를 죽이려는 것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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