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의 데이트와 파티……
이만하면 누구나 꿈꿔볼 만한 크리스마스 풍경이지요. 그런데 이곳에 예기치 못한 화재가 끼어든다면?
로맨틱 영화가 순식간에 재난영화로 탈바꿈하는 순간입니다.
108층 초고층 빌딩에서 일어난 대형화재를 그려낸 영화 ‘타워’.
로맨틱 크리스마스인가요? 하지만 ‘타워’의 행복은 여기까지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 고층빌딩에 불이 난다면?
108층 주상복합빌딩 타워스카이의 시설관리 팀장으로 딸과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보내기로 한
싱글대디 대호(김상경), 그의 딸과 잠시간 함께 있게 된(대호를 짝사랑하고 있다지요)
타워스카이 푸드몰의 매니저 윤희(손예진).
결혼 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내와 데이트 약속을 한 소방대장 영기(설경구),
초고층빌딩에 사는 사람들과 크리스마스 즐기려 레스토랑을 찾은 사람들.
하지만 행복한 순간은 여기까지입니다.
갑작스럽게 난 불은 곧 최악의 화재 참사로 번지게 되는데요.
가까이 다가설 수조차 없는 화마의 위력 앞에서 이들은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화마가 휩쓴 자리는 이토록 처참함만 남게 되는 것이지요.
한국형 재난영화를 내세우고 있는 ‘타워’에는 ‘해운대’의 잔상이 짙게 묻어납니다.
해운대에서 도심으로, 쓰나미가 대형 화재로 바뀌었을 뿐,
예기치 못한 재앙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고투와 사랑,
희망을 녹여내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해운대’에 출연했던 설경구, 김인권의 캐스팅도 한몫하지요).
하지만 이는 ‘타워’의 한계라기보다는 할리우드를 비롯해 휴머니즘이 녹아나는
재난영화의 공통 공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해볼까요?
탐크루즈의 단단한 팔에 안겨있다면 어떤 재난도 무섭지 않을듯해요. ‘우주전쟁’의 한 장면.
첫째, 아이가 자주 등장하지요. 하필 재난의 한 가운데 서게 된 아이.
이를 구하기 위한 보호본능이 최고치로 발동하고, 결국 위험을 무릎 쓰고
재난의 중심으로 들어가 해결사 노릇까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 아이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 잡는, ‘민폐 캐릭터’가 될 수도 있지요.
‘해운대’ 속 지질학박사의 쓰나미 경고 역시 가볍게 무시되고 말지요.
둘째, 입바른 소리는 무시당합니다.
전문가의 재난 경고는 묵살되기 일쑤고, 권력이나 조직은 대의를 위해(혹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며 주인공과 갈등을 빚기도 하지요.
빤한 갈등이지만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는 긴장감을 최고치로 높여주는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타이타닉’의 어린아이를 이용해 구명보트에 탔던 로즈의 약혼자와 배의 침몰에도
연주를 이었던 악단은 상반된 모습으로 기억이 강렬하죠.
셋째, 이기적인 인간, 숭고한 희생자는 필수 캐릭터입니다.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도 나 혼자 살겠다고 또 알량한 재산을 지켜보겠다고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밉상캐릭터, 꼭 있습니다.
반면 숭고한 정의감 발동하여 여러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이도 있는데요.
이는 일상에서는 사고뭉치였거나 시선이 곱지 않았던 반전 캐릭터인 경우가 많습니다.
재난은 이혼 직전의 부부를 재결합시키기도 합니다. ‘토네이도’의 한 장면.
넷째, 재난은 사랑을 싣고 오기도 합니다. 한바탕 생사의 고비를 넘고 나면 끈끈한 동지애가 생기며
호감도가 상승한다고 하지요. 그 때문일까요?
티격태격하던 커플, 맨송맨송 눈치만 보던 커플도 영화가 끝날 즈음이면
급 러브모드로 발전되어 있지요. 단 둘 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서글픈 전제가 있지만요.
굴착전문가의 프로의식과 희생이 지구를 구해낸 ‘아마겟돈’입니다.
다섯째, 영웅의 탄생입니다. 난세에 영웅이 나는 법, 재난영화에서 영웅이 빠질 수 없죠.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한 분야의 전문가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프로의식이 재난과 맞아 떨어지면서 세상을 구하고 재난을 잠재운 사례가 많이 있지요.
‘타워’가 이 재난영화의 공식에 얼마나 맞아떨어질지 손꼽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타워’의 관전 포인트는 ‘불’의 열연
빤한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타워’를 살아있게 하는 건
‘해운대’와 대척점을 이루는 ‘불’이라는 소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우리의 일상과 연결된 공간이니 일단 신선한 것이지요.
‘해운대’가 1100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힘 역시 ‘해운대’라는 친숙한 공간에서
‘쓰나미’라는 재앙이 몰고 온 스펙터클에 있었습니다.
광안대교가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컨테이너가 총알처럼 박히는 충격적인 비주얼은
분명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지요.
할리우드 영화가 정말 스크린 너머의 ‘남 이야기’ 같았다면
한국형 재난영화는 피부에 와 닿는 ‘내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해운대’가 물이라면 ‘타워’는 불, 그 스펙터클이 어떻게 다를까요?
때문에 ‘타워’의 승부처는 도심 속 일상, 초고층 빌딩에서의 대형화재가 몰고 오는
블록버스터급 재앙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심 속 고층빌딩을 휩쓰는 이제껏 보지 못한 불의 힘,
그 박진감 넘치는 볼거리가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요.
그래서 ‘타워’의 진짜 주인공은 빌딩 ‘타워스카이’와 ‘불’이어야 한다고 주장해보는 것이지요.
도심 속 일상 공간에서의 재앙, 더욱 섬뜩하게 다가오지요.
소방관 영화의 징크스를 깨라!
충무로에서 ‘불’을 소재로 한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재난영화는 아니지만 ‘화재’ 사건을 소재로 한 양대산맥의 영화, ‘싸이렌’과 ‘리베라 메’가 있지요.
하지만 이들은 아쉽게도 호평이 아닌 혹평으로 라이벌 구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2000년 가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두 작품이 나란히 관객들에게 외면 받으며
‘불’을 다루면 안 된다는 징크스까지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범죄, 스릴러, 액션 장르로서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지요.
나란히 참패를 맛본 화재 소재의 영화. 범죄 스릴러와 엮인 스토리가 아쉬웠던 탓이지요.
복잡한 사건보다는 ‘화재’ 자체에 집중한 ‘타워’는 오히려 경쟁력이 있어 보입니다.
화재 사건이 도시 전체를 위협하는 참사로 변모해 가는 과정은 긴장감과 공감을 안겨주기 충분하고,
화재뿐 아니라 2차적 재난인 붕괴, 폭렬, 그리고 수조 탱크 폭발까지 발생 가능한
여러가지 상황을 현실감 있게 표현해냈기 때문이지요.
화려한 위용과 달리 화재 속에서는 최악의 공간으로 변해가는
초고층빌딩의 모습도 흥미진진할 것 같습니다.
‘타워’, 스토리는 단순하게, 비주얼은 화려하게, 감동은 묵직하게를 기대해봅니다.
진짜 승부수는 드라마일까?
사실 재난영화의 초반은 지루하기 쉽습니다.
후반의 감동 드라마를 위해 다양한 인물들이 하나하나 소개돼야 하기 때문이지요.
‘해운대’를 볼 때도 어서 빨리 쓰나미가 등장하길 얼마나 기다렸던지요.
억지스런 휴먼드라마는 지루하거나 불편할 수 있어요. 자연스럽게 버무려주세요.
‘타워’ 역시 등장인물이 만만치 않습니다.
주인공은 물론 입주민부터 요리사, 청소부, 노년의 커플 등 사연 없는 인물이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인물 소개가 지나치게 구체적이거나 길어지면 억지스럽고 지루할 뿐입니다.
‘타이타닉’의 인물 군상들은 얼마나 유려하게 엮여졌었나요.
영화초반부터 거침없이 등장한 ‘괴물’ 속 괴물은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고,
덕분에 느슨할 틈도 없었지요.
감동 휴먼 드라마를 내세우며 비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인간애’와 ‘가족애’를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도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가 되는데요.
그리 과하지 않아도 감동할 수 있다는 것,
관객들이 그리 메마르지 않았다는 것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볼거리는 화려하고, 감동은 깔끔한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 ‘타워’에게 기대해 봐도 될까요?
‘뜨거움’ 하나만은 확실히 책임질 것 같으니 추위를 무릅쓰고라도 볼만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타워] 스틸영상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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